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vin Mar 20. 2024

방구석 싱어

떠~나가요~~~ 아주 먼~~~ 곳으로~~~

음악을 듣는 것만큼 나는 노래 부르는 것 역시 꽤 좋아한다. 대학교에서 자취할 때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집안일을 하던 경우가 많았고 운전을 할 때면 차 안이 바로 내 전용 노래방이 되곤 한다.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왜 의아해하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 노래방을 자주 가던 편이다. 미국에는 코인노래방이 없어서 일반 노래방을 가야 하는데 아마 내 친구들은 그 비싼 돈 내며 혼자 노래방을 가고 싶냐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느 취미생활이 그렇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기 마련 아니겠는가. 맨날 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나름대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갈 때 부르는 플레이리스트들이 분위기별로 다 따로 있는 편이다. 그래서 어느 분위기던지 맞춰줄 수 있지만 혼자 노래방을 갈 때면 주로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나만 아는 노래들 그리고 주로 잔잔하고 애절한 노래들을 많이 부른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곡은 락발라드와 인디곡. 내가 부르기 좋아하는 몇몇 곡들을 나열해 보겠다.




1. pale blue note - 엠씨 더 맥스


그 유명한 "어디에도"라는 노래가 들어가 있는 엠씨 더 맥스의 pathos앨범에 있는 수록곡들 중 하나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디에도 보다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엄청난 고음으로 많은 남성들을 힘들게 하는 어디에도 와는 달리 이 노래는 적당한 가성, 미성, 진성이 섞여있어 그나마 조금 부르기 편하다.


"불안한 침묵으로 이별을 얘기하던

슬픈 표정마저 잊혀질까 두려워"


"우리를 써 내려간 창백한 노트 위에

푸르고 동그란 눈물 자욱의 그대"


노래를 볼 때 가사를 많이 보는 나는 이 곡의 저 네 줄의 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노래를 듣기 전 제목만 보면 어떤 의미인가 싶지만 가사에 써져 있는 "창백한 노트 위에 푸르고 동그란 눈물 자욱"을 들어보면 정말 잘 지은 제목이라는 걸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부분은 바로 1절과 2절 사이의 간주 사이에 흘러나오는 관악기 소리가 그렇게 애절하게 들릴 수 없다. 한 번씩 들어보길 바란다.



2. pony - 잔나비


잔나비의 팬이라면 아마 알고 있을 노래지만 잔나비의 유명한 곡들만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가 조금 생소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잔나비의 모든 노래들 중 이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 도입부부터 들어가는 기타 소리와 레트로풍 분위기에 금방 매혹되니 말이다. 이 노래 역시 힘 빼고 부르기 좋은 편한 곡이라 노래방에서 자주 부른다.


"불빛 너머로

여전한 그 길따라 겨눠보던 미래

회심의 미소를 지었네"


노래 멜로디를 빼고 저 가사를 읽으며 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회심의 미소"라는 게 꽤 강력하게 와닿는 듯 몸에 전율이 흐른다. 불확실한 미래를 겨눠보며 짓는 미소 뒤엔 당찬 자신감과 약간의 두려움 하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설렘이 섞여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곡이 현대자동차 광고곡이었다는 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그러면서 뮤비도 함께 봤었는데 연출이 아티스트인 잔나비답게 아주 아름답다. 역시 추천한다.



3. 타인의 기억 - 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들을 열 손가락 안에 꼽으라고 하면 이 노래는 무조건 들어간다. 많이 알려진 "지구가 태양을 네 번"이라는 곡이 실린 넬의 Newton's apple 앨범에 있는 수록곡이다. 어느 가수의 어느 앨범이던지 잘 찾아 들어보면 타이틀곡 보다 수록곡들이 더 좋은 경우들이 많다. 내게 타인의 기억 역시 그렇다.


"널 한때는 눈물로 보내야만 했던

날을 이제 웃으며 얘기하고

잘 살고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궁금해하기도 해"


"마지막 한 번

너의 그 모습을

떠올리고 싶은데"


이 노래는 부르기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그래도 어쩌다 한번 삑사리 없이 잘 부르면 희열이 느껴지는 곡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노래 계속 이어져 오던 고음의 에너지 이후 힘을 쭉 빼며 한탄하듯 내뱉는 마지막 세 글자 "싶은데" 부분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아웃트로가 꽤 긴데 이 부분도 특히 좋아해서 스킵하지 않고 끝까지 듣는다. 여기 소개한 곡들 중 내가 유일하게 기타로 독학해서 쳐본 곡이기도 하다.



4.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 015B, 오왠


1993년도에 처음 출시되고 리메이크가 여러 번 되었던 이 곡도 나를 금방 매료시켰다. 리메이크가 여러 번 되었다는 것 자체가 명곡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노래 분위기도 잔잔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와 커피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할 만한 그런 노래라고 생각한다.


"대신 너에게 부탁할게

우리 아름답던 기억들

하나도 잊지 말고

이 세상 동안만 간직하고 있어줘"


"모든 시간 끝나면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

그때 그 모습으로

다음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이 곡의 후렴구이다. 먼데이 키즈의 가을 안부라는 곡의 가사에 "추억은 짐이 아니라 살게 하는 힘이란 걸"이라는 가사가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문구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노래처럼 추억을 노래하는 곡들이 내게 특히나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지르는 고음이 없어서 부르기도 편하고 자주 듣는 노래이다. 특히 후렴구의 마지막 가사인 "그때 그 모습으로 다음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는 말은 마음을 울리는 애틋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




최근 선물로 마이크와 간이 노래방 기계(?)를 선물 받아 혼자 노래방에 가는 일은 없어졌다. 노래방에 가고 싶을 때마다 집에서 노래방 기계와 노트북을 연결해 노래방 분위기를 충분히 낼 수 있고 시간당 20000원 넘게 아끼는 셈이 됐으니 이보다 훌륭할 수 없다. 뭔가 몰두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건 확실히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번외. L'Amour, les Baguettes, Paris - 스텔라장


스텔라장 팬인 나는 이 노래가 출시됨과 동시에, 아직 유명해지기 전에, 들어봤었다. 불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나는 이 노래의 가사들을 해석 없이 보면서 이해할 수 있었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파리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가사를 읽으며 내 최애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곡도 노래방에서 불러보고 싶었는데 최근까지 수록이 안되어있다가 이 노래가 뜨고 난 이후 노래방에 생겨서 한번 불러볼 기회가 생겼었다. 개인적으로 노래방에 필리핀, 베트남 노래들도 있는데 프랑스 노래들도 생기면 좋겠다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타르시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