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어떤 질서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은 설명되지 않는 일로 가득했고, 그중 어떤 것들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어떤 것들은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무언가를 믿는다는 게 허황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무언가를 믿고, 그 위에 마음을 의지하고 싶었다. 그것은 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무신론자라는 고백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이것은 이후에 나오는 기도라는 행위를 설명하기 위한 언급일 뿐이다.
기도. 나에게 기도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곳에서 그저 내 안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하고 싶다는 바람과도 같은 것. 그저 그런 결심을 다잡는 일이다.
아무 대상을 갖지 못하는 기도 같은 것을 어떤 밤 눈감기 전 흉내를 낸다. 아무도 들을 리 없는 어둠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꺼내지 않았던 마음을 작은 문장으로 만들어 본다.
‘내 기도는 언제나 같습니다. 나는 바랍니다.’
‘바랍니다. 오늘 내가 다 쓰지 못한 문장이 내일도 남아 있기를. 너무 쉽게 잊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막막함이, 언젠가는 조금 연해져 웃다 꺼낼 수 있는 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끝끝내 나를 삼키지 않기를. 언젠가는 이 두려움에도 끝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나를 구원하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의연히 지켜낼 수 있기를.’
어떤 밤은 너무 고요해서 내가 하는 기도가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누구도 없는 허공에 대고 바란다는 건, 어쩐지 편지를 쓰고도 봉투를 붙이지 않은 채 서랍 안에 넣어두는 일과 닮아 있으니까. 부질없고, 쓸모없고,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 따뜻한 일···.
나는 그 따뜻함 때문에 기도를 흉내 낸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당장의 내일 하루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비슷한 기대를 반복한다. 살아 있는 동안은, 끝까지 바라는 사람이길 바라며. 아무것도 약속되지 않은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렇게 나를 바로 세우고 싶다.
이와 같은 밤을 보내고 나면, 조금은 충만해진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단단해진 마음을 가방에 넣고, 사람들 틈에 섞여 걷는다. 그 확언 같은 다짐이 결국 오늘 하루를 잘 견딜 수 있게 지탱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는 지금도 바란다. 살아가고 있기에 살아내는 이 시간이 언젠가는 나를 덜 고통스럽게 만들어주기를. 그때쯤이면 내 안의 빈자리도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기를. 오래 염원하며 다져온 이 마음이 기필코 나를 지탱하고 있기를. 이 모든 바람을 품은 채, 오늘도 기도를 중얼거린다. 아무 데도 닿지 못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여전히 바라고 있다.
‘오늘 밤도 평온히, 잠드는 밤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