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eatur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리크매거진 Aug 28. 2020

작지만 꾸준한 ‘영화의 만찬’

집에서 취향과 음식을 나누는 소모임, ‘시네밋터블Cinemeetable’

에디터. 박종우  사진. 최진보  자료. 시네밋터블Cinemeetable



인왕산 앞에 자리한 서울 종로구 연립주택 ‘옥인연립’. 주말마다 이곳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든다. 영화 · 대중문화 전문기자 민용준과 미식 전문기자 이주연이 주말마다 여는 소모임 ‘시네밋터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영화 이야기와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을 즐기는 시네밋터블은 지난 2월 말부터 지금까지 매주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다. <기생충> 이야기를 하며 ‘짜파구리’를 먹고, <아가씨>의 박찬욱 감독 이야기와 함께 영화에 등장한 냉면을 먹는다.

코로나19로 많은 행사와 모임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요즘에도 이 소모임을 지속시키는 힘이 뭘까? 느슨하지만 확고한 취향의 모임을 꾸려나가는 민용준·이주연 부부가 사는 집으로 찾아가봤다. 


부부의 취향이 담긴 책장과 영화 포스터. 시네밋터블 모임 날에는 해당 영화와 관련된 음반, 도서 등을 잘 보이도록 진열한다. ©BRIQUE Magazine




낯선 이와 먹고, 마시고, 떠들기 



각자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용준 2006년부터 영화전문웹진 <무비스트> 취재기자로 일을 시작해 <beyond> <엘르> <에스콰이어> 같은 매거진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영화와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취재를 하고 글을 썼습니다. 작년부터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아내와 시네밋터블을 기획했어요. 저는 1부에 해당하는 영화 해설 파트를 맡고 있고요. 어쩌다보니 이렇게 <브리크brique>와 인터뷰도 하게 됐네요. (웃음)
이주연 저는 대한항공 기내지, KTX 매거진, 아시아나항공 매거진 등에 여행과 미식 기사를 많이 썼어요. 현재 4년째 프리랜서로 <GQ>, <엘르> 등에 미식 칼럼을 쓰고 있고요. 실제로 음식하는 것도 좋아해요. 시네밋터블에서는 미식 기사에서 찾은 새로운 음식 재료로 요리를 해 2부 순서에 시네밋터블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네밋터블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주연 집에 친한 친구들을 불러서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는 자리를 자주 가져요. 소규모 ‘소셜 다이닝’이죠. 어느 날 왔던 손님 중에서 너무 바빠서 빈 손으로 왔다고 너무 미안해하더니, 5만 원을 주고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문득 음식을 해서 정말로 돈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어요. 집을 매개로 소셜 다이닝을 유료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또 남편이 영화 강연을 완성도 있게 하는 모습을 보고, 둘이서 힘을 합쳐서 하나의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민용준 예전부터 영화랑 미식을 연결해서 뭔가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집에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요리를 대접하니까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고, 완성도가 있다는 평가를 꽤 받았어요. 그래서 이 정도면 사람들을 불러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요리를 같이 나눠 먹으면서 돈을 받아도 되겠다 싶었죠.
저희 둘 다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판을 벌이게 됐죠. 그렇게 인스타그램으로 손님 모집을 해봤는데, 모임이 계속 지속이 되다 보니 사실 저희도 놀라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나요? 공통적인 성향이 있나요?

민용준 일단 영화와 음식이라는 주제가 명확하잖아요. 최소한 둘 중 하나에는 관심 있는 분들이 오시는 것 같아요. 모임이나 사람 사이 만남, 교류에 관심 있어 오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이주연 직접 모임을 해보고 싶어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이 되는지 궁금해서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들이 오시면 저희는 해보시라고 격려해 드려요. “우리도 하는데 당신들도 충분히 하실 수 있다.”는 식으로요. 그랬더니 실제 모임을 만드시더라고요.
민용준 집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꽤 오시는 것 같더라고요. 


민용준 씨의 업무 공간. 책장을 통해 개방된 거실과 공간을 분리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BRIQUE Magazine




우리만의 삶이 묻어나는 집 



옥인연립은 1979년에 지어졌던데, 40년이 넘은 이곳에 살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이주연 신혼집으로 삼은 곳은 여기가 아니라 근처 빌라였어요. 다 좋았는데,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습했어요. 그런데 옥인연립은 정남향이라 그런지 햇빛을 굉장히 쨍하게 받고 있더라고요. 지어진지 오래되어 외관이 많이 낡았지만 햇빛을 받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신경쓰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사 가고 싶단 이야기를 꺼냈죠.
민용준 마침 살던 전셋집 재계약 시점이었어요.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건 두 명이 살기 괜찮은 집이라는 것이었어요. 저희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 보니 이 정도 크기의 집을 결정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지어질 당시의 원형이 남아있는 점도 좋았어요. 


원형 그대로의 집을 리모델링 하셨단 말씀이신데요. 공사하기 전에 걱정은 없으셨어요?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잖아요.

이주연 앞서 가게를 할 때 리모델링 공사를 해본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 생각이 반영된 집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가게 공사를 맡았던 인테리어 소장님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서, 집 리모델링할 때도 부탁드렸죠. 


리모델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민용준 집이 어떤 역할인가가 제일 중요했던 거 같아요. 집이니까 당연히 거주 공간이죠. 하지만 동시에 집에서 일할 때가 정말 많더라고요. 마감할 때도 있지만 개인적인 일도 해야 될 때가 있고요. 제 일이라는 게 대부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 써야 하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소장님께 잠잘 공간을 제외하면 구획된 공간이 많을 필요가 없다고 했죠. 그래서 원래 있던 벽을 대부분 철거했어요.
이주연 외관을 제외하고는, 솔직히 다 새로 지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민용준 정말 집을 지은 경험을 한 것 같아 굉장히 재밌었어요. 나중에 집을 지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도 해요. 


집을 짓는다는 것이 곧 나만의 취향을 구축하는 시도의 결정판 같은 게 아닐까요? 말 그대로 나만의 취향과 삶이 실물로 구현되는 거니까요.

민용준 맞아요. 이 집에 처음 지인과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유럽에서나 볼 법한 집 같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요. 정말 그렇다는 말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보기 힘든 형태의 집이라는 걸로 이해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되게 기분이 좋고 확실히 ‘우리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주연 씨가 사용하는 주방. 시네밋터블 모임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손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이다. ©BRIQUE Magazine


말씀을 들어보니, 집에 관심 있는 분들이 시네밋터블을 찾을 만도 하네요. (웃음) 두 분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공간이니까요.

민용준 시네밋터블 인스타그램 계정에 홍보를 위해 집 내부 사진을 올리거든요. 우리 집이 인테리어와 집 공간 구성이 일반적인 집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으신 분들이 가끔 계세요. 그런 분들이 모임을 신청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따로 공간을 빌려 시네밋터블을 진행하지 않고, ‘집’으로 한정시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용준 공짜니까요. (웃음) 다른 공간을 빌리려고 해도, 저희가 이 모임을 정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감이 안 잡혔어요. 그렇다 보니 부담이 없으면서 가장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그런 공간으로는 아무리 봐도 집이 가장 적당하더라고요. 저희는 이미 집에 사람을 초대한 경험이 있어서 집에서 어떻게 놀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집이야말로 저희가 움직이기 가장 편하고, 새로운 모임을 처음 시도해보기 가장 익숙한 공간이죠.
이주연 애초에 우리 집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낀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집 밖 공간은 솔직히 고려해본 적은 없었어요. 1부 프로그램은 공간 제약은 별로 없지만, 2부를 위해 음식을 하는데에는 많은 기구와 재료가 필요한데, 손에 익지 않은 공간에서 진행하기가 부담스럽죠. 그래서 당연히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준비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청소나 음식 재료 다듬는 일 같은 것들이요.

이주연 저희가 오후 3시 반에 모임을 시작해서 평균 저녁 9시 반까지는 꼭 하거든요. 10시 넘을 때도 많고요. 거의 6시간이 넘는 건데. 저희가 이 모임을 위해 오전 10~11시부터 준비를 해요. 오래 공이 들어가요.
민용준 거의 하루가 다 가니 숙박 사업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웃음)
이주연 저번에 어떤 분이 너무 좋아서 자고 가고 싶다고 얘기해서 정말 ‘헉’ 하고 놀랐어요. (웃음) 


30회가 넘었네요. 시네밋터블 이전과 이후로 두 분의 일상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요?

이주연 월요일이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웃음) 주말에 확실하게 빼도 박도 못 하는 일이 생기니까, 오히려 월요일이 저희한테 주말이 됐어요. 그게 가장 달라졌어요.
민용준 낯선 사람을 초대하다 보니 청결함에 대한 부담이 있어요. 서비스로서 모임을 한다고 생각하니 꼼꼼하게 청소를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화장실 청소를 정말 공들여서 해요. 


거실 내부 모습. 부부가 기르는 고양이가 지내는 캣타워가 놓여있다. ©BRIQUE Magazine




모이고 싶은, 만나고 싶은 본능 



코로나19 때문에 걱정되지 않으셨어요?

민용준 저희가 이걸 처음 시작했을 때가 2월 말이었어요. 한창 전국적인 코로나19 감염이 가속화될 때였죠. 시작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이제 막 시동을 걸어보려던 참이었는데, 점점 심해지니까요. 할 수 있는 게 맞는지, 우리가 이걸 해도 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시작을 해보자’라며 하게 됐죠.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모임에 참여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대부분의 모임이 빠르게 마감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민용준 한 번에 4명씩인데 거의 모든 모임이 마감됐어요.
이주연 딱 한 번. 한 분이 못 오신 적이 있긴 했네요.
민용준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임이 취소된 적도 없고, 4명이 다 안 찬 적도 없어요. 소규모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계속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민용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어딘가 가서 놀고 싶기도 하고, 뭔가를 그냥 듣고 즐기고 싶잖아요. 근데 그런 기회가 코로나19 탓에 전체적으로 줄어들었죠. 이런 상황 속에서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나 찾다 보니 시네밋터블을 찾게 됐다는 말씀을 손님들이 많이 하셨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만, 흥미롭게도 이런 상황이 되레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됐어요.
이주연 모임 장소가 공공 공간이 아니고 집이잖아요. 책임이 분명한 거주자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더 안심하는 것 같아요. 


40년 된 옥인연립의 벽을 허물고 천장을 높여 개방감을 확보했다. ©BRIQUE Magazine


그렇군요. 모임을 운영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신경 쓰시는 게 있을까요?

이주연 모든 메뉴를 다 1인용으로 각자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요. 이렇게 준비하고나면 사실 설거지 양이 많아서 힘들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 같아요. 


최근들어 다양한 소모임이 늘어나고 있어요. ‘트레바리’, ‘남의 집 프로젝트’처럼 본격적으로 비즈니스화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고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민용준 사람을 만나고 싶거나 특정 주제를 가지고 누군가와 깊게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결국에는 영화든 음식이 든 특정 주제 안으로 모이는 사람들에 대한 흥미가 있잖아요. 그 흥미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훨씬 깊게 채우고 싶은 욕망도 있는 것 같고요. 


책장에는 민용준 씨가 모은 영화 OST 음반이나 관련 도서, 피규어 등이 진열되어 있다. ©BRIQUE Magazine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민용준 당장의 목표는 올 한 해는 정말 성실하게 꾸준히 시네밋터블을 잘 운영하는 것이에요. 항상 4명씩 꾸준히 차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저희가 잘 하는 수밖에 없겠죠. 올해는 다른 생각하는 것은 없어요. 


이 모임을 사업화할 생각은 없으신지?

민용준 주위에서 이게 사업이 될 수도 있지 않으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인 것 같아요. 지금은 그저 성실하게 잘 운영해보자, 이 정도에요. 


매주 주말마다 모임 운영하시는 건 정말 힘드실 텐데.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주연 우선 즐거워요.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요. 제가 지금 매달 새로운 음식 재료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는데, 시네밋터블이 없었으면 혼자 혹은 남편과 음식 재료를 맛보고 굉장히 평면적인 정보를 주는 기사로 끝났을 거예요. 하지만 이걸 하니까 손님들이 오면, 함께 음식 재료를 맛 볼 기회가 생기기도 해요. 그렇다 보니 기사에 담기는 정보가 입체적이고 훨씬 효용 가치가 생긴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음식을 하고 미식 기자이기도 하니까, 제 일과 굉장히 잘 부합해서 더 큰 효과를 내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민용준 재밌는 일들이 많죠. 결국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건데, 비유하자면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나는 느낌’이에요. 기자 시절에도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시네밋터블을 통해 만나는 분들의 개인 사연이나 희로애락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히려 기자 일을 할 때 볼 수 없었던 훨씬 더 넓은 스펙트럼의 만남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아주 즐거워요. 


시네밋터블 공동 운영자인 이주연(왼쪽) 씨와 민용준 씨. ©BRIQUE Magazine


#시네밋터블 인스타그램 @cinemeetable




<작지만 꾸준한 '영화의 만찬'> 기사 웹 페이지에서 더 자세히 보기  :  http://asq.kr/b99muEzcnmz


<브리크 brique>의 더 다양한 기사 보러가기 : https://magazine.brique.co/articles/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주인이 되는 술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