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에너지를 아끼는 법
회사 복도에서 인상을 쓰고 걸어오는 상사를 보면서 혹시 나 때문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분은 그저 배가 아파 그럴 수 있는데, 내 스스로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인지 나를 향해 인상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한 일 중 어떤 게 못마땅한 걸까를 하루종일 머리 속에 넣고 넣고 다니다 보니 업무에 집중도 안되고 머리도 너무 무거웠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근육이 뭉쳐서 피곤함이 말할 수 없엇다 . 몸 상태가 그러니 업부 효율이 올라갈리가 없다. 책상에 앉아 있지만 머리가 멍하고 무겁기만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상사는 그날 가정문제로 고민이 많은 날이란 걸 알았다.
상사의 표정만 보고 혼자서 없던 일이 일어날 것처럼 재현하고 짐작하고 부정적인 상상을 했던 거였다. 확인이 안된 사실을 몇가지 근거로만 미리 짐작하고 그 사람의 생각을 독심술을 쓰듯이 들여다 보는 태도가 좋지 않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아침에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학교 앞에 내려주고 가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가는 뒷모습이 왠지 짠했다. 혹시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든가?라는 걱정되는 마음도 들었다. 회사가서도 내내 그 뒷모습이 눈 앞에 아른 거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서 아이에게 물어보니 길가에 있는 민들레를 봤다고 했다. 꽃이 피었으니 이제 봄이라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 안심이됐다.
그러다 예전 상사의 표정을 보며 오만가지 상상을 했던 그 날이 생각났다. 그 게 아닐 수 있는데 그 때 내 마음의 상태와 느낌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사실이 아닐 수 있는 것에 신경 쓸 에너지와 시간을 다른 곳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면서 예상하고 틀린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일하면서 잘못 알고 오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예상이 백프로 맞는 초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예상이나 예측이라는 막연함에 몰두하는 건 살아가는데도 사업을 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안된다.
고객들과 메시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면 짧게 돌아오는 문자나 카카오톡에도 민감해진 적이 많았다. 그럴 땐 내 제안에 대한 피드백이나 반응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냥 내 느낌일 때가 많다. 상대는 원래 그렇게 표현하는 게 당연한 사람일 경우도 있는데 짧고 단호한 문자가 그 사람의 무심함과 무뚝뚝함으로 여긴다. 그리고 거기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런데 알고보면 대부분의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러고 나서는 단지 문자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나에 대한 태도를 짐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것들에 에너지를 쓸 시간에 둘이서 해결해야할 당면한 과제에 대한 방안을 고민하기로 했다.
꼭 연락을 하겠다던 소개팅녀는 잘 들어 갔다는 문자 하나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이나 흘렀는데 왜 연락을 안하는 걸까? 속이 타서 문자를 보냈더니 깜깜 무소식이다. 바쁘기 때문일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기어코 확인 사살 문자를 보내고야 만다. 이렇게까지 해서 확인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음에 든다면 전화기를 잃어 버려도 빌려서라도 문자나 전화가 올것이다. 그냥 단념하는 게 상책인데 그 걸 자꾸 부정하게 된다.
굳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아가며 매달리고 확인사살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빠른 단념에 대해 배웠던 것 같다. 빨리 단념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데 시간과 노력을 써야겠다는 판단을 내리게됐다. 물론 여전히 쉽지 않는 일이지만 이정도까지 오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업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일들과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기약이 없는 불완전한 일들의 연속이다. 이런 일들 때문에 심리적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허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 때는 같은 시간 같은 속도로 플랫폼에 들어오는 열차처럼 제안과 의뢰들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는데, 일의 결과를 살피는데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될 일인가. 내가 했던 예상과 결과는 나를 비웃듯 보기 좋게 빗나갈 때가 많았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렇게 변덕 심한 사업이라는 그라운드에서는 불완전함이 불안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그게 그냥 디폴트값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예상한다고 미리 대비한다고 그 불완전함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미리 예상하지 말고 짐작하지 말아야 한다. 애써 결과까지 확인하는데 시간과 심리적 에너지를 쓰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그 에너지들을 모아두었다가 내 사업을 정교화하고 아이템을 개발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데 쓰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다. 예상만 한다고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