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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Oct 18. 2024

스위스 여행에서 바다를 떠올린 이유

여행이 의미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나와 내 주변을 한 발짝 떨어져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살다 보면 그 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 특별한 건지 별게 아닌 건지 알 수 없죠. 여행을 하면서 평소 보지 못한 낯선 사물과 사람을 접하게 되면 시선이 각도가 조금씩 변하는 느낌이 듭니다. 내 주변에 항상 가까이 있던 것들만 같은 각도에서 보던 시선이 달라집니다. 멀찍이서 바라보니 평소에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 다시 보입니다.


융프라우의 백년설 ⓒ B'talks




저에겐 이번에 일주일 동안 다녀온 스위스 여행이 그랬습니다. 대자연 만들어낸 거대한 절경을 보면서는 우리 인간이라는 게 나라는 사람이 그 절경이 들어오는 장면 속 먼지 크기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했습니다. 그렇게나 작은 존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떠들 것도 없고, 뭘 약간 잘한다고 거들먹거릴 것도 없습니다. 또 지금 좀 못한다고 실망할 것도 없고 안되는 게 너무 많다고 불만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나와 내 주변이 세상의 중심은 아니라는 생각이 선명하게 인식되면서 더욱 겸손해졌습니다.





피리스트의 절경 ⓒ B'talks





또 하나 깨달은 건 비교를 통해 나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스위스 가기 전부터는 백년설이 쌓인 알프스의 절경과 동화 속 캐릭터인 하이디가 뛰어노는 산악의 초원을 상상하며 꽤나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융프라우에 실제로 그곳에 올라보니 3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는 내 몸의 컨디션이 정상일 수가 없겠더군요. 전반적으로 몸이 무겁고 기분까지 쳐지곤 했습니다. 고도의 높이만큼 좋은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피리스트의 고도는 조금 낮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와 절벽들이 저에겐 순간순간 공포로 다가오더군요. 내 생각보다 심한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러니 함께 간 어린 자녀들도 즐겁게 타는 액티비티를 함께 즐기기에도 무리가 있었습니다.


피리스트 절벽으로 이어진 스카이워크에도 가지 못하고 그 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런 생각 들더군요.



'나는 산보다 바다가 좋은 사람이었구나'




이 생각은 사실 전에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가장 높다는 알프스산맥을 와보고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건 저의 유년 시절의 기억과도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남단의 작은 포구가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섬마을에서 태어난 저는 그런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그런 평평하고 잔잔한 자연의 모습을 엄마 품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취리히의 도심 풍경 ⓒ B'talks
루체른의 야경 ⓒ B'talks


거기에 더해 '나는 자연보다는 도시가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경이로움이 있는 자연의 경관보다는 도시의 정서와 감각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세련되고 차가운 도시 남자라는 게 아니고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사람들의 손길이 묻는 건축물과 골목으로 이루어진 차가워 보이지만 실은 가장 인간적인 도시가 더 정겹게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유럽의 최고 절경 중 하나라는 융프라우나 피리스트, 그렌델바르트보다는 베른의 구시가지가, 루체른의 성벽 위에서 바라본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 도시의 모습이, 취리히를 흐르는 강 주변의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 인터라켄의 현지 퐁듀 집 주인의 친절함이 더 좋았고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런 장면들 대부분은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여행 경로를 짜서 만난 게 아니라, 그 경로를 벗어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도 이런 경험을 통해 비교해 보지 못했다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겠죠. 그러니 앞으로도 진정한 내 취향을 알기 위해서, 진짜 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런저런 비교 경험들을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이런 저의 취향과 선호들을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으니까요.


 ⓒ B'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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