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 짚고 출근 8일 차

OOO가 기다리는 집

by Heather

Prologue.

2025년 1월 1일. 본가에서 엄마표 떡국을 먹고 클라이밍을 하러 가서 크게 다쳤다. 조금 특이한 위치에 있던 문제를 풀러 올라가서 2m에서 추락. 왼쪽 발목으로 착지하면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고 119 구급대원분들과 함께 암장을 나왔다. 앰뷸런스에 실려간 병원에서 X-레이를 찍고 수술 밖에는 답이 없다는 답을 들은 뒤 겸허히 입원수속을 밟았다. 1월 2일 오후 1시쯤 수술실에 들어갔고, 내 수술을 담당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부러질 수 있는 뼈는 다 부러졌더라. 어쨌든 수술은 잘 됐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10일을 병원에 입원해 누워만 있다가 1월 11일 토요일에 퇴원했다. 그 사이 생전 걸려본 적 없는 A형 독감까지 걸려 혼자 2인실에 격리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새해의 문을 열자마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7일의 연차 사용을 끝으로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이 일기는 적어도 2달간은 꼼짝없이 왼쪽 발을 쓸 수 없게 된 내가 병원을 나와 다시 일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신세를 지고 마는 하루의 기록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 나오자마자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집에 산다는 이유로 출퇴근 자체가 고행이 되어버린 나의 매일의 모험일지다. 신세 지는 걸 그렇게나 싫어하는 나였지만 이젠 누군가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신세 지는 법을 배워간다. 졸지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져버린 내게 기꺼이 배려와 호의를 베풀어주신 분들을 기억하고 싶어 기록하려 한다. 이 글은 깁스를 푸는 날 끝을 맺을 것이다.


2025년 1월 22일 수요일

목발 짚고 출근 8일 차


매일을 긴장 속에서 살다가 비로소 한숨 돌릴 때가 있다. 이전보다 2배는 더 걸리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에 갔다가 아무 일 없이 집에 돌아왔을 때, 어둑해진 저녁 택시에서 내려 오르막길과 빌라 계단을 차례대로 통한 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휠체어와 마주했을 때.


이게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의 마음일까. 출근할 때 일어섰던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몇 시간을 날 기다렸을 나의 휠체어에 엉덩이를 털썩 대고 앉을 때의 기분이란.


"오래 기다렸지? 나 왔어!"


깁스한 발은 허공에 띄워둔 채 옷을 갈아입고, 밥을 챙겨 먹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 수고가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알 수 없는 위로가 휠체어를 타고 내 몸을 감싼다. 퇴원과 동시에 나와 함께 집에 오게 된 이 줄무늬 휠체어는 아빠가 무릎에 금이 간 엄마를 위해 휠체어를 빌렸던 의료용 기구 판매점에서 빌려다 주신 것이다. 아내의 휠체어를 빌린 곳에서 딸의 휠체어를 또 빌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부러진 내 왼발을 대신해 나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거실에서 화장실로 이동시켜 주는 고마운 존재인 휠체어는 내가 출근할 때면 현관 앞에서 나의 마지막 채비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는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건넨다. 매일밤 다시 휠체어와 마주했을 때 '별 일 없이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휠체어에 몸을 맡기는 순간이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회사에 있는 내내 내 몸을 지탱해 줬던 목발도 이때부터는 나라는 짐에서부터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오늘은 병원에서 퇴원하고 출근한 지 8일째 되는 날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와 비교해 집에 돌아와 가장 힘든 점은 꼬박꼬박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병원에 있을 때는 샤워는 꿈도 못 꿨고 머리도 3일에 한 번 간병사님들이 감아주셨는데 이젠 내 힘으로 씻고 머리도 감아야 한다. 몸이 불편하니 씻는 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일인지 알게 됐는데 다쳤다고 지저분하게 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이틀에 한 번은 꼭 샤워를 하기로 한다.


"월, 수, 금, 일, 화, 목, 토 순서로 이틀에 한 번은 무조건 씻자!"


다치고 나서 안 사실은 우리 집 화장실 턱이 꽤나 높다는 것이었는데 거실과 바닥 높이가 꽤나 차이가 있어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제일 난도가 높았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플라스틱 의자를 화장실 초입에 두고 그 의자에 먼저 걸터앉은 뒤 화장실에 들어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그렇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세수도 하고 이도 닦고 샤워도 한다. 병원에 있을 때 주문한 깁스방수커버 덕분에 왼쪽 다리에 물 들어갈 걱정은 덜었다. 예전엔 다치면 랩 씌우고 씻어야 했다고 하던데 세상 참 좋아졌다!


막상 씻고 나면 그렇게 겁낼 일도 아닌데 시작 전엔 왜 이렇게 큰 맘을 먹어야 하는 건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 중 그 어떤 일도 당연하고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대신해 나의 두 발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휠체어 덕분에 이렇게 또 하루를 잘 살아냈다. 왼발이 다 회복된다면 두 발로 하는 모든 일에 당연한 마음 대신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다해야지.



IMG_8168.jpg






작가의 이전글목발 짚고 출근 7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