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롱 Jan 04. 2024

다 해준다고 했잖아.

프로 화장실청소꾼

분명 결혼하고 나서 약속했다. 화장실 청소는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결혼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니다. 화장실 청소는 내 담당이다.


 결혼 전 혼자 살던 기간이 10년을 훌쩍 넘었던 남편은 집안일 중 밥 하는 것 말고는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혼자 살면서도 화장실 청소나 집 정리, 심지어 셔츠 다림질까지 해서 입고 다녔다고 하니 철석같이 믿었다. 결혼 전 가 본 그의 오피스텔은 매우 깔끔했으니까. 하지만 그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산조각이 났다.(아, 그가 지저분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화장실 청소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첫째, 남편은 안경을 벗으면 장님이다.

둘째, 남편이 화장실 청소를 끝냈는데 맘에 안 든다.

셋째, 우리 집에서 제일 마지막에 씻는 사람은 나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한 생각.

 남편의 정확한 시력은 모른다. 대략 20년 전쯤 라식이나 라섹을 하고 싶었지만 안과에서는 못한다 했다 하고, 주변에서는 절대 안경을 벗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단다. 안경이라도 써야 무서운 인상을 가려준댔다나 뭐라나. 남편은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매우 불같은 사람이고 그럴 때 안경을 벗고 얘기하면 상대방은 그 모습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질 정도로 무서워한단다.(남편 피셜 ;-) ) 그런 남편은 아직 40대 중반이지만 노안수술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그런데 노안 수술이라는 것이 있나? 난 잘 모르겠다.)

 안경을 벗으면 눈앞의 글씨도 잘 안 보이는 사람이고 집 안에서도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이렇게 시력이 안 좋은 남편이 씻을 때 안경을 벗고 씻으니 눈앞에 뵈는 게 있을 리가!


두 번째 이유에 대한 생각

 첫째 아이가 돌 되기 직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 후 이사 왔다. 리모델링할 때 고른 타일이 이렇게 미끄러울 수가! 그래서 우리 화장실 바닥에는 항상 미끄럼 방지 매트가 깔려있다. 미끄럼 방지 매트도 두 세 종류를 사용해 보고 겨우 정착한 제품이다. 바닥에 착 붙어  청소하기도 쉬워야 하는 것으로 고르고 또 골라 깔았다.

  자고로 화장실 청소라 함은 이 매트까지 드러내고 바닥을 닦은 후 물기를 제거하고 매트 물기도 마른 후에 다시 깔아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매트를 말리기 위해 걷어서 걸어 놓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미끄러지면 어떻게 하냐고 안전, 안전, 안전을 항상 강조한다. (실제로 넘어지기도 했고, 이것 때문에 결혼 10년 만에 처음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이 화장실 청소를 하면 그냥 깔린 매트 위만 대충 닦는다.


세 번째 이유에 대한 생각

 남편은 6시 15분이면 귀가하는 칼퇴자. 나는 3교대 근무자.

 day 근무: 퇴근 후 옷을 갈아입고 저녁 준비 하기 바쁘다. 남편은 들어오자마자 씻고 밥을 먹는다.

 evening 근무: 밤 11시 반 이후에 집에 도착한다. 모두 씻고 잘 시간이다.

 night 근무: 역시 남편은 칼퇴 후 씻고 저녁을 먹는다. 나는 저녁 먹고 출근 전에 씻는다.

 모든 날 마지막에 씻는 사람은 나다. 그러니 마지막에 씻는 사람이 화장실 청소하기.



그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매트 때문에 화장실 청소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려 육아에 상당 부분을 기여하는 남편에게 화장실 청소까지 바란다면 안되지.

 종종 내가 주말에 근무하게 되면 [월화수목금금금]인 남편을 위해 이 정도는 내가 해도 된다. 그러니 성질내지 말고 화장실 청소는 가뿐히 해 보자. 청소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장비빨을 세워보는 거지!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동지 있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