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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Apr 07. 2020

'스프로드' 브랜드 런칭 기획서

디자이너의 창업 아이디어 제안 No. 1

진정한 의미의

첫 사업 기획


개인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사업 기획서'를 쓴 건 이 번에 소개드릴 'Soup Road'라는 프로젝트가 처음이었습니다. 이 전까지 쓴 기획서가 디자인 중심의 기획서였다면, Soup Road라는 프로젝트는 비로소 비즈니스라는 관점에서 고민하고 연구한 첫번째 기획이었기 때문입니다.


Soup Road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계기는 이렇습니다.

5년 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브랜드 디자인에 스스로 한계에 부딪혔을 때였어요. 사내에서는 브랜드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었지만 디자인을 넘어 선 기획과 전략적 측면에서의 지식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걸 배워야 내 업무 능력이 한단계 업그레이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배움의

기회와 재미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디자인진흥원에서 진행하는 '브랜드 전략과 디자인 심화과정'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서른명 넘는 디자이너들 중에 브랜드 관련 디자이너는 저 밖에 없더라구요. 절반은 제품, 패션, 웹, 공예 등의 디자이너였고 절반은 마케터나 기획자들이었습니다. 브랜딩을 배워 자신의 영역에서 업무 역량을 높이려는 분들이었죠. 그에 비하면 저는 이미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편이었죠. 처음엔 이 게 일을 하러 온건지라는 배우러 온건지 약간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약간 후회도 됐구요. 제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심화과정이 라는 생각때문이죠. 다행이 수업이 진행되면서 그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금방 깨달았습니다. 생각을 열고 보니 배울 게  참 많은 수업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팀작업의

고충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건 개성 강하고 주장이 강한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는 일이었습니다. 직장에서야 직급이 깡패라고 내가 좀 강하게 의견을 밀어 붙이면 쉽게 갈 수 있었는데, 그곳은 아니였죠. 대학 때 조별 발표 준비할때보다 더 난해한 수평 의사결정 구조였습니다. 자신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의 경력을 쌓은 디자이너이 모였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함께 의견을 모으고 컨셉을 도출해가는 과정이 하나의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저희 팀명이었던 ‘도전조’처럼요. 그래도 유니타스 브랜드라는 국내 최고의 브랜드 전문지를 만들었던 권민 강사님이 방향을 잘 잡아 주시고, 팀원들의 참여도 점점 적극적이 되어 프로젝트의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의 접근 자체가 디자인 중심이 아니라 마켓 중심이었던 것도 저에겐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브랜드 디자인만 해봤지 상품을 처음부터 기획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직접 만들어서 팔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과 누군가 팔고 있는 팔 제품의 디자인을 해주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실감하게 됐습니다.

현재 시장에서 또는 가까운 미래에 통할만한 브랜드와 제품 아이디어를 생산해내는 일, 당장 내일 출시해도 팔릴만한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일은 회사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받아 하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야말로 백지 상태에서 시장 기회를 탐색하고, 상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네임과 디자인을하고, 마케팅 전략까지를 종합적으로 해보는 과정은 그 동안 내가 해왔던 디자인이 '사업'이라는 전체 프로세스로 보면 정말 작은 부분에 불과할 수 있겠구나라는 자각도 들었습니다.



시장 기회의

탐색


시장의 기회를 탐색하면서 먹거리 분야를 설정했습니다. 한참 먹방과 스타셰프들의 뜨던 시기이기도 하고 워낙 다양한 소재들이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들이 더 많이 나올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먹거리에 사람들은 열광할까를 생각해보면 사실 단순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 ‘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하루 세번 적어도 한번은 하는 익숙한 행위기도 하구요. 생존에 관련된 문제고 원초적인 욕구와 관련된 일이기도 합니다. 익숙한데 생사와 관련된 너무 중요한 요소이고 거기에 종류까지 무궁무진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싶을 정도죠.


먹거리 가운데서도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간편식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포화상태에 있는 시장이지만, 5년전만 해도 크게 주목되지는 않는 시장이었죠. 개인적 경험도 관련있었습니다. 오랜 자취생활 동안 가장 많이 먹었던게 라면이나 캔으로된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럴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기껏해야 참치캔 정도가 아니라 좀 세련되면서도 폼나게 먹을 수 있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몸에 좋은 재료로 만든 간편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구요. 거기에 먹으면서 위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힐링 푸드가 된다면 더 좋을 겁니다. 단지 먹는 행위 넘어 감성적 포만감까지 주는 음식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필

스프였을까


스프를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감기 몸살에 걸려 입맛이 없을 때면 어머니께선 항상 오뚜기 스프를 해주셨습니다. 지금보니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인스턴트 스프지만, 어렸을 땐 그 스프만 먹으면 감기가 금방이라도 달아날듯 기분 좋은 맛있었습니다. 오뚜기 스프가 먹고 싶어 꾀병을 부리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개인적인 특졀한 경험도 있고 시대를 반영한 힐링푸드이기한 스프는 포장도 쉽고 세상에 가장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는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대략적인 대략적인 X스프에 대한 기획을 논의하고 아래와 같은 브랜드 기획의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위와 같은 현상들에서 주목했던 사항들을 종합해 보면 식문화에서 큰 하나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음식은 허기를 채우거나 맛을 느끼는 차원을 넘었습니다. 새롭고 특별한 맛을 느끼는 정도를 넘어 멋까지 즐기고 경험하고자하는 단계에 와 있는겁니다.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브랜드의 전반적인 개념과 특징 그리고 이미지등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나와있는 브랜드나 제품들 중 앞서 얘기했던  분위기와 컨셉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제품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시장의 기획을 탐색해 '간편식'이라는 시장의 기회를 찾아내고, 그 중에서 스프라는 제품으로 브랜드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갔습니다. 지금부터의 내용은 그걸 기반으로 구성한 최종 스프로드 브랜드 런칭 보고서입니다. 정작 보고서 작성은 고작 하루 정도 걸렸지만, 그 결과물이 나오기에는 매주말 4시간 4주가량의 배움과 토론의 과정이 있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물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 네명의 팀원이 모이게 된 이유는 각자 제출한 다섯개의 키워드들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키워드가 '도전'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새롭게 도전하는 걸 좋아하고 열정이 넘치는 팀원들이었습니다. 강제력이 전혀 없는 수업의 특성상 팀이 해체하거나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경우가 많았지만, 저희 팀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팀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니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도전이란 특별한 것만을 말하진 않았습니다.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도전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두 공감하면서 문제를 풀어 나갔습니다.



* 의식주와 관련된 일상의 도전 중에 '식'이라는 분야로 좁혀지자 프로젝트 진도가 빨라졌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신기하게도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맛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떠올리는 장소나 공간의 분위기도 다 달랐습미자.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맛은 굉장히 주관적인 감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느낌들을 상상하면서 주인공이 다른 광고 세편을 만든다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했습니다. 세명의 주인공이 머리 속에 떠올랐는데요.

육아를 동시에 하는 40대 직장맘, 미국 유학파 출신의 패션디자이너, 세종기지의 연구원을 삼촌으로 둔 국어교사가 그 분들입니다. 물론 상상 속의 사람들이지만 우리 주변에도 쉽게 만나 볼 수 있을 법한 분들입니다. 각자 경험했던 스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저마다 맛과 연관된 특별한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특별한 경험들을 더 특별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어떤 컨셉으로 그 맛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낼까를 다시 고민해야 했습니다.







세계 각지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해 새롭고 진귀한 맛을 만나는 스토리를 담았습니다.







이렇게 혀끝으로 세상 모든 스프를 경험하는 스프로드의 대장정을 브랜드 스토리에 담아냈습니다. 또한 그 이야기에 담긴 브랜드의 철학과 미션, 핵심가치에 대해서도 정의내렸습니다.




레시피

선정


여기까지는 잘왔는데 사실 어떤 스프를 어떤 재료로 만들것인지에서 조금 막막했습니다. 기껏해야 크림스프나 카레 정도밖에 몰랐기 때문이죠. 전문 세프들이 아니다 보니 스프 레시피들을 찾아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찾아보니 전혀 몰랐던 새로운 스프들도 알게됐고 전세계 어디든 그 지역만의 스프는 존재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중에서 독특하면서도 새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는 대륙별 한두개 정도의 스프를 골랐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연어스프, 일본의 사과스프 등이 그것입니다. 프랑스의 부야배스, 중국의 샥스핀, 버섯 크림 수프, 마스카포네 토마토 수프, 미네스트로네 수프 등도 후보에 있는 스프들이었습니다. 사실 나중에는 크림스프나 카레 등의 아주 기본적인 스프까지도 포함시키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포장디자인


스프로드를 담을 용기가 꼭 캔이였어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캔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감성입니다. 저는 캔이 산업시대의 차가운 대량 공산품으로 연상되기 보다는 앤디워홀의 팝아트 작품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캔을 여러개로 쌓았을 때의 효과도 상상했는데요. 오프라인 매장이 생긴다면 마치 커피 캡슐처럼 알록달록한 캔이 매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 상상을 했습니다. 캔이라는 용기 자체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인거죠.


두번째는 세계 오지에서도 얻을 수 있는 레시피로 만든 스프가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캔으로 만들면 최소 일이년의 유통 기간을 보장 받는 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이 스프가 몇 개월이 걸려 아마존 오지에 닿아도 문제가 없는거죠. 생활 형편이 어려운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보내 영양과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기쁨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 했습니다.







* 각자의 스프 레시피를 공유해 반응이 좋은 스프들은 스프로드 제품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광고

캠페인


광고 캠페인은 '미지의 감각과 맛을 찾아나선다'는 의미에서 '未知味覺'이라는 컨셉을 시각화했습니다. 사진의 이미지는 남극의 하얀 설원,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 위에 놓인 스프로드 캔이 놓여 있는 있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 위를 가로로 가르고 있는 라인 그래픽으로 광고의 시각적 틀을 만들었습니다.  




거의 마지막 순서로 저희 팀의 발표가 끝났습니다. 제가 발표자가 아니라 청중의 반응을 유심히 살필 수가 있었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집중했고 반응도 긍정적이라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 시간에는 '그런 스프가 있으면 당장 사 먹고 싶다', '퇴사하고 사업 시작해야하는 거 아닌가요?', '투자자를 소개해 주고 싶다'라는 칭찬의 말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업 참여자 대부분이 디자이너, 마케터, 기획자 등 크리에이터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사실 발표 전까지는 이렇게 사업 기획을 해도되나? 이런식으로 근거도 충분하지 않는 상태로 제품을 만들어도 되나?라는 의문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케팅 이론에 맞춰 확실한 근거와 데이터가 있어야 브랜드는 탄생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발표가 끝나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브랜드를 만들고 성공 시키는 건 데이터도 숫자도 아니라 상상력과 감각이라는 걸요. 감각의 포인트를 잡아 팔면 그게 제품이 되는 거였습니다. 제품에 상상력을 담아내면 소비자에게 더 빠르고 쉽게 다가갈 수가 있는 거였습니다.


전문성 있는 상품 기획자가 아니라도, 경험많은 마케터가 아니라도 경영을 잘 몰라도, 제품을 기획하고 브랜딩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디자이너라는 장점을 살려 디자인적인 접근법과 스토리로 제품을 기획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이 후 제가 비즈니스 측면을 생각하는 디자인 기획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사업을 이제 시작하는 분이나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아마 제품을 기획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획이나 마케터가 아니 이상 기획서 하나 쓰기도 만만치가 않을 것입니다. 그 답답한 고민들이 제가 쓴 사업계획서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더 나은 기획으로 더 도움이 될 기획으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아래 저의 <신간> '일인 회사의 일일 생존 습관'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접근법과 새로운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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