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도둑은 집행유예

by 벼리울

요즘 제 시간이 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전 9시 30분, 애인을 배웅하며 일어나는 시간. 오후 10시 혹은 12시, 애인을 마중 나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별다른 목적이 없어서일까요.


애인을 보낸 뒤 화장실로 향해 물을 틉니다. 부은 얼굴을 확인하고, 볼 안쪽까지 손을 밀어 넣어 지압을 하지요. 눈매를 다듬고 치약을 짜 이를 닦으면 아침 준비가 끝납니다.


이후에는 커피를 내리거나, 잠시 컴퓨터 앞에 앉거나, 다시 잠에 들기도 해요. 잠에 들지 않은 날이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다는 그대의 말에 배달 앱을 켭니다. 이건 가격이 비싸고, 이건 한 끼 식사로 아쉽고, 이건 저녁에 먹고 싶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지나가요.


오늘의 점심은 패스트푸드. 배달 온 햄버거를 반으로 잘라 한 입씩 베어 물며 TV를 켭니다. 건강을 챙겨야 한다 생각만 할 뿐 자극적인 게 제일이지요. 이럴 때면 건강도 부지런한 사람이 챙길 수 있는 거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샐러드에 돈을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밥을 먹고 나면 이를 닦습니다. 분홍색 치약 속 작은 알갱이들이 이 사이사이를 꼼꼼히 닦으라고 말해주는 듯해요. 가끔 너무 강한 자극에 물을 머금었다 뱉길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2시를 가리킵니다. 아차차, 정신을 차릴 시간이에요. 아침에 내려 둔 커피에 얼음을 넣고 컴퓨터방으로 향했습니다.


전날의 내역을 살펴보고, 글을 쓰지요. 사진을 편집하고 댓글을 달거나 카톡 답장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 6시. 또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네요.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흐르다니, 시간은 애속해요. 저녁으로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 남은 햄버거를 뒤로하고 장칼국수를 끓였습니다. 유난히 뜨거운 국물에 입천장을 데고, 앞으로는 더 조심히 간을 보자 다짐을 했어요.


다시 휴식을 취하고 이를 닦으면 어느덧 저녁 8시. 그대가 오기까지 두 시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요즘엔 저녁 10시가 그토록 그리워요. 그대의 온기가 없는 10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요.


음악을 틀고, 욕조에 물을 받으면 띡띡-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후 10시. 저는 “보고 싶었어.”라는 말로 그대를 반깁니다. “오늘 하루 어땠어?” 그런 말도 건네면서요.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야식을 즐기고, 눈을 감으면 새벽 3시. 일어날 시간이 곧 다가와요.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요즘 제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르게 지나는 걸까요. 누가 더 잘생겼냐는 질문에 “우리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지.”라고 답하다가도, 눈앞에 펼쳐진 유혹에 잠시 고갤 숙이면 아침이 옵니다. 꿈에서까지 그대를 만나다니, 제가 푹 빠져버렸어요.


그리고 또 하루, 그대를 배웅한 뒤엔 나의 하루가 다시 시작됩니다. 마음대로 흘러가는 내 것 같이 않은 시간 말이에요. 흐름은 애석하다지만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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