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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습니다.

by 벼리울

헤어졌습니다. 말로 꺼내진 않았어도,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지요. 처음엔 무작정 밉다 생각한 것 같은데, 이제는 밉다기보단 그저 고마웠단 생각이 남아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많이 걱정하고 고민하던 순간도 이제 끝이겠죠. 끝을 알았다면 이미 알았기에 그를 좋아한 제가 미웠을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정리하며 느꼈어요. 우린 종로에 한 카페에서 잔뜩 젖은 발을 말렸고, 한강을 바라보며 쉬었고, 알파카를 보며 즐거워했다는 걸요.


처음엔 그 정도의 문제일까 싶었고, 이후엔 날 사랑하지 않았음에 대한 원망이 왔어요. 똑같은 이야길 반복하는 셈이지만, 그댈 너무 좋아해 버린 제가 미웠던 거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많이 좋아한다 느꼈기에, 그대의 모든 행동을 탐구하고 싶었거든요, 그게 아니란 걸 너무도 알았는데 왜 멈출 수 없었는지.


친구들이 말렸던 모든 말을 무시하곤 그대가 좋아서 만난다는 말로 퉁친 절 원망했을 뿐입니다. 그것 또한 잠시동안의 일이지만요. 한시도 그대 옆에 붙어있기 싫을 거란 생각도 한 적 없으니, 어찌 보면 순애보라 할 수도 있을 텝니다. 이 순간 용서하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아버지가 말하셨거든요, 미워하는 건 내 속에 품어두는 일이지만, 용서하는 순간 나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그리하여 성장하는 거라고.


그땐 꼭 용서를 해야 할까 싶었는데, 이 순간 용서라는 말이 떠오른 걸 보면 전 당신을 용서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하필 그게 오늘이라, 미웠을 뿐, 온 계절을 이겨내자 하곤, 12월의 첫날 끝을 보게 되었네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단 욕망에 나쁜 말을 숨겨왔어요. 결국 뱉어버렸지만요, 이젠 욕망을 버려야 함을 알기에 글로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네요.


덕분에 5개월을 넘긴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어요. 이런 게 안정일까 싶을 정도로 너무도 믿어버렸죠. 사실, 큰 고난이 없다면 이대로 나이 듦을 함께할 거란 희망을 품었습니다. 감히, 세상을 잘 모르는 제 속마음을 믿어버렸으니 제가 감내할 일입니다.


잘못되었음을 알았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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