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랄리 파르자의 <서브스턴스>
거울 앞에 서면 벼랑 끝에 선 기분이다. 그 속에 비친 모습은 낯설고 초라하기만 하다. 누군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지만 글쎄 난 전혀 모르겠다. 인정할 수 없는 내 몰골에 되려 괴로울 뿐이다. “네가 아무리 애써도 넌 결국 아류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조롱의 소리. 그 속삭임은 머릿속 깊숙이 파고들어 마음 한가운데 똬리를 틀고는 비웃듯 날 옭아맨다. 도대체 언제부터 내 안에 이런 절벽이 자리 잡은 걸까.
살아가면서 우리는 타인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냉혹한 평가는 더 벗어나기 어렵다. 그 가혹한 잣대는 우리를 끝없는 비교 속으로 몰아넣고 무엇을 고칠지 갈피조차 못 잡게 만든다. 도무지 견적이 나지 않을 때면 누군가의 사진을 들고 가서 “똑같이 만들어주세요“ 라고 떼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잘 알기에 그저 거울을 등지고 달아날 수밖에 없다. 잘생긴 사람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싶다는 생각은 오히려 얼굴의 그늘만 짙게 할 뿐이다. 이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니.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니. 원치 않았던 게 진짜 내 삶이라면 이상하지 않나요? 이게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영광에 머물고 싶었던 엘리자베스는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에 손을 댄다. 그 결과 그녀의 갈라진 척추 틈 사이로 완벽한 또 다른 자신 수가 태어난다. 젊고 아름다운 수는 쓰러진 엘리자베스 앞에 일어선다. 그녀는 자기가 해고됐던 직장에 돌아가 단숨에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고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녀는 더 완벽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약물의 규칙을 어긴다. 그 대가로 엘리자베스의 몸은 점점 흉측하게 쇠약해진다. 수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엘리자베스는 예전 모습을 완전히 잃어가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멀어져 수를 기다리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사라져 가는 젊음을 붙잡을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자신과 완전히 분리된 수를 마주한다. 흥미로운 점은 엘리자베스와 수는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적대하고 대립한다는 것이다. 마치 현실과 이상이 결코 일치할 수 없듯이. 머릿속에서 끝없이 충돌하는 생각들처럼 그녀들은 점점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 그녀는 완벽한 이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자신의 현실 사랑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그녀의 갈망은 단 하나였을지 모른다. 바로 사랑받고 싶다는 것. 자신이 주목받던 시절의 기억이 여지껏 그녀를 버티게 했다. 하지만 지금 모습으론 그 무엇도 꿈꿀 수 없었다. 분리된 또 다른 자신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자아는 사라지고 그녀의 존재는 수를 통해서만 증명되었다. 이제 그녀의 삶은 완전히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영화는 경고한다. 당신은 하나인걸 잊지 말라고
마지막에 그녀는 흉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전야제 무대에 선다.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공격하려 해도 아랑곳 않고 망가진 몸으로 외친다. “여전히 나예요” 그렇게 핏줄기를 뿜어내며 현장을 핏빛으로 초토화시키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데 일조한 이들에게 자폭 같은 복수를 감행한다. 얼마 안 가서 그녀의 육신은 터져버리고 만다. 그리고 얼굴 거죽만 남은 채로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침내 미소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자신을 망가뜨림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 셈이다.
내 삶도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점점 무너져 갔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로 무력했던 시간은 나를 서서히 마비시켰고. 우습게도 그러한 슬픔만이 나를 설명할 유일한 방식처럼 여겨졌다. 오로지 고통을 이야기할 때만 기이한 활력을 느꼈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과정에서 가치를 찾았다. 사실 난 그저 사랑이 필요했을 뿐인데 너무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삶을 가득 채운 그 고통조차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허물이라는 걸. 내 결핍과 결함 또한 나의 일부였음을 이제야 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에게 절실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나도 주저없이 그 약물을 집었을 테니 말이다. 비록 어리석은 인정욕구일지라도 사랑은 역시 받는게 마땅하니까. 이렇게 태어난 이상 난 나를 부정할 수 없을거다. 어떻게 보면 몸이 늙어간다는 공포에 맞서 살아야 하는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바디호러가 아닐까 싶다. 아직도 그녀의 한마디가 귓가에 선명히 울린다.
“그때까지 자신을 아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