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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크매거진 Jul 31. 2020

누구나 주인이 되는 술집

매일 주인이 바뀌는 영등포 커뮤니티 바 ‘삼만항’

에디터. 박종우  사진. 최진보  자료. 로모 



피곤한 발걸음으로 회사를 나서는 퇴근길. 하루가 끝나가지만, 집으로 곧장 가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집 근처 골목, 조용한 바에 들러 익숙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의 바, ‘삼만항’은 그런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낸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바를 책임지는 주인, ‘마스터’가 매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덕분에 동네 주민과 외부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독특한 이름과 콘셉트를 가진 삼만항이 궁금해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을 주는 어느 골목을 찾아가 봤다.


마스터 클로이(왼쪽)와 마스터 썽(오른쪽) ⓒBRIQUE Magazine


청과시장과 철물점, 아파트 사이를 지나 도착한 삼만항은 작지만 아늑했다. 운영 담당 매니저이자 마스터인 ‘썽ssung’‘클로이chloe’를 만났다. 또 다른 마스터 ‘OTB’‘사자’와도 각각 대면 인터뷰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 함께 운영하는 바


삼만항. 한자어로 오해하기 쉬운 이 단어는 스웨덴어다. 삼만항Sammanhang은 스웨덴어로 ‘연결’, ‘관계’를 뜻한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공간을 기획한 곳은 지역 재생, 공유공간 운영 등을 담당하는 주식회사 로모. 그 안에서도 로컬 브랜드팀이 삼만항의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다.


“저희 팀원이 이케아에서 쇼핑하다 우연히 본 단어에요. (웃음) 손님들이 바에서 옆 사람과 연결되길 바라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죠.” 로컬브랜드팀 팀장 썽의 설명이다.


삼만항의 항 자는 항구 항(港) 자를 연상시킨다. 이는 일부러 의도한 것으로, 과거 항구가 있던 영등포의 지역성을 담기 위함이다. 이렇게 ‘삼만항’이라는 이름 하나에도 공간의 의도와 지역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삼만항이 생긴 계기를 묻자, 썽은 책 한 권을 보여줬다. 일본의 지역 재생 사례가 담긴 <이음의 카페 – 커뮤니티의 장을 만드는 방법>. 지역 주민들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로컬 커뮤니티 공간 사례들이 여럿 등장한다.

삼만항은 그중에서도 ‘커먼 바Common Bar’, ‘커먼 카페Common Cafe’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지역 주민들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주인도 매일 달라지는 독특한 공간들이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이와 유사한 공간을 구현할 곳을 알아보던 로모는 회사가 위치한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삼만항을 운영하게 됐다.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연결하고 관계 맺기


삼만항의 인스타그램 소개 문구로 쓰여있던 ‘커뮤니티 바’. 국내에서는 생소한 용어인듯 해 썽과 클로이에게 의미를 물었다.


“바의 성격이 있는 게 먼저고, 그러면서 손님들과 더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거죠.”

술과 음료를 즐기는 바. 하지만 단순히 술만 마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손님과 주인, 손님과 손님이 서로 교류하는 바. 썽의 설명을 들으니, 그런 것이 커뮤니티 바의 의미에 가까운 듯싶었다.


“바에는 보통 어느 정도 커뮤니티가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과 손님이 서로 대화하며 소통이 이루어지니까요. 삼만항은 거기에서 소통을 더 강조했다고 보시면 돼요.” 클로이가 덧붙여 설명했다.


사람들 사이의 소통과 연결을 강조하는 삼만항. 그렇다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직은 로모를 아는 분들이 많이 오시는 편이에요.”


이는 삼만항이 오픈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컨셉도 아직 익숙지 않은 영향이 크다. 그래서 현재까지는 로모에 대해 아는 사람들 중심으로 삼만항을 찾고 있지만, 손님 구성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영등포 주민들 중 젊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도 삼만항을 찾고 있고, 마스터의 지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삼만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동네 주민들도 가끔씩 방문하세요. ‘여기는 대체 뭐 하는 데인가’ 하고 궁금해서 들어오시는 거죠. (웃음)”

조만간 삼만항에서 동네 주민과 외지인이 함께 어울리는 날을 기대해본다.


 

ⓒBRIQUE Magazine



매일 바뀌는 주인, ‘마스터’


삼만항 안과 밖에는 한 달치 스케줄이 커다랗게 붙어있다. 스케줄표에는 그날그날 다른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한 달이 30일이니까, 한 달 동안 30명이 매일 마스터가 바뀌는 걸 지향하고 있죠.”

마스터는 주인, 다시 말해 하루 동안 삼만항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그 하루 동안 마스터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음악을 틀 수도 있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고, 공연을 할 수도 있다.


ⓒBRIQUE Magazine


삼만항이 바bar라고 해서, 마스터들이 술 마시는 프로그램만 준비할 필요는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마스터는 커피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마스터는 밤에 다 같이 책을 읽는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음악, 소품부터 음식, 음료까지, 삼만항은 그 날의 마스터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직접 하루 동안 주인이 되어본 마스터들의 반응은 어떨까?


“제가 마스터인 날, 손님들이 가게가 좋다 하니까 제가 더 뿌듯하더라고요.”

삼만항의 1호 마스터 ‘OTB’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제가 마스터인 날에는 이 공간에 저의 색이 조금은 묻어난 거니까요. 그날의 삼만항이 좋다는 평에는 저도 한몫한 셈이죠.”

인터뷰 중인 마스터 OTB ⓒBRIQUE Magazine


마스터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는 금요일 마스터 ‘사자’.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직장인이 아닌) 또 다른 저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소소하게 부담 없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그리고 제 일상 속에 삼만항이 젖어 들었으면 좋겠어요. 동네 친구처럼요.”


이렇게 삼만항은 누군가에게는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공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공간이 된다.


마스터 사자의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 ⓒBRIQUE Magazine



당산동에 뿌리내린 ‘커뮤니티 바’


모두가 주인이 되는 바, 삼만항. 썽과 클로이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어보자, 썽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저희는 이곳이 ‘핫 플레이스’가 되길 원하지 않아요. 단순히 핫 플레이스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 가는 곳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생산과 소비가 이 지역 안에서 돌아가게 하는 것. 그게 큰 목표인 것 같아요.”

힙하고 새로운 공간이 SNS에 올라가고 그걸 위한 공간들이 대세가 되어가는 요즘. 삼만항은 그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삼만항을 운영하면서 바라는 점에 대해서도 물었다.


“기본적으로 따뜻한 느낌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누가 와도 환영해주는 공간이요. 환영이라 해서 거창한 것 말고 익숙하고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클로이가 대답했다.

이어서 썽은 “손님과 주인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요. 손님과 주인의 경계가 없어지고,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커뮤니티 바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라며 삼만항의 정체성인 ‘커뮤니티 바’를 강조하며 대답했다.


SNS 속 ‘핫 플레이스’ 대신 영등포의 ‘커뮤니티 바’가 되길 바란다는 삼만항. 오늘도 당산동 청과 시장 골목 한쪽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브리크 brique> 웹 페이지에서 보기 : http://bitly.kr/PsH6LD2M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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