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을 살아낸다는 건, 피는 일과 지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 일. 오늘 피지 못했더라도 내일 한 번쯤은 피어나보자고 조용히 다짐하는 마음 같은 것.
모든 꽃이 물러난 자리에서야 피어나는 꽃이 있다. 초여름의 신선함이 지나면, 햇빛은 가장 높이 떠 있지만 마음은 점점 느슨해진다. 그 느슨한 틈에서 피어나는 꽃. 능소화(凌霄花).
‘업신여길 능’, ‘하늘 소’. 하늘을 얕본다는 뜻을 가진 이름.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이 꽃에게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여름을 견디고 피어난다는 건, 그만한 태도쯤은 필요하니까.
7월부터 9월 사이, 피고 지고 다시 피기를 반복한다. 한 번에 만개하지 않고, 덩굴을 따라 엮이듯 퍼져간다. 어떤 송이는 이미 지고, 어떤 송이는 막 피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을 나눠가며 한 철을 채운다. 엇갈리는 피어남들이 교차할수록, 여름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흔히 꽃은 피는 순간으로 기억되지만, 이 꽃은 지는 방식이 더 선명하다. 흩날리지 않는다. 통째로 툭 떨어진다. 한 송이를 다 피운 다음에야 물러나는 식이다. 그 단호함은 무심한 듯 명확하고, 미련 없이 정확하다. 완전히 피워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생은 이미 충분하다는 듯.
하루하루가 무너지는 것 같아도, 그 안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피어나는 무언가가 있다. 지지 않았다는 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고, 서툰 피어남이라도 이어지고 있는 동안은 삶이 쉽게 꺼지지 않는다.
피고 지고, 또다시 피는 그 반복 안에서 우리는 어떤 날은 무너지고, 또 어떤 날은 서로를 붙잡는다. 누구는 조금 일찍 피어나고, 누구는 끝자락에 닿아서야 겨우 피기 시작하지만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한 번쯤은 만개하게 된다. 그 불완전한 시간들이 모여 여름이라는 계절이 완성된다.
능소화는 혼자 피어나지 않는다. 덩굴 위로 이어지듯 피고, 어디선가는 이미 졌지만 또 어디선가는 막 피고 있다. 하나하나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 연결이 무너지지 않도록 엮여 있다. 누군가 먼저 피어 있기에, 누군가는 계속 버틸 수 있다. 사람 사이도 가끔은 그렇다.
그렇게 엮인 계절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한 철을 건너는 중이다. 누군가의 피어남이 또 다른 이의 버팀이 되어주는 지금, 여름은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