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초식 육식 잡식의 삶

by 우현수

소설을 읽은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년전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삼분의 일 정도 읽다가 그만 둔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기대는 컷지만 좀처럼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읽으면서도 자꾸 같이 구입했던 실용서나 인문서에 눈이 갔다. 저걸 빨리 읽어야 하는데,,,자꾸 조바심이 났다. 그럴때마다 참지 못하고 실용서로 바꿔 들면

소설은 뒷전이 되었다. 그런식의 독서가 계속되었다. 소설의 내용이 재미 없어서라기 보다는 읽은 실적들을 바로 알 수 있는 실용서들을 읽는 재미가 더 솔솔했다. 당연히 그 쪽에 손이 먼저 갔고 그러다 보니 만만치 않은 소설은 뒷전이 되었다. 더구나 실용서는 잠시 딴짓을 하다가 읽어도 금방 글줄의 행렬을 따라갈 수 있는 반면 정서를 읽어야 하는 소설은 한번 맥이 끊기면 그 느낌들 이어가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매번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집중력 있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일상에서 그러한 여유를 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소설과 나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한가롭게 문학이라니 !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동네서점에 들렀다. 대형서점에 갔더라면 관심있는 실용서나 인문서적 코너에만 어슬렁 거리다 나왔겠지만 그곳은 분류가 안된 서재처럼 문학과 실용과 참고서들이 마구 섞여 있었다. 그 곳의 한가운데를 채식주의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마침 여기저기 뉴스나 매체를 통해 보고 관심이 가던 책이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소설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이 흥미로운 상상력을 유도했다 그 단어를 서점의 가판에서 본 순간부터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과연 채식주의자라는 주제로 어떤 얘길 들려줄까?


역시 소설은 쉽게 손을 대기가 어렵지 한번 쥐면 순식간에 빠져드는 마력이 있다. 이 책도 두번에 끊어서 완독할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책장 넘기기가 아까워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었던 김훈의 '남한산성'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때도 여름이었고 선풍기가 옆에 있었다.

여름, 선풍기, 수박, 방학 그리고 소설,,, 참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독특한 소재도 좋았지만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흥미롭게 끌고가는 솜씨있는 문장이 매력적이었다.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능수능란한 문체은 아니었다. 다소 심심하고 밋밋하고 담담했지만 오히려 그런 언어가 더 많은 감정을 담아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1Q84'같은 중단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또 그랬다면 한동안 다시 소설을 집어 드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채식'이라는 화두를 통해 뭘 말하려고 했을까?


읽으면서도 나는 왜 하필 '채식'이었을까라는 물음을 놓을 수 없었다. 왜 하필 채식인가 ?

그 물음을 머리 속에 심고 계속 읽어 내려갔다. 다소 자극적 주제와 스토리에 조금 놀랍기도 했다.

내가 마지막 책장을 덮으로면서 해석한 채식주의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는 힘 없는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 항상 있었지만 주위를 기울이지 못했던 온순하고 순종적인 사람들.

우리 가족중의 한사람일수도 있고 직장 동료중일수도 출근길에 마주친 동네 이웃일수도 있을 것이다.

어깨도 맘껏 펴지 못하고 숨죽여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모습을 '채식주의자'라는 푸르스름한 단어가 상징하는 듯 보였다.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는 일일 것이다. 평생을 을로 약자로 살아가는 일은 고되고 지치는 일이다. 또한 보통 어떤 어떤 '~주의자'라고 하면 자기 목소리도 강하고 주관도 뚜렷한 무리들을 이르지만 채식주의는 그 어떤 '주의'보다 조용하고 덤덤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채식주의자를 양육강식의 약자인 초식동물에 비유하고 싶었다. 잔인한 경쟁을 즐기는 육식동물의 세계에서 초식동물은 언제나 을이고 약자다.

나는 책 표지 뒷장에 있는 작가의 흑백사진이 그러한 초식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운없는 표정과 구부정하게 늘어뜨린 어깨. 온순한 토끼같은 작가의 눈매는 책의 내용과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작가의 사진이 책에 실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반갑지만 한편으론 불편하다. 작가의 사진이 책의 내용에 영향을 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허구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생각과 느낌이 글로 표현될 수 밖에는 없는게 문학작품이라고들 한다. 자기표현의 산물이니 만큼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표현해 내기는 힘들것이다. 그러한 표현의 의도와 메세지를 소설가의 얼굴에서 읽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말도 안되게 위험한 생각이다. 하지만 사진 한장을 통한 이미지적 상상력을 제거하고 소설을 감상하는 일을 불가능하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초식인가 육식인가 아니면 잡식인가

책을 덮고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초식인가 육식인가 아니면 잡식인가 ?

적당히 착한척하고 적당히 투쟁하니 잡식에 속하지 않나 싶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으니 큰 스트레스는 없다. 다만 가끔 내가 어느쪽 노선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잠시 괴로울 뿐이다. 오래 고민하는 성격은 아니라 적당히 타협하고 균형을 다시 맞추는 편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다시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채식주의자들만 가득한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것인가? 아니면 육식주의자들만 가득한 무한경쟁의 세계를 만들것인가?


사실 정답은 뻔하다.

초식 육식 잡식이 잘 어우러진 평화롭고 흥미진진한 적당히 버무려진 세계일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섬처럼 서 있는 표지 그림 속 나무들이 그 의미를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풍경이 다소 건조하고 텁텁해 보이지만

저멀리 보이는 노을처럼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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