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재료

by 우현수

육질이 좋은 고기는
별 다른 기술을 쓰지 않아도
맛있습니다. 심지어는 생으로
먹어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별로인 고기를 만났을 때입니다.
이 때는 생각해야할 것들이 많아집니다.
계획적으로 신중하게 요리하지 않으면
맛없는 고기가 먹기 힘들 정도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고기는 잘리는 결에 따라
질긴 정도가 반으로 줄기도 합니다.
또 어떻게 숙성하느냐에 따라
풍미와 영양성분까지 바뀐다고 합니다.
이런 방법들이 질 나빴던 고기를
살리는 기술들입니다.
좋은 고기라면 굳이 안 써도 될 기술을
써야하는거죠.


디자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때론 좋은 사진 한장, 잘 만든 폰트 하나면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괜찮은 재료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생깁니다.
디자이너의 실력도 거기서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디자이너는
그 별 거 없던
재료들을
자르고 섞고 잇고
굽고 끊여서
별 것들로 만들어냅니다.
재료만 탓하지 않습니다.
굴림체로도 제법 수준 높은
편집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궁서체로도 진지하지 않고
유쾌하게 디자인해냅니다.

디자인하기에 너무 좋은 재료와 소스들이
넘쳐나는 요즘입니다. 각종 이미지사이트, 폰트사이트,
일러스트 아이콘사이트 등 무한 리소스들이
인터넷에 방대하게 깔려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재료들이 무료인 곳도 많습니다.
그런 재료들 때문에 디자인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디자이너가 직접 그 재료들을 만들 일이 줄었습니다.
그래서 예전보단 ‘게으른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좋은 재료들이 풍부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건

요리사에게는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마냥 그렇게 좋아할 수만은 없습니다.

’ 재료가 좋지 않아서, 요리의 완성도가 떨어졌어 ‘

‘ 재료가 별로라서 더 좋은 맛을 낼 수가 없었어’

같은 핑계를 댈 수도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가끔은 별로였던 재료들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어떻게든 좋게 만들어 보려고
‘부지런한 디자인’을 하던 때가 그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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