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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음 May 26. 2016

미신 혹은 무속신앙의 탄생

우리는 무엇에 귀의하는가



 우리는 무엇에 귀의하는가.


 실험실 안은 생각보다 어수선했다. 영겁의 세월을 견딘 갱지 꾸러미는 연구원들의 회백질만큼 주름이 우글쭈글해졌다. 장비들이 디지털이며 듀얼 프로세스라는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서류 더미는 묵묵히 습기와 햇살을 빨아들이며 삭아서 부서졌고, 독버섯처럼 상앗빛 먼지를 발산했다. 새하얬을 벽지는 고운 포자를 수렴하여 알코올이 뒤섞인, 퀴퀴하고도 시큼한 냄새를 풍겼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연구원들은 하얀 가운을 걸치고, 한쪽 벽면을 가린 커튼을 걷었다. 그곳엔 흰쥐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쥐들은 관음증 환자처럼 들여다보는 동공의 정체를 알지 못 했다. 그들에겐 누런 벽지가 대기의 색깔이고, 노란 전구가 태양이었으며, 홍채는 영롱한 성좌였다. 무표정한 연구원이 사육장 하나를 꺼냈다. 녹슨 철제 서랍을 다루듯 한 가정을 함부로 꺼내 들었고, 세입자 하나를 현미경 위에 올려 소모품처럼 다루었다. 녀석에게도 일과의 하나인지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입을 벌리곤 숨을 헐떡일 뿐이었다. 그리곤 톱밥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며칠을 굶주린 녀석은 눈을 시뻘겋게 뜨고 발작을 시작했다. 히스테리이자 일종의 시위였다. 그때 무심코 꼬리로 빨간 버튼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자판기처럼 먹이 하나가 투명 관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녀석은 눈을 희뜩이며 마귀 같은 손으로 먹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곤 빼앗길세라 음흉하게 등을 만 채 갉아먹었다. 그러나 하나로는 건포도처럼 쪼그라든 위의 주름이 펴지지 않은 듯했다. 영악한 녀석은 자신의 행동을 차례대로 되풀이하기 시작했으며, 빨간 버튼의 비밀을 알아내기에 이르렀다.


 녀석이 만족에 겨워 선홍빛 배를 헤프게 드러내자, 연구원들은 배급 횟수를 무작위로 통제했다. 그러자 파친코에 중독된 일본 노인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종일 버튼만 눌러댔다. 지켜보던 이들은 고문으로 말미암아 한정치산자로 전락한 뇌에 환호했다. 서둘러 CT 사진을 찍었고, 신약 개발의 방향을 논의했다.


 쉬는 시간, 한 연구원이 머그컵을 손에 들고 사육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때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두 손으로 꼬리를 문지른 뒤, 먹이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특이사항이 알려졌고, 연구원들은 불량품을 검사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통제 변인에 문제는 없었다. 기록에도 닭장처럼 일정한 식사량과 노란 전구, 그리고 호르몬 주사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미궁에 빠진 그들은 CCTV를 돌려 보았고, 그곳에 해답이 있었다. 녀석은 발정 난 것처럼 버튼을 난타하던 중, 꼬리가 가려웠는지 우연히 문질렀다.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 징크스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그리고 행위를 이어갔을 뿐인데, 때마침 보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연구원들에게 쥐는 더 이상 쥐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동굴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하던 고대 유인원의 그림자였다. 만일 쥐 아파트에 빠르게 전염된다면. 이곳이 녀석들의 성지(聖地)로 변한다면. 그들은 생각만으로도 소름 끼쳤다. 그날 녀석에게는 하나의 미신 혹은 무속신앙이 생긴 것이다. 인간은 우연히 10평 남짓한 세계의 메시아가 되었다.



 수출입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다. 전산 시스템 및 문서에는 익숙해졌으나, 업무의 우선순위가 나를 뒤흔들고 조롱했다. 줄에 엉킨 꼭두각시 인형을 손가락질하는 아이처럼. 그것은 신입 사원이 흔히 겪는 문제였으며, 대개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발생했다. 수출자와 수입자 사이에는 수많은 협력업체가 거미집처럼 촘촘했다. 사건은 항시 매복해 있으며, 누군가의 줄이 느슨해지면 수화기는 총포로 홀변(忽變) 하여 포화를 퍼부었다. 더러 사사로운 업무가 오전을 통째로 집어삼키면, 무슨 환란이 닥칠지 모르는 오후가 공포스러웠다. 이마를 문지른 손에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 나올 때면, 한소끔 끓어넘친 솥의 기분을 헤아릴 수 있었다. 면접 때 호기롭게 외친 '소통'과 '협력'은 끔찍한 단어였고, 그것을 자동응답기처럼 내뱉은 입도 처음으로 미웠다. 출근길에는 부디 누구와도 소통과 협력하지 않는, 평온한 하루를 바라기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 지하철에서 내렸다. 가장 오른쪽 개찰구를 빠져나와 오른쪽 전신 거울을 확인하고, 왼쪽 모퉁이의 편의점에 들어갔다. 진열된 상품 틈에서 우선 킷캣(Kit-Kat) 초콜릿을 집고, 다음으로 냉장실에서 모 회사의 캔커피를 꺼내 들었다. 일본 유학시절, 시험 당일이면 친구들은 킷캣을 깨물곤 했다. 텔레비전 광고가 '킷토 카츠(きっと勝つ: 반드시 이긴다)'라는 의미를 부추긴 이유였다. 나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는 30초 남짓 동안 초콜릿을 남김없이 먹었다. 그리곤 회사 근처 대형마트 앞에서 캔커피를 마셨다.


 그날 일과에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전화기는 호시탐탐 불을 뿜었지만, 실수가 현저히 줄었다. 일을 한 번에 매듭지었기에 동기랑 커피 한 잔 할 여유도 생겼다. 내 의식은 조바심 내지 않고 일을 꼼꼼하게 처리한 것에서 이유를 찾았지만, 무의식은 우연히 행한 아침 의식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무탈한 하루를 기원하는, 내밀한 의식을 반복했다. 혹여 순서에 차질이 생기면 불안하기도 했다. 내게도 미신 혹은 무속신앙이 생긴 것이다.


 일에 능숙해진 뒤에도 꽤 오랫동안 행위를 지속했다. 모든 것은 호젓하게 짊어진 불안 때문이었을 터이다. 우리는 사유(思惟) 하는 주체라지만, 불안함에 동굴 벽화를 그리던 습성을 떨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불안을 따돌리기 위해 불확실한 자연현상, 불연속적인 우연성, 혹은 불가해한 존재에 귀의하는 것은 아닐까. 갖은 불(不)로 시작하는, 가늠조차 어려운 것들 하에서 파리처럼 심약하고 짓눌리기 쉽다고 깨닫는 순간, 도리어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무엇에 귀의하는 존재일까. 거듭되는 하나의 질문과 피상적인 답변들. 그리고 영속되는 순환의 고리.


* 사진정보: 영국 Christ Church
* 사진 및 글의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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