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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ul 12. 2021

컨셉은 왜 '잡는다'고 표현할까?

세상을 사로잡는 기술

어떤 인터뷰를 보다가 디자인 컨셉을 설명하는 걸 듣고 고개가 갸우뚱해졌습니다. 컨셉을 얘기하는데 모던, 심플, 레트로, 화려함이라는 단어로만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컨셉이라고 믿고 있다는 게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경력이 꽤 돼보이는 디자이너가 컨셉을 설명하는데 쓰는 단어가 무려 모던, 심플같은 단어 뿐이라니요.


그 분 말대로 디자인 컨셉이 '모던'이라는 단어로 쉽게 규정될 수 있다면, 현재 나와있는 대부분의 디자인 결과물이  모두 모던한 컨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우하우스에서 뻗어나온 모던한 감각과 합리적 디자인 방식을 따르는 현시대의 모든 디자인 산출물이  모두 '모던'이라는 컨셉으로 뭉뚱그려질 겁니다.



그럼 '모던'같은 게 컨셉이 아니라면 도대체 컨셉은 뭘까요? 저도 말은 참 쉽게했지만, 답하기 참 어렵네요. 하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모던은 컨셉이 아닙니다. 모던은 디자인의 분위기나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죠. 스타일, 무드와 톤, 룩과 필 같은 단어들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컨셉은 그런 단어들로 설명될 수 없는 더 상위의 개념이구요.


디자인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컨셉이 중요하다는 말은 수천번은 들은 거 같습니다. 너무나 자주 듣고 쓰여서 이쪽에서는 거의 일상어처럼 여겨지는 단어죠. 그런데 정작 그 게 뭔지는 배워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르쳐주시는 사람도 없구요. 그렇게 많이 쓰이고 중요한 거라면 정식 과목으로라도 만들어 가르쳐야할텐데 말이죠.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가 이해는 갑니다. 컨셉이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어떤 근본 개념이나 원리이기 때문이겠죠. 컨셉 좀 잡는다는 컨셉의 고수라는 분들도 아마 그 원리를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책에서 읽어서 알았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체득했을 가능성이 크죠. 이미 체득한 걸 말로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건거를 몸에 익혀서 잘 타고 있는데,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라고 하면 참 난감한 것 처럼요. 그 느낌을 너무나 잘 알겠고 어떻게하면 되는지도 직접 보여줄 수는 있는데 말로 설명이 안되는, 그런 단어가 컨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죠. 컨셉을 설명하기 더 어렵게 하는 이유는 컨셉이 쓰이는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컨셉, 디자인 컨셉, 광고컨셉, 홍보컨셉, 유투브 컨셉, 심지어 방송인 개인의 컨셉까지. 알리고 홍보해야하는 비즈니스의 모든 부분에 걸쳐 컨셉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쓰이는 각 매체나 채널에서 쓰이는 뉘앙스도 차이가 납니다.


컨셉이란 걸 몰랐을 때 광고 컨셉과 브랜드 컨셉의 차이를 몰라 너무 헷갈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미시적인 광고 컨셉에 비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브랜드 컨셉은 차이를 몰랐죠. 광고 컨셉이 브랜드가 보여줄 퍼포먼스의 관점에 중심을 둔다면, 브랜드 컨셉은 좀 더 본질적이고 가치 중심적인 메시지를 담습니다. 같은 컨셉이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도출되는 것들이 많이 다르죠. 저는 그 차이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를 광고 컨셉스럽게 잡거나, 광고를 브랜드 컨셉스럽게 접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파악하면서 브랜드 컨셉과 광고나 캠페인 컨셉, 제품 컨셉을 구분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이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NIKE)의 영어식 발음입니다. 스포츠 정신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승리'가 브랜드의 컨셉입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나이키의 컨셉은 'just do it'같은 광고 캠페인 컨셉이나 에어조던이라는 제품 컨셉이죠. 큰틀에서 보면 '승리'라는 브랜드 컨셉이 캠페인, 제품의 컨셉을 품고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컨셉'이라는 단어를 쓰더라도 하는 역할과 목적이 서로 다르죠. 컨셉에 대해 잘 몰랐을 땐 그랬습니다. '승리'라는 컨셉을 잡으면 그걸 일관되고 꾸준하게 계속 밀고 나가야 되는거 아닌가?라구요. 참 단순한 생각이죠. 그런데 '승리'이라는 정신과 가치를 기반으로 고객들에게 얘기할 메시지는 정말 많죠. '승리'를 위한 '함께'를 말할 수도 있구요. '승리'를 위한 '스포츠 영웅'을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 나름의 해석이고 기업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나이키와는 조금 다르게 강력한 브랜드 컨셉을 홍보 및 광고 컨셉에도 그대로 연계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배달의 민족입니다. 배달의 민족은 B급 정서와 문화를 잘 담아낸 컨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정서를 위트있고 재치있는 언어와 비주얼로 표현하고 소통합니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전달합니다. 집요할 정도로요. 그렇게 구축한 강력하고 차별성 있는 컨셉은 수많은 아류를 생산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언어와 비주얼로 따라하지만, 배달의 민족이 추구하는 컨셉을 온전히 표현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스타일은 흉내내도 컨셉까지 담은 스타일을 흉내내긴 어렵습니다. 컨셉의 뿌리가 튼튼해야 거기에 딱 맞는 스타일이 나오기 때문이겠죠.


이렇듯 컨셉은 어떤 브랜드가 의도적으로 설정하거나 원래 가지고 있던 것들에서 나옵니다. 그것들 중에 타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특성을 컨셉으로 잡습니다. 컨셉이 명확해야하는 이유는 이 차별점이 고객의 인식의 차별화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달라야 눈길을 잡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최종적으로 그 브랜드를 선택할 확률도 올라가겠죠.


컨셉을 설명하는 것들 중 제 머리 속에 가장 강하게 자리 잡은 개념이 있습니다. 컨셉은 '가로채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상과 주위에 널려있는 여러가지 특징과 개념들 중에 브랜드만의 고유의 것만을 '가로채서' (intercept) 쓴다는 개념입니다. 브랜드가 추구하고 의도하는 바를 키워드가 됐든 이미지가 됐든 가로채서 잡아두고 그것들 중 다시 필요한 것들만 다시 묶어낸다는 의미입니다. 그 전체 과정을 보통 몇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규정하면 컨셉이 되겠죠. 또한 컨셉(concept)앞의 con이라는 접두어는 콘크리트처럼 어떤 개념을 규정하고 실체화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합니다. 뿌연 안개같은 개념과 정의를 단단한 벽돌처럼 만드는 일인거죠. 브랜딩이라는 일이 결국은 실체가 없던 개념과 아이디어들을 벽돌처럼 보여지게해서 실체화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컨셉을 추출하는 과정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하는 이유는 브랜드가 만들어내야할 모든 분야의 컨셉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컨셉의 뿌리가 튼튼해야 기타 실행을 위한 컨셉들도 힘을 받습니다. 또한 브랜드의 방향성을 설정하기도 쉬워집니다. 360도 360개의 방향 중 우리 브랜드에 딱 맞는 1도의 길을 찾는 기준점이기도 합니다.


그 많은 길 중에 1도의 작은 방향성를 가로채고, 사로잡아, 이끌가는 일. 그리하여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상을 완성해가는 일. 그 게 브랜드를 이루고 있는 많은 컨셉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 매거진 브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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