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2막을 시작하는 누군가를 향한 예찬
2023년 11월 무렵 작성한 글입니다.
23년 하반기 장군 인사가 발표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땅하다’고 생각한 결과와 전혀 달라서,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고는, 축하 인사와 함께 전해드리려던 이 글을 조심스레 비어있는 결재판 사이에 끼워두었습니다.저의 진심어린 마음이, 이제는 처음으로 내려갈 준비를 시작하실 그분께 가닿기를 바라면서요.
‘별’. 이보다 더 사람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천체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별은 태양이나 달처럼 우리 지구에 큰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저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다시 그 자리에 있어 줄 뿐이지요. 아스라이 먼 곳에서, 요란하지 않은 적당한 빛을 내뿜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별빛을 바라보며 한껏 젖어드는 밤이면 우리는 얼마든 사색에 잠기고, 삶의 위로와 도전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도 ‘별 헤는 밤’을 보내는 걸 좋아했더랍니다. 그렇게 별 하나에 사랑과 후회, 그리고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 시는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를 밝혀 나갔습니다. 별은 그래서 아름답고, 우리에게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그런 별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밤이 아니라 낮에도 말이죠. 다만, 제가 마주하는 별은 지상에서 걸어 다니는 별입니다. 그리고 천체가 아닌 사람이죠. 사람들은 그 별을 ‘장군님’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별을 보좌하는 부관입니다. 사회에서는 보통 ‘비서’라고 부르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죠. 주변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을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별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군대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하지요. 군에서는 별이 훨씬 더 아득하게만 느껴지니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이렇게 별을 보좌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바라보니 제가 모시는 분은 별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죠. 그래서 오히려 저는 별을 헤아려 보게 되었습니다. 빛나는 별, 그 무게를 견디는 한 사람의 마음을 말입니다.
제가 모시는 분의 어깨에는 두 개의 별이 수놓아져 있습니다. 별 하나에 ‘책임감’, 별 하나에 ‘애국심’이라 할 수 있을까요. 책임감, 그것은 그분의 상징과도 같은 단어입니다. 실제로 그분의 집무실에는 이런 문장이 적힌 팻말이 벽에 걸려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단순히 조직에서의 위치에 따른 좌우명이라기에는 그 무게가 상당한 문장입니다. 제아무리 최고결정권을 지닌 누구라 해도 이 문장을 선뜻 내세우긴 망설여질 겁니다. 미디어를 통해 흔히 접하는 지도자나 리더의 모습이 그렇잖아요. 어떻게든 책임은 떠넘기고, 불리할 때는 먼저 뒤로 숨거나 도망가는 모습. 하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이 문장의 무게를 잘 아시는 듯했습니다. 항상 예하 부대의 일을 두루 살피시며, 본인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셨으니까요. 그리고 필요할 때는 현장에 직접 나가 하급자들의 불편한 소리에 귀 게울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상관에게 적극적으로 건의하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평상시 그분의 웃는 모습을 자주 보진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분의 성정이 본래 그렇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늦은 밤, 외부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껏 나른해지신 그분을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예하 장병의 임무와 안전을 책임지는 지휘관의 무게가 그분의 이런 호탕한 성품을 누르고 있다는 것을요. 그날 이후로 한가지 결심한 게 있습니다. 혹여라도 그분이 제 정성과 노력을 알아주지 않으신다더라도 절대 괘념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리더를 기대합니다. 리더의 헤아림을 곧 책임감으로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언제나 구성원이 절대다수입니다. 리더가 그 많은 사람의 마음을 일일이 돌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어도 그분이 저에 대한 책임감만은 느끼시지 않길 바란 셈입니다. 그분의 책임감이 오로지 필요한 사람에게만 향할 수 있도록 하는 일. 그거야말로 별을 헤아리는 첫걸음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 그분에게 빼놓을 수 없는게 있다면 그건 애국심입니다. 그분이 별이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을 따지면 아마도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을 겁니다. 애국심이 아니라면 달리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변함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자리를 지켜나간 그 긴 세월을 말입니다. 단지, 그건 오로지 그분만의 애국심은 아닐 겁니다. 함께 그 시간을 견디며 품어준 그분 가족 모두의 애국심으로 보아야겠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당돌했구나 싶지만, 처음 그분과의 식사 자리에서 제가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장군님은 처음부터 군인이 되고 싶으셨습니까?”
뜬금없는 제 질문에 그분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어쩌다 보니 군인을 하게되었다며 멋쩍은 대답을 하셨습니다. 사실 의외까진 아니어도, 왠지 제가 기대했던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까지 오르신 분이기에, 뭔가 투철한 사명감이나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위인전’다운 인생사를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맥빠지는 대답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떤 대단한 사람이 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처음부터 대단한 꿈과 목표가 필요한 건 아닌가 보다 싶었습니다. 당시 저는 앞으로 제가 무얼 하며 인생을 헤쳐갈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는 싶은데, 무엇 하나에 가슴 뛰는 열정을 느끼는 게 없어 자신을 답답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그분의 답이 한결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분처럼 조금은 빛날 수 있을까요?
그분이 가장 빛나 보이던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을 모시고 다른 지역으로 처음 출장을 갔을 때였습니다. 일과 후 저녁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일정이었는데, 역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당연히 그분을 역에서 숙소로 모실 차량과 운전병을 미리 계획했습니다. 늦은 밤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별을 상상하진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출장 전에 계획 보고를 드리는데, 갑자기 차량협조를 취소하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신 때문에, 그 늦은 시간에 운전병을 고생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었죠. 결국, 저와 그분은 밤늦게 귀가하는 인파로 가득 찬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열차에 인원이 너무 많아서 그분은 온통 몸을 찌그린 채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분은 전투복 완전 복장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지하철을 타던 불특정 다수의 예비역 남성들은 이 낯설고, 생경한 장면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누군가를 불필요하게 고생시키기보다 이런 일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그날 밤, 지하에 뜬 별은 어느 때보다 눈부셨고, 저에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느낄 때 작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별은 그 무게만큼의 존중을 받진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점점 네팔의 ‘쿠마리’ 여신을 연상케 한다고 할까요. 쿠마리는 네팔 힌두교의 살아있는 여신입니다. 보통 초경 전 어린 여성 중 엄격한 조건을 통해 선발하는데, 여신의 몸에서 조금이라도 피가 나오면 부정하게 취급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그래서 쿠마리는 숭배의 대상이지만, 혹여라도 상처나 피 흘리지 않도록 온종일 몸을 사리고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별의 무게를 견디는 분들도 이와 비슷할지 모릅니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 사고를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평생을 헌신해왔어도, 언제든 갑작스럽게 물러갈 각오가 필요한 겁니다. 마치 밤하늘의 별이 언제든 소멸하여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듯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소원을 빌듯 생각해봅니다. 언젠가 그분이 별똥별이 되어 내려오는 순간까지, 부디 별일 없이 반짝반짝 빛나고 계시길요.
부관은 장군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건 마냥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동할 때 항상 그림자 방향으로 대각선 뒤에서 따라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로 그분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요즘은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 처음 취임하실 때까지만 하더라도 굉장히 건장하셨는데 말입니다. 그간 빠져나간 몸무게만큼이나 어깨 위로 많은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셨겠지요. 언젠가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해변 길을 따라 지나며 차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는 평소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저런 곳 놀러 갈 수 있어 좋겠다. 나는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여태껏 그런 삶을 죽 살아오셨겠지요.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할 일을 더 많이 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일탈을 스스로 자진 반납하면서. 동시에 가족들에게도 그런 삶을 마음껏 선사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을 느끼면서 그렇게, 그렇게 사셨겠지요. 당신의 부관이기 이전에, 휘하에 있는 장병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신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 하늘의 별만큼이나 아름다운 별이었다는 사실과, 가난하던 날 저 하늘을 가르며 조국을 지키던 한 명의 청춘 조종사였다는 사실을. 오늘도 이렇게 발걸음을 따라 뒤를 밟으며 별을 헤아려 봅니다.
P.S 명예로운 전역을 축하드립니다. 이 나라를 위한 당신의 35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