뺄수록 더해지는 역설
삼성(三星) 마크에는 왜 별이 없을까요?
파리바게트는 왜 에펠탑이 안보일까요?
기업 상징물의 변화를 보면 기업의 성장이 보입니다. 기업이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고객에게 새롭게 전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메시지 또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의 상징물이 리뉴얼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례는 사업규모의 변화입니다. 기업마다 각 체급에 맞게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게 기업의 모습도 변해야 하죠 이미 대형 마트 규모가 됐는데 아직도 동네 슈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기업은 고객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듯 회사도 자신의 자리와 위치에 맞는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물론 그 변화의 정도는 기업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기업은 얼굴 전체를 성형한 듯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것처럼 변신을 하기도 하고요. 또 어떤 기업은 화장법만 살짝 바꾸거나 머리스타일만 약간 변화를 준 경우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이전보다 더 나아진 것 같은데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만큼 리뉴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류기업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가장 후자의 변화를 추구합니다. 인간처럼 진화해가듯 언뜻 보이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가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이들 기업들의 상징물들 또한 그런 변화의 느낌을 줍니다.
눈에 띄는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보이고, 형태와 색상은 더 단순해집니다. 그럴수록 역설적이게도 더 넓고 깊은 의미와 가치를 품을 수 있는 상징이 됩니다. 모든 기업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오랜 생명력을 가진 기업들이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더 단순해질수록, 덜 표현할수록 커지는 포용력
그 기업들 중 하나인 삼성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별(星)이 세 개(三)라는 다소 노골적인 뜻의 삼성이라는 기업은 처음 사명의 뜻을 그대로 반영해 별 세 개가 결합한 모양의 상징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3가지의 별, 세 개의 꿈을 꾸는 회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초일류, 글로벌 경영을 선언한 '1993년 삼성 신경영'을 통해 기업 상징에도 급격한 변화가 생깁니다. 선언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어야 하니까요. 이를 위해 지구와 우주를 연상시키는 타원 모양의 오벌 마크가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그 후 마크 모양만큼이나 혁신을 성실히 실천한 삼성은 목표한 글로벌 기업의 꿈을 이룹니다. 당시 세계 최대의 전자회사인 소니를 제치고, 휴대폰에서는 갤럭시가 아이폰과 함께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점령해가기 시작합니다. 이에 삼성은 글로벌의 메시지를 담은 타원의 모양을 걷어내고, 고딕 계열의 문자형 마크만을 남겼습니다. 더 이상 글로벌이라는 이미지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알만큼 유명한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글로벌 삼성'이 아니라 그냥 ’SAMSUNG’ 그 자체가 상징이 됐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형상이 아닌 문자로만 이루어진 마크로 변환 상징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큰 가치를 담을 수 있는 기업으로 변화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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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트는 제빵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를 상징하기 위해 론칭 초기부터 에펠탑 모양의 상징을 결합해 쓰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 파리의 가장 강력한 상징은 곧 에펠탑이니까요. 바게트 같은 빵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통해 브랜드가 가진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겠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같은 모회사인 SPC그룹 계열의 브랜드인 파리크라상은 처음부터 파리나 빵의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추상적 로고를 써왔습니다. 이미 파리바게트에서 써 온 상징인 에펠탑은 쓸 수가 없었겠죠. 파리바게트보다는 한 단계 높은 가격대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파리 크로와상은 파리바게트가 쓰는 에펠탑이라는 상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색상 사용에 있어서도 다소 차분하고 고급감이 느껴지는 레드와인계열의 색상을 사용합니다. 같은 그룹의 브랜드이고 파리라는 이름까지 공유하고 있지만 브랜드의 이미지는 전혀 다른 이유입니다.
파리바게트는 지난 2018년 12월, 그동안 썼던 에펠탑이라는 상징을 뺀 채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했습니다. 이미 파리바게트는 국내 독보적인 1위 제과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만큼 더 이상 파리도 에펠탑도 고객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없어진 걸까요. 파리라는 이름을 가졌을 뿐 프랑스식 빵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종류의 빵과 음료까지 판매하고 있으니 납득이 가는 변화로 보입니다. 이제 더 이상 파리라는 특정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냥 'PARIS BAGUETTE'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에펠탑이 빠졌는데도 있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굳이 에펠탑이라는 시각적 장치가 없었더라도 사람들은 '파리'라는 이름을 내뱉는 순간부터 머릿속에는 에펠탑의 형상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에펠탑이 빠졌다고 그리 허전해 보이진 않더군요. 그 빠진 자리를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들로 매장을 꽉꽉 채우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삼성과 파리바게트의 사례처럼 기업의 정신, 성장성, 가치 변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리뉴얼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변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연인처럼 고객들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만 품고 있지 않고 리뉴얼이라는 표현을 통해 브랜드의 마음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러한 활동은 고객에게 믿음을 주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변화의 정도를 결정하는 일이죠. 너무 변해서 낯설어도 안 좋고 하나도 변한 느낌이 없어 하나마나한 리뉴얼은 곤란하겠죠. 지금까지 가져 온 것들과 앞으로 가져가야할 것들의 맥락을 연결한 수긍이 가는 변화여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살펴본 삼성이나 파리바게트의 사례는 이유 있고 적당한 변화의 정석처럼 보입니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반대로 시각적인 요소들을 줄이고 단순해졌습니다. 더 크게 열린 미래와 잠재적 성장성이 느껴지는 아이덴티티 구축해왔습니다. 이러한 '전략의 가시화'는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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