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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Apr 03. 2022

실행을 떠올리며 하는 기획의 힘

실행을 염두한 기획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기획을 제안받는 입장에서도 그렇고, 기획하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더 집중도가 생기고 실제 현장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더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


기획서를 그저 기계적으로 일정 분량을 채워서 끝낸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기획서가 나중에 실제로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고 기획하면 더 좋은 기획서가 나온다. 실제 도움을 주는 진짜 기획이 된다. 이는 기획이 계획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습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내 회사, 내 브랜드에 대한 기획을 할 때 도움을 많이 주는 방법이다. 아버지 칠순 상패을 만들다가 썩 마음에 드는 상패가 없어 상패 브랜드를 기획할 때가 그랬다. 내 생각이 그냥 기획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처럼 생각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더 살펴야할 것들을 세세하게 챙길 수 있었다. 이 상패를 다시 아버지가 받아 보신다고 생각하고 기획을 하니 마음 자세까지 달라졌다. 상패를 받고 기뻐하실 모습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기획서를 작성하니 일처럼 느껴지지 않고 선물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브랜딩 서비스를 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항상 마음에 두는 편이다. 이 브랜드는 내 사업이라고 내가 이 브랜드를 키우면 어떻게 키워갈까?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전략에도 깊이가 생긴다. 다양한 접근 방안들을 모색하게 된다.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는 책을 읽은 자세와 방법이 많이 달라졌다. 이럴 땐 이런 표현이 어땠을까? 이 문장은 뒷 문장과 이렇게 연결하면 어땠을까? 이야기의 흐름상 이 단락이 가장 먼저와서 힘있게 시작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게된다. 조금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읽다보니 책 장이 접힌 곳도 밑줄 쳐진 곳도 많아졌다. 내가 이 걸 읽고서 내 글에 언젠가는 써먹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글자 한자 한자가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만약 내가 책을 읽는데만 그치고 쓰는 걸 상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요리에 관심이 생기면서 부터 백종원의 골목식당등의 요리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예전과는 보는 방법과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 시청의 밀도도 올라갔다. 당장 주말 밥상을 책임져야하는 우리집 요리사로써의 책임감은 요리 프로를 보는 집중도를 다르게한다. 요리의 순서를 단계별로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꼭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요리하는 손동작 하나 하나까지 놓지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아졌다. 요리를 즐기기만 하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디자인과의 대학 수업에는 브랜딩 수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나 또한 대학 때 혼자 생각해서 만든 가상의 브랜드로 디자인을 수업으로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 보통 학생들은 카페나 식품 화장품등 학생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자신이 관심있어하는 카테고리의 산업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하다보면 길을 잃을 때가 정말 많다. 교수님께서 가이드를 줘도 방향을 잡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실체가 없는 걸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그 브랜드를 만든 실체가 없으니 현장감이 떨어진다. 실제 비즈니스 해 본 경험도 없으니 체감하기가 어렵다. 상상력만으로는 그 가상의 상황을 디자인으로 현실화한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도전이다. 실제 사회에 나와 해보니 디자인 대학 브랜딩 과제가 더 어려운 미션이었다.


실행을 염두한 기획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반면 실행을 고려하지 않는 기획는 막연하고 단번에 거리감이 느껴진다.


실전을 생각한 예행 연습은 본 행사에 못지 않는 퀄리티를 만들어낸다. 실전을 생각하니 보이지 않던 디테일들이 보이고, 막연하게 상상만 하게됐던 것들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회사가 됐든 브랜드가 됐든 아니 내 개인의 계획이 됐든 당장 이걸 써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사람들 앞에서 시연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기획서에 들어가는 단어 하나에도 더욱 생생한 느낌과 힘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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