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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Apr 26. 2019

잃어가는 것들에 대하여


아빠, 이건...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대중목욕탕 의자에 쪼그려 앉아 내 허벅지 안쪽을 가리켰다. 조심스러웠다. 2차 성징이 한창이라 그랬을까. 부끄러웠다. 그리고 두려웠다. 내 몸뚱이만 달라 보였다. 은근슬쩍 아버지 허벅지를 바라봤다. 쉽사리 유사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가려져있었다. 인류가 달 뒷 표면을 육안으로 볼 수 없듯, 그의 허벅지 안쪽은 내 시야각에 들어오지 않았다.      


원인불명의 형태. 난생처음 보는 상흔이 여린 살 안쪽에 자리했다. 우연찮게 발견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은근히 가려워서 긁었다. 벅벅 긁다가 손톱에 살결이 걸렸다. 움푹 페인 모양. 흡사 바람에 상처가 난 모습. 풍화작용이 허벅지에 일어났다면 딱 그 짝이다. 하지만 그리 세게 긁지는 않았던 기억. 잠결에라도 긁었다면 피가 났어야 했다.

     

임마, 아침마다 국에 밥을 안 말아먹어서 그래!

아버지는 초록 이태리타월로 오른팔 때를 밀어주시며 나를 나무랐다. 그리곤 거뭇한 때를 국수가락처럼 가늘게 말아 내 입에 넣어 주시려 했다. "자, 아~ 해야지." 아버지만의 농담. 이윽고 타월을 낀 채, 당신의 허벅지 안쪽을 드러내 쿡쿡 찔렀다. 눈길은 초록 장갑을 따라 허벅지에 이르렀다. 내 것과 비슷한 흉이 그곳에 있었다. 희미했지만 분명 같았다. 묘한 동질감. 살트임에 대한 기억이다.     


부자는 그렇게 닮았다. 아버지는 모았다. 이것저것 말이다. 아들도 그랬다. 베란다는 가장의 창고였다. 아들은 그를 보며 자랐다. 이내 책상 아래 창고를 마련했다. 아버지 창고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60리터가 족히 넘는 출장용 가방엔 오래된 책들과 수첩. 먼지 쌓인 플라스틱 공구함에는 여기저기서 퍼다 나른 너트와 못 들. 어딘가 해진 옷은 물론이고 표지가 뜯어진 LP판도 가끔 보였다.      


아들은 창고에 레고와 블록이 쌓았다. 여러 시리즈의 레고를 한데 집결시켰다. 초라했지만 그에겐 웅장했다. 족히 몇 년은 모은 규모다. 해를 거듭하며 레고를 이내 다른 물건들로 갈음했다. 아들은 이들을 작은 상자에 담았다. 당시에 추억들이다. 태권도 뱃지나 유희왕 카드, 탑블레이드 등. 이것들이 담기는 데에는 순서가 없었다. 하지만 저만의 이야기 별로 정리했다. 난 모두 꿰뚫고 있었다. 무질서와 규칙이 공존하는 세계. 상자는 작은 역사책이었다. 그간의 발걸음들이 고스란히 저장됐다. 실존의 흔적들이다.      


지구 반대편, 이국땅 방구석 책상을 정리하다 작은 상자가 나왔다. 역시 습관은 못 버린다. 상자는 크기에 비해 실했다. 온갖 티켓, 인화된 사진과 네거티브 필름, 엽서, 편지, 각종 서류와 영수증, 열쇠고리. 심지어 네모반듯한 연두색 올리브 비누도 구석에 각 맞춰 자리했다. 자그맣게 메모가 된 물건들도 있다. 기억하려 애썼나 보다. 아니다, 필사적이었다. 그간 흔적들로 살을 불리려 전투적으로 모은 모양새다. 어딘가 위화감이 든다. 내 실존들의 집합은 어딘가 어색했다.      


모든 게 상자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공간과 시간에 나는 없었다. 동생과의 첫 소주 한잔은 1년을 미뤄야 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거국적인 악수를 남기셨다. 최후의 악수였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언제나 안부를 물어봐주셨다. 그 안부인사도 이제는 내 기억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약속은 1년째 공중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그리고 내 최선은 끝내 그 끝에 닿지 못했다. 링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가능성 없는 승부에 몸을 던지는 나쁜 버릇의 뒷모습이다. 빛살 좋은 개살구다. 이 공허함은 어디서 불어오는 걸까. 4월의 매서운 바람은 살갗을 베어냈다. 채우며 울었다. 잊어야 하는 마음으로 잃어갔다. 흉이 남았다. 허벅지 안쪽 그것처럼. 그래서 가끔 보인다. 가끔 보여서 더 슬프다.      


흉은 미해결 과제다. 해치우지 못한 일이고 잊지 못한 기억과 경험이다. 그래서 흉은 사람들이 현재 힘들어하는 상황들이다. 잃어가며 괴롭고 잊지 못해 아프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서 생각이 나는 역설. 비키니 입은 분홍 코끼리는 머릿속을 이미 꿰차고 있다. 프랑스의 은퇴한 젊은 고관이 말했듯 어떤 일을 잊고자 할수록, 더 강하게 기억에 남는다.      


흉을 드러내려 한다. 마주하려한다. 달리 방도가 없다. 늘어난 살들로 거죽은 이미 갈라졌다. 이어 붙일 수도, 다시 메울 수도 없다. 의도적으로 떠올리고 당당히 그 앞에 맞설 수밖에. 잃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과정이다. 그들에 미안하지 않다. 미안해하는걸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미안해하지 않길 바라서다. 대신 만나자. 그 아픔들을 대면하자. 참으로 가혹한 일이다. 아, 사르트르 당신이 다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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