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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1호선 지하철, 시끄러운 건 내 속뿐이었다.

by 벼리울

오늘도 평화로운 1호선 지하철, 시끄러운 건 내 속뿐이었다. 평택에서 서정리역까지 단 10분. 이렇게 짧은 시간이 이토록 길고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다.


아랫배부터 끓어오르는 통증과 구역감에 억지로 한숨을 내쉬며 버텼다. 연말의 시작을 고통으로 음미하다니, 이런 연말도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첫 모임. 그 준비를 위해 몸을 일으켜 지하철에 타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릿속에서 다시 되새겨봤다. 모객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모든 불안이 그제야 밀려오는 듯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덩이, 그게 내 몸이었다.


지독한 알람소리를 몇 번이나 끄고 다시 설정하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출발 예정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나 있었다. 은빛 기름이 튀는 소리가 귀를 찌르듯 울리고, 노크도 없이 문틈으로 밀려든 비릿한 갈치향에 잠에서 깼다. 그 순간,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올해 마지막 목표라며 다짐했던 일이 이 지경이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오늘을 위해 술 한 잔도 마다했건만, 몸 상태가 이렇게 될 줄이야.


모객이 생각보다 힘들다는 걸 깨달은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 사실, 소셜링을 한 번도 열어본 적 없는 나에게 누가 오겠는가. 400명이 넘는 타인에게 ”안녕하세요? 저희 모임에 초대하고 싶어 연락드립니다“라는 자존심 없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최소 인원조차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려줘. 나 이번 연도에 이거 못 마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


부모님의 밥 먹으라는 외침에도 ”아프다고! 제발 내버려 둬. 내 끼니는 내가 알아서 할게!“라며 소리치듯 답했다. 배의 통증과 밀려드는 구역감을 눈을 감는 행위로 달래려 이불을 꽉 쥐었지만, 차라리 멈추지 않는 불편함에 눈을 뜨기를 반복했다.


’아니지, 내가 쉴 때가 아니야. 죽어도 해야 하니까.‘


처음으로 주최한 모임이었다. 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다 드디어 행동으로 옮긴 것인데, 여기서 멈춘다면 나는 앞으로도 포기만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30 전에 포기하면, 앞으로도 포기할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밀려오는 구역감을 참아가며 한 마디, 한 마디 겨우 내뱉는 시간. 그렇게 집을 나섰다. 심상치 않은 속을 달래기 위해 약을 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구역감이 올라오고, 배가 아려요. 윗배가 부어올랐는데 이유를 모르겠어요.“


전날까지 아팠던 모든 시간을 이겨냈다며 안도했건만, 유전병도 없고 다른 질병도 없다던 자신감은 무색해졌다. 영웅담처럼 내뱉는 무수면 위내시경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던 나였는데.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조차 감사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서 있는 것도, 기대지 못하고 앉아 있는 것도 서러워 또다시 눈을 감기로 했다. 맞아. 건강이 최고다. 감히 내 몸을 과대평가한 셈이지.


오늘도 평화로운 1호선 지하철, 시끄러운 건 내 속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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