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컬 튠과의 만남
오래전 핫한 신인 가수의 갓 녹음한 음원을 들었다. 보컬 튠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이었는데 익히 듣던 실력이 아니라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음반 보컬 튠은 방송 보컬 튠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음반에서 잘 부르는 가수가 라이브 방송에서 죽을 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컬 튠의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보컬은 보컬, 악기는 악기, 따로따로 분리되어 해당 파일의 턱도 깎아보고, 눈도 크게 해 주고, 키도 크게 만들고, 멋진 외국 배경까지 덤으로 넣을 수 있다. 실시간 사진 편집 기술의 발달을 보면 조만간 실시간 튠도 완벽해지지 않을까 싶다.
음반과 마찬가지로 방송 음악도 보컬만 따로 녹음한다면 어떤 장소, 어떤 환경에서의 (라이브)무대라 한들 완벽한 결과물이 나오긴 마찬가지다. 유튜브에 떠도는 MR제거 영상이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보컬을 완벽히 튠하고 연주를 제거한 영상들이다.
2. 음반형 가수, 라이브형 가수
보컬 튠은 쉬웠지만 공영 방송은 보수적이기에 방송 데이터(가수의 목소리) '반출불가' 시기가 있었다(현재 시스템은 튠을 원하지 않는 내추럴 보이스의 가수들도 튠 약속을 받는다). 십여 년 동안 시스템이 180도 바뀐 셈이다. 물론 예전에도 음반과 똑같은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억지로 데이터를 반출한 사례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골칫거리였지만 지금으로선 그들이 방송 튠의 선구자인 셈이다.
3. 더 좋은 퀄리티, 완벽한 무대를 위한 선택
한국 대중음악은 나는 가수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방송 튠의 본격적인 역사도 나가수와 함께 시작한다. 그때는 더 좋은 퀄리티, 완벽한 무대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 당시 데이터는 반출 불가였기에 녹화 후 밤을 새워서 방송국내의 녹음실에서 튜닝을 했다. 그렇게 역사적인 무대가 탄생되었고, 모든 음악 방송의 기준이 되었다. 잠시 생방송으로의 전환도 꾀했지만 완벽한 무대를 위해 한주만에 녹방으로 돌아갔다. 이후의 모든 프로에서 서서히 튠이 일반화되었다.
4. 고음 전쟁
가수들은 더 이상 고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치가 조금 떨어져도 상관없다. 점점 시스템은 체계를 갖추었고, 여러 프로그램을 거쳐 과감하게 진화했다. 라이브 무대인데 이래도 될까 하던 마음들은 좋은 무대를 향해 거듭 단결해 나갔다.
- 지르고 깔끔하게 튠하는 경우
- 부분적으로 새로 부르는 경우
- 스튜디오에서 통째로 새로 부르는 경우
- 여러 번의 리허설을 통해 축적해 놓은 데이터를 교체하는 경우(주로 본방 때 노래를 놓치거나 가사를 틀리는 경우)
- 특정 고음을 녹음해두고 그 부분만 립싱크하는 경우(일반적인 오디션은 아님)
새로 부르게 되면 무성영화 보듯 화면과 입이 안 맞는 경우가 있다.
5. 순위 프로그램
종편이 개국하며 많은 오디션 프로가 생겼고 대부분의 경우 보수적인 공중파와 많은 부분이 달랐다. 앞다투어 과감한 튠을 시행했고, 그 결과 몇몇 생방송 무대는 폭망에 이르렀다. 시즌이 바뀌고 생방 무대에 앞서 등수에 든 참가자들에겐 소프트 튜닝을, 명예?롭게 탈락하는 참가자들에겐 하드 튜닝을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이 갑자기 무너지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많은 일반인 가수들이 종편 프로그램에서 유명세를 얻었지만 그들의 가왕급 무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우후죽순으로 프로그램이 생기며 더 이상의 신인이 존재하지 않게 되어 모든 프로그램을 돌며 '가왕급 영상'을 셀렉하는 일반인 가수들이 늘어갔다.
가수와 일반인이 듀엣으로 노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많은 인기를 얻고 감동의 무대를 만들었지만, 현장에서 한번 어긋난 그들의 화음이 다시 만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도 그 팀은 우승했고 많은 환호를 받았다.
6. 최후 승자는?
보컬 튠으로 모두가 웃는 것은 아니다. 우리 뇌리 속 가왕들은 딱히 얻을 게 없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작은 실수들을 커버해주는 튠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있다. 가장 큰 혜택을 본 '가수 군'은 찌르는 가창력이 떨어지는 음색 깡패 집단이다. 주로 음원 강자들인데, 대부분이 라이브에서 폭발력이 없다. 반대로 음정은 좋은데 크게 색깔이 없는 시원시원한 스타일의 가수들이 득을 못 봤다.
진짜 승자는 따로 있다. 우리는 비 가수들의 '천상의 하모니'를 기억한다. 왜 굳이 천상의 하모니란 용어를 썼을까? 현장에서 그들(주로 운동선수)의 목소리는 참 어린아이 같았다. 기교 없이 책을 읽듯 노래를 읊는 수준이었는데, 튠을 거치면 십중팔구, 백발백중 천상의 목소리가 됐다. 그만큼 음악에서 음정이란 절대적인 것!
기억에 나는 경우 중 잘생긴 외국인 음치 참가자가 있었다. 노래를 못 불러 현장에서 히트였는데, 방송은 제법 잘 부르게 나와 재미가 싹 가셨다. 후에 외국인 토크 프로그램으로 잘 풀렸다.
다년간 보컬 튠을 지켜보며 가장 놀라웠던 무대는 개그맨, 배우들의 무대다. 결코 완벽하지 않지만 열정적이고 표현이 '매우 과했던' 무대가 기계를 거치자 사람이 부를 수 없는 경지, 흡사 부르노마스의 경연을 보는 듯했다. 더 과하게 표현하자면 제5원소의 외계인의 노래 근처까지 갔다.
7. 변화의 시기
많은 방송 근로자들이 무의미한 경연에 대해 점점 얘기하고 있다. 지금의 음악산업을 부흥하게 해 준 이 튠을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 더 늦기 전에!! 내일은 늦으리!!
- 1992 '내일은 늦으리' Album [Produced by Shin Hae Chul]
- Composed & Lyrics by 신해철(Shin Hae Chul)
- 넥스트(N.EX.T), 봄여름가을겨울, 윤상, 유영석, 신성우, 015B, 김종서, 이승환, 신승훈, 서태지
BONUS 영상 - 기똥차게 노래 잘 부르던 우리 선배..선조님들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