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광주를 우리의 광주로

‘ 목숨을 바쳐, 정신을 구한다는 것 '

by 우현수
나의 광주

출신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게 싫었다. 쉽게 광주사람이라는 것을 밝히는게 불편했다. 직간접적으로 광주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맞닥뜨릴 때마다 더 작아지고 더 숨게 되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더 조심하고 더 잘하려고 강박적으로 애썼던 것 같다. '광주사람이라 그런다’는 말을 듣는게 죽기보다 싫었다.


직업상 발표를 해야할 경우가 많았는데, 사투리 때문에 말하려고 하는 내용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혹시라도 사투리가 내 제안과 내 아이디어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하고 전전긍긍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억울한 일이다. 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이 내 출신지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한 때는 이런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차별이 미국의 흑인차별보다 더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출신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된 계기가 있었다. 전국 각지의 친구들-심지어 울릉도 출신도 있었다-과 군대 생활을 하면서다.

서로 몸을 부대끼고 지내다 보니, 관계란 결국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문제고 태도의 문제였다.

내가 진심으로 다가간 만큼 그들도 나에게 다가와줬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군생활은 지역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때 그런 전우들을 만난 것도 정말 행운이었다.


지역 컴플렉스를 더 멀어지게 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아마 이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광주

저자는 광주에서 고교시절을 함께했던 김철원의 책이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누구보다 정의롭고 바른 생각을 가진 친구다. 학창시절의 기억과 느낌이 전부이긴 하지만 그가 기자의 길을 가면서 이뤄내고 있는 성과를 지켜 보면 틀린 생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책의 내용은 광주정신을 목숨바쳐 지키려고 했던 고인들의 생각과 행적, 지인들의 인터뷰 형식을 책으로 엮었다.아쉽게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광주MBC 5.18 36주년 기획'을 기반으로 한다고 한다.

성격만큼이나 정확하고 꼼꼼한 기사들로 채워졌다. 어쩌면 이렇게 밀도있고 탄탄하게 기록될 수 있을까? 고인들에 대한 고마움없이, 광주에 대한 애정없이는 만들 수 없는 문장들이다. 또한 인터뷰와 취재 자료들이 더해진 이야기 중심의 전개는 책을 더 쉽고 더 생생하게 읽히게 했다.


사실 '그들의 광주'에서 ‘그들’은 내가 유년시절 우러러보던 대통령을 살인마로 몰아세우고, 유신잔당들로 취급하던 과격하고 나쁜 대학생 삼촌들이었다.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 일까지 서슴치 않던 과격하고 무서운 형들이었다. 오월만되면 최루가스로 뿌옇게 변하던 광주의 거리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삼촌과 형들의 세계같았다.



우리의 광주


세월이 한참 흘러 내가 그 불온한 삼촌들의 나이가 될 즈음 우러러 보던 나의 대통령이 정말 살인마가 되고 법정에서 사형이 구형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날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그 형들이 삼촌들이 그토록 목 놓아 외쳤던 말들이 모두 진실이었다는 것을 그 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들의 광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분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광주사람으로써 대한민국 시민으로써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낀다. 목숨을 바쳐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 광주정신을 알리려던 고인들의 이야기 앞에서 내 컴플렉스는 그야말로 하찮고 사소한 것이었다.


변화는 어떤 결심, 어떤 선택의 결과다. 그 분들의 위대한 결심과 선택이 씨앗이 되어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 마음에 보답하는 일은 우리가 그들이 이뤄낸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 시켜 가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광주'를 '우리의 광주'로 만드는 일일것이다.


이글을 빌어 고인들의 뜻을 잘 정리하고 취재하고 책으로까지 엮어 낸 김철원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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