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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Aug 04. 2019

Back-at-cha

당신도 그래요

     나의 소통지수는 얼마나 될까? 내가 만들어낸 궁색한 용어이지만 이런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해왔고 여기에는 당연히 조금 더 나은 소통맨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있다. 그러한 이유로 블로그를 비롯한 각종 SNS를 두루 사용해 왔으니 소통은 아니더라도 소통채널 접근지수는 둘째가라면 서운할 지경이다.  '방귀도 자주 껴야 똥도 싼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낙관주의자이다. 접점이 많아지다 보면 언젠가는 달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그런데 소통의 달인이라니, 너무 추상적이긴 하다.

     많은 SNS 중에서 나는 페이스북을 가장 즐겨 찾고 있다. 비록 1년에 20여 개, 그것도 공유 등을 통해 포스팅을 겨우 이어나가고 있지만 동네 편의점 들락거리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간다. 최근에는 리브라를 발행하느냐 마느냐로 각종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을 묶고 연결하는 <발전은 가능하나 소멸될 수 없는> 유용한 공간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맞는 표현인지 모르지만 화폐계에 달러가 있고 패션계에는 이태리가 있고 SNS에는 페이스북이 있다고나 할까? 



     

     각설하고, 내 많지 않은 친구 중에는 미국인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연세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해안 경비대에서 은퇴하여 캘리포니아에 살고 계시고 자연을 사랑하며 페이스북 상에서 많은 사람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다.

사실 나는 10여 년 전에 페이스 북을 처음 가입했을 때는 이용방법을 잘 몰라서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글을 올리고 이야기 하나 돌아다니며 랜덤으로 친구 신청을 했었는데 그때 친구가 된 분들 중 한 분이다. 그녀의 이름은 엘렌(Ellen)이다.

우리가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여타 사이트들과 마찬가지로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가입만 하고 1년 이상 아무것도 올리지 않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결된 메일 계정에서 <읽지 않은 편지>를 정리하다가 엘렌으로부터 온 메일이 눈에 띄었다. 지루하게 삭제할 것과 스팸 처리할 것을 고르고 있던 중에 멈칫하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이었다. "너 괜찮니? 몇 달째 니 글을 읽을 수가 없어서 걱정이 돼!"였다. 보낸 날짜를 보니 이미 몇 달이 지나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클릭해서 읽어본 내용도 제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서 이런 메일을 받게 되다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나는 곧바로 감사하다는 답장과 함께 페이스북으로 복귀했다. 그 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지만 매일 엘렌의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고 덧글을 달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일상의 인사에서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국적과 온라인이라는 한계로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마음으로 그분과 소통했다고는 얘기할 수 있다. 엘렌의 글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릴 때도 있었고, 친한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그렇게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나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고 엘렌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한 동안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타임라인에서 엘렌이 사라졌다. 1-2주에 한번 캘리포니아 타운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정기검진을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늘 타임라인에 건재하던 그녀가 며칠 째 증발한 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궁금해하다가 문득 걱정이 되어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엘렌의 타임라인에서 그녀의 친구와 찍은 사진을 본 일이 기억났다. 그 친구분의 이름은 로라(Lora)였는데 엘렌과 로라가 주고받은 글을 찾아내어 무례하지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엘렌이 며칠째 타임라인에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았다. 기다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기다란> 시간이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고 기다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곧이어 로라에게서 답이 왔다.  

"그렇구나, 나도 지금은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어, 우리 집이 엘렌 집에서 멀지 않으니 일단 집에 가보고 너에게 얘기해 줄게."

분명히 전화가 있을 텐데 집에 가본다는 건 통화가 안 된다는 뜻이고 혼자 살고 있는 엘렌에게 최소한 통화마저 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걱정 때문에 잠이 설었던 탓인지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메신저가 울렸다.

"걱정 많이 했지? 엘렌을 만났어. 며칠 전에 운전하려고 차에 시동을 켰다가 사고가 나서 많이 다쳤대. 어깨를 수술하고 집에 와 있는데 재활치료를 해야 해서 당분간은 컴퓨터를 켤 수가 없다네. 혼자 있을 때 사고가 나서 의식을 잃었는데 911에 와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대,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엘렌이 너에게 많이 고마워해. 걱정해 주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조금만 기다려주면 페이스북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래. 그리고 나도 고마워, 네 덕분에 친구의 안부를 알게 되었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동안 엘렌을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이 일로 타임라인에 엘렌의 사고가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친구들이 글을 남기거나 병문안을 했고 로라는 간간히 그녀의 치료 과정을 공개했다. 

     대략 한 달 후 엘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누가 타이핑을 도와주었는지 사고 경위와 치료 과정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아직은 팔을 사용할 수 없어서 컴퓨터를 켜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재활치료를 하고 있으니 곧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신이 나서 짧은 글을 계속 올렸다. 

내 글은 너무 좋아 깡충깡충 뛰는 아이 같아서 그녀의 메신저에 돌아다녔을 것이다.

여기 그때 이후로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핵심을 소개하고자 한다.  

"Back-at-cha" (당신도 그러길 바랍니다)
"We are blessed" (우리는 축복받았어)
  

예를 들어, 내가 엘렌에게 "무엇보다 건강하고 항상 행복하길 바라요"라고 말하면 엘렌은 "back-at-cha"라고 짧게 말하면서 "LIsa, We are blessed."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내가 페이스북에 존재하는 이유이고 끊임없이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근거이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당신들도 그러길, 이미 그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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