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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현 Nov 03. 2023

쉬어가는 중입니다

글쓰기 근황


1년 동안 하던 기고를 중단했다. 지난 9월, 에디터님께 메일을 보내 조심스럽게 휴재를 요청드렸고, 금방 답장이 도착했다.


"휴식기가 필요하시면 충분히 반영해 드릴 수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 주셔도 괜찮습니다."


회사 일이 바빠져서,라는 변명을 떠올렸지만 사실 기고를 그만둘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게 문제였다. 글을 쓰는 손이 무거워졌고, 퇴근 후 글쓰기보다는 운동과 휴식을 선택하는 일이 잦아졌다. 회사 밖에서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짜릿한 성취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써내는 글들이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를 더 이상 외면하긴 어려웠다.


어깨뽕이 한껏 올라갔더랬다. 유료 매체에서 내 글을 사간다니. 기고료가 크진 않았지만, 액수보다는 내가 쓴 글이 사회적으로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내 소중한 정체성이 한결 더 공고해진 것 같아 기뻤다. 링크트리를 만들어 내가 쓴 글들을 내걸었고,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돈을 받고 글을 쓴다는 걸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다.


글쓰기가 어려워진 건 다섯 번째 기고부터였다. 7천 자 8천 자씩 되는 꽤나 긴 글들을 몇 편씩 쏟아내는 동안, 진심이 담긴 나만의 이야기들이 점점 고갈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원고를 보내는 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에게 무언가를 읽고, 경험하고, 곱씹고, 묵히기에 30일은 너무 짧았다.


영감을 발견하지 못해도 글은 써야 했다. 설익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아쉬움을 느끼는 일들이 잦아졌다. 짜내듯이 써낸 아홉 번째 글이 업로드되었을 때, 역시나 아쉬웠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구성원들의 좋은 태도를 만드는 방법’이라니. 이게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이야기일까? 정답보다는 작은 인사이트를 드리겠다는 논조이긴 했지만, HRer도 조직의 리더도 아닌 내가 다루기엔 벅찬 주제였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이렇게 어려운 마음으로 글을 쓰는 와중에도 너무 잘 읽었다는 댓글이나 DM을 주는 분들이 가끔 계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덕분에 힘을 내 몇 편 더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정말 순도 몇 퍼센트의 나의 글인지는 내가 알았다. 거짓을 말한 순간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쓴 글들은 함량 미달이었다. 잠시 쉬어갈 때가 되었다고 느꼈고, 결국 휴재를 결정했다.



벌써 11월이다. 에디터님과 약속한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기고를 재개하겠다는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글을 쓰지 않는 일상이 점점 익숙해져 간다.


올해가 가기 전에는 뭐가 됐든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조직문화에 대한 탐구를 계속 이어갈지, 다른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그것을 이기려 글을 써본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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