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국어국립원은 이를 외부적인 구속이나 얽매임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의 가치라고도 하지요.
저는 요즘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주 많이도 아닌, 그저 조금. 조금의 자유를 희망합니다.
비를 맞으며 무작정 뛰었던 기억은 아득하고, 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을 꿈꿀 여유조차 없는 현실이 문득 밉게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말라버린 낭만에 대해 생각하니,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더군요. 나는 무엇에 얽매여 있는 것인가. 3가지의 속박이 떠올랐어요.
1. 나 스스로에게 가한 속박.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모든 일을 사진으로 남기고, 글로 기록하며 제 기억을 붙들어 매 왔습니다.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도록,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이었죠. 하지만 요즘은 이 모든 기록이 저를 묶어두는 사슬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2. 타인을 위해 스스로가 자처한 속박.
제 일상은 누군가에게 전해집니다. 택시에 탄 일, 밥을 먹은 일, 카페에 간 일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도요.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일종의 안심 장치가 되는 연락을 남기지요. 그 행위가 저에겐 타인을 위해 자처한 속박으로 느껴져요.
3. 모두를 위한 인내심.
진정한 낭만을 누리기에는 타인의 슬픔이나 다가올 미래 같은 막연한 개념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한때는 30살이 되면 중남미에서 총을 맞고 죽어도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죠.
그리고 이제 30살이 된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이라도 가능할까요?"
답은 "아니요."
그건 철저히 비현실적인 망상일 뿐입니다. 돈키호테처럼요. 생각해 보니, 자유라는 단어는 억압 속에서 더 빛나는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자유를 떠올리는 순간 이미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사슬을 발견하게 되니까요.
요즘 저는 그런 사슬들을 자주 느낍니다. 눈알의 움직임처럼 갑작스럽고 선명하게요.
저는 자유를 사랑해요. 많이도 아닌 조금의 자유. 너무 풀어지면 방향을 잃을 것 같아 두렵고, 지나친 억압은 숨을 막히게 하니까요.
'약간'의 속박을 사랑하는 것도 제 안에 여러 인격이 공존하는 탓일까요. 요즘 저는 조금과 많이의 경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언젠간 길을 찾을지 모를 일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자유를 버리고, 어떤 자유를 택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