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달리는 믿음

「인생 시험 열일곱 계단」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여정을 따라

by 제이콥

1. 들어가는 말


온 세상이 마라톤 열풍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도로 위를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달리기는 ‘가성비 운동’을 넘어 자기 성찰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반복 속에서 사람들은 ‘동적 명상’을 경험한다. 나 역시 작년부터 달리기를 통해 많은 유익을 누리고 있다. 처음엔 단지 체중감량을 위한 유산소 운동이었지만, 어느새 일상의 리듬을 형성하고, 육체의 회복을 넘어 삶의 본질을 묵상하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바쁜 일상 중 가장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소중한 순간이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길고 예측할 수 없는 코스 위에서 믿음의 호흡을 잃지 않고, 인내와 시험을 거쳐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 시험 열일곱 계단』에서 아브라함이 통과한 열일곱 번의 시험은 바로 그 믿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달리면서도, 때로는 멈추고, 기다리며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 여정 중에서도 핵심적인 세 계단이 있다. 안전지대를 떠나는 첫 번째 계단, 지연된 축복 속에서 인내로 기다리는 여섯 번째 계단, 비극의 사점을 통과하는 열네 번째 계단이다.

아브라함의 인생이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단거리 경주였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떠남과 기다림, 사점의 고비를 지나서야 비로소 완주에 이르렀다. 이제 그의 인생 시험 세 구간을 따라가며, 아브라함이 어떤 믿음으로 그 코스를 달려갔는지, 그리고 그 여정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떠남의 결단, 출발선에 서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떠남’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12장 1~2절의 유명한 이 장면은, 많은 신앙인들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아브라함이 단순히 고향과 가족, 친지 같은 익숙한 환경만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아브라함의 떠남은 풍요롭고 안정된 삶의 터전, 하나님 없이도 만족할 수 있었던 일상으로부터의 결별이었다. 그는 우상을 섬기던 갈데아 우르에서 신상 제조업자로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충분히 번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모든 ‘안전지대’를 내려놓고 믿음의 길로 나섰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지 않았다. 믿음으로 갈데아 우르를 떠났지만, 그는 또 한 번 ‘하란’이라는 중간 지대에서 멈추게 된다. 어쩌면 이 중간 지대가, 처음 떠나는 결단보다 더 큰 시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한 번 순종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 정도면 됐다’는 타협의 유혹이 그를 붙잡았을 것이다. “이만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이 정도 결단했으면 됐지.”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시 떠났다. 그는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었고, 순종으로 응답했다.

아브라함의 반응 앞에서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나에게도 떠남의 결단이 있었다. 장교로 전역한 후, 여러 선택지 중에서 나는 가장 불확실한 길을 택했다. 안정된 회사가 아닌, 막 창업한 스타트업이었다. 아무런 보장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장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리라 믿었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을 달려왔다. 초기 멤버로서 귀한 경험들을 쌓았지만, 어느새 감사보다 불평이 더 많아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안락한 중간 지대를 허락하신다면,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믿음의 길을 걷겠다고 말하면서도, 내 속에서는 점점 지치고 건조한 언어만이 남겨져갔다.

나는 여태껏 안전지대로부터의 떠남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의 끝이 아닌 시작임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떠나온 순간의 믿음만 붙잡았을 뿐, 그다음 믿음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 안전지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에, 중간 지대를 경험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한 대로, ‘떠나라’의 다른 이름은 ‘버리라’였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의심, 조금이라도 빨리 열매를 거두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 이 정도면 올바른 신앙인 아니냐고 생각하는 교만을 하루 속히 버릴 때, 비로소 이 경주의 출발선에서 내가 떠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3. 지연된 축복 속에서, 기다림의 훈련


믿음은 떠남으로 시작되지만 기다림으로 자라난다. 떠남이 결단의 용기를 요구한다면, 기다림은 그 결단을 견디게 하는 인내를 요구한다. 아브라함은 지연된 축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의심하게 된다. 그가 기다리던 축복은 ‘자식’에 대한 약속이었다. 하나님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아브라함이 백세가 될 때까지 지연된다. 사라는 이미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브라함은 실망과 피로 속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p.121)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안전지대를 떠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왔다. 백세가 되기까지 수많은 시험을 통과했지만,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라톤으로 치면, 출발선을 떠나 30km 지점에 이른 셈이다. 불규칙한 호흡과 무거워진 다리를 버텨가며 달렸지만, 결승선은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이쯤 되면 여태 달려온 거리를 돌아보기보다, 남은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지만, 지난 은혜를 잊어버리는 일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했던 죄의 근원이 된다.

이런 종류의 시험은 오히려 믿음이 깊은 사람에게 더 고통스럽다. 엘리야가 이세벨 앞에서 무너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그분의 침묵에 더 쉽게 좌절한다. 은혜를 많이 경험했기에, 그 은혜의 타이밍조차 스스로 통제하려는 교만이 생기는 것이다. 전도서 3장 1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일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하시지만, 그 때를 사람으로 하여금 측량하지 못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그분의 때를 겸손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마냥 기다리게만 하시지 않는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언약의식’을 언급한다. 짐승을 둘로 쪼개고, 언약의 당사자가 함께 그 사이를 지나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만히 두고, 홀로 그 사이를 지나가신다.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내가 너에게 한 말을 지키지 않으면, 나를 쪼개도 좋다. (그러나) 너는 앞으로도 나와의 언약을 어길 것이다. 해서, 너는 이 길을 함께 지나가지 않게 하겠다.”(p.128)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약속을 깨뜨리는 나를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그 기다림은 충분히 견딜 만하다.


4. 사점을 통과하는 믿음


믿음의 여정에는 기다림조차 멈춰버릴 만큼 비극적인 순간이 있다. 그때는 더 이상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는 믿음이 요구된다. 오랜 세월을 믿음으로 달려온 아브라함 앞에, 하나님은 가장 잔혹한 시험을 요구하신다. 바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이 순간은 아브라함에게 진정한 ‘사점’이었다. 그에게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이자, 생의 의미 그 자체였다. 우리야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시험인지, 단순한 요청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이 사건 이후 사라와 아브라함이 별거에 들어갔다고 해석한다.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아브라함에게는 완주의 여정 중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아브라함의 반응이 이전과 달리 침착하다는 것이다. 지연된 축복 속에서 흔들리던 모습은 사라지고, 그는 고요히 제사를 준비한다.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앞에서, 아브라함도, 이삭도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는 믿음을 드러냈다. 그 믿음이 바로 ‘힌네니’(여기 있습니다, p.251)의 고백이다. 완전한 헌신과 내어드림의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은, 눈앞의 사점도 사점이 아닌 듯 지나간다.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러운 구간을 넘으면, 그 뒤로는 다시 처음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마라톤에서는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른다.

‘힌네니’의 믿음이 있다면, 사점은 오히려 역전의 기회가 된다. 그 시점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것만 넘기면 결승점이 가까워진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분명 나의 삶에서도 여러 번의 사점을 경험했다. 큰형의 조현병 발병, 삼수로 이어진 수험생활, 광야의 시간과 같았던 장교 군복무. 여러 가지 어려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러한 사점 뒤에는 가정의 화목, 한동대 입학, 깊어진 신앙의 열매와 같은 간증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사점의 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신 일들을 발견하게 하셨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계획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셨다. 마치, 아브라함의 외아들 이삭의 제물을 준비시키셨던 하나님이, 먼훗날 그 유일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부르셨던 것처럼 말이다.


5. 나가는 말


떠남에서 시작된 믿음의 경주는 기다림을 지나, 사점을 통과하며 완주에 이른다.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모델인 아브라함은 수천 년 전, 그 모든 인생 시험을 통과하며 축복의 열매를 맺은 사람이다. 결승점을 통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은 그 고통스러운 경주를 다시 달리고 싶을 만큼 달고 값지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이 기쁨을 믿지 못해 출발선 앞에서 멈추지만, 이미 달리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완주의 기쁨을 반드시 누리길 바란다.

이 책을 만난 시기가 내게는 큰 은혜였다. 인생의 여러 시험 한가운데에서, 내가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고 그 모든 시간을 ‘시험 통과의 여정’으로 다시 해석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관계와 사랑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내게 큰 지혜와 위로가 되었다. 이 책이 앞으로의 결혼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게 하는 지침서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인생의 결승점은 우리가 언젠가 다달아 도착하는 곳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달려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그분과 함께 매일매일 결승선을 통과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붙드시고 끝까지 완주하게 하시는 그분과, 이 믿음의 여정을 오늘도 성실히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