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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Nov 12. 2020

과장 좀(만) 하겠습니다.

과장, 정말 조금만 해버렸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대리 나부랭이의 마케팅> 이야기를 얼마 하지도 않고 1년 넘게 잠수를 탄 뒤 오랜만에 다시 쓰는 글이다. 브런치에 글을 쓸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던 것을 생각하면 꽤 오랜 공백이었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던 시간들을 지나는 동안, 나는 과장이 되었'었'다.


작년 3월, 외근을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톡으로 전해오는 축하 메시지를 읽고 알았다.


내가 (드디어, 결국) 과장이 되고야 말았다는 것을.


과장 승진이 뭐라고 내 인생에 어떤 결실을 맺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인턴, 사원, 주임, 대리를 거쳐 비로소 '장'이 붙은 직급을 달았다는 게 신기하기도, 대견하기도 했던 것 같다. 명함에도 Assistant 라는 수식어가 없는 Manager 라는 단어만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달린 과장 꼬리표를 오래 달지는 못했다. 날 '과장님' 이라고 불러주는 좋은 선/후배들과의 시간을 뒤로 하고 스타트업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브랜드에서 4년 가까이 일하며 나름 인정도 받고, 자리도 잡았던 나의 이직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기도 했다. 퇴사면담을 하면서 나 역시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는 왜 이 익숙한 곳을, 익숙한 사람들을, 익숙한 일을 떠나려고 할까?"


익숙함이라는 건 새로운 호기심을 억누르기에 충분한 안정감이 있으니까. 그런데 난 왜 또 참지 못하고 4번째 회사에 가려고 하는걸까. 그것도 스타트업으로 말이다. 이쯤에서 나의 이력을 잠시 정리해봐야겠다.

 

- 홍보대행사 프레인 1년 10개월(2011 ~ 2012)

- 패션그룹형지 3년 6개월(2013 ~ 2016)

- 휠라코리아 3년 10개월(2016 ~ 2020)


5년 이상을 다닌 곳이 한 곳도 없구나...


두 번의 공채 입사와 1번의 이직, 우여곡절 많았던 시간들이 차곡 차곡 쌓여 어느덧 10년차가 되었다. 휠라에 입사할 땐 '여기가 내 커리어의 종착역이었음 좋겠다.' 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새로운 도전에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나를 4번째 회사로 인도했다. 다시 3개월 수습기간을 거쳐야만 하는 불안한 지금이지만, 언제나처럼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한 선택이기에 후회는 없다.


형지에서 휠라로, 휠라에서 지금 회사로 이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했다.


"거길 왜 가려고 해?"


(배경을 좀 설명하자면) 휠라는 내가 이직을 감행(?)할 당시 리브랜딩을 막 시작한, 그러니까 리브랜딩에 실패해서 망할지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타트업은 그저 '스타트업이라는 이유로' 말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어쨌든 나는 저런 말을 듣고도 매번 내 선택을 믿고 옮겼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가 이직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절대 저 비슷한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 자신의 선택을 믿어보라고 하는 편이다. 내가 어떤 책의 글귀를 읽으며 받은 뜨거운 응원처럼 그 사람의 선택을 열렬히 밀어주고 싶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이제 두 가지 임무가 있다. 곧, 가는 것과 되는 것(to go and to be)이다. 성숙을 위한 첫 번째 임무는 도전, 공포, 위험 그리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생은 다른 사람의 마음 안에 나의 투사(projection)가 함께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짧지만 강렬한 문장이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보아도 '떠나지 않고 하는 후회' 만큼 후회스러운 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과장님의 달콤함을 뒤로 하고 **과장님의 새로운 길을 택했다.





* 앞으로는 스타트업 마케터로서의 적응기를 다양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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