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중심
최근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이 그렇듯, 나는 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고 있다.
평생을 우등생으로 살아오면서, 늘 칭찬과 기대를 받아온 나였기에 정말 오랜만에 듣는 지적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더욱이 미친 듯이 바쁜 생업과 병행하기 위해 그야말로 시간을 분초를 다투며 쪼개 쓰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음이 더 쪼그라들어서 선생님의 지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물론, 나만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지적을 받지 않는 학생은 드물고, 선생님 또한 ’지적을 통해서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한층 더 심도 있는 지식을 얻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으니 ’지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생님의 의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지적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까. 나는 왜 다른 사람들로부터 늘 칭찬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나 역시도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한데.
불편한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면, 평생을 우등생으로 살면서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진 생각이나 관념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 또한 나 자신의 일부라고 인정하는 것은 참 어렵다.
하나하나 글자로 풀어내고자 하는 지금의 시도도 힘겨워서 나는 계속 도망치고 싶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굳은살처럼 박힌 생각과 관념들이 앞으로의 나를 더욱 불편하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평생을 우등생으로 살아왔던 나는 남들로부터, 특히 선생님 등과 같은 권위자들로부터 칭찬과 기대를 받는 것이 익숙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던 나의 성취는 그들의 칭찬과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나 스스로가 그런 칭찬과 기대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게 만드는 근거였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기대를 받는 것이 당연한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나는 지금도 ‘그렇다’라고 답하겠지만, 그 의미는 이전과 다르다.
이전의 나였다면 ‘그렇다’는 답변의 의미는 ‘다른 사람보다 공부도 잘하고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한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하다‘라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은 모두 다 특별하니 나도 특별하다‘라는 의미다. 방탄소년단도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빛나는 별이며 세계라고.
저마다 모두 특별한 존재들이니,
거기에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교육과 사회화를 통해서 ‘사람은 저마다 특별하다’라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우월감을 지속적으로 입증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세상의 전부였던 나의 부모는,
내가 입고 싶은 바지를 골랐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별난아이’라고 부르며 내 취향을 고집하는 것을 비난했고, 남동생이 남아 있는 과자를 모두 먹어버리는 것이 걱정되어서ㅡ내 남동생의 세계에서 누나들 몫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다 자기 것이었으니까ㅡ 내 몫의 과자를 숨겨놓자 ‘아주 지만 안다‘라며 나를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아이로 매도했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3일밖에 남지 않아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할머니집에 가지 않겠다고 얘기했을 때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지. 공부만 잘하면 다냐‘라며 나의 인성을 폄하했고, 밥벌이를 시작해서 정신없이 바쁜 내가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엄마의 하소연을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다고 하자 ’아주 지 혼자 큰 줄 알지. 돈 좀 번다고 유세냐‘라며 나를 불효막심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유별나고, 이기적이며 몰상식한 데다 인성도 덜되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내 취향과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고, 정당한 내 몫은 애써 외면한 채 다른 사람들을 후하게 대접하려고 했으며,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공부를 잘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어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내가 막돼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단순히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만으로는 부모로부터 받은 낙인을 지우기 부족했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통해서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하고 뛰어난 특별한 사람이니까, 나도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된다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 아닌 ‘지적’은 그 경중을 불문하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내 부모의 나에 대한 평가를 정당화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참, 이렇게 단어로 생각을 정리하니
지난날 어린 내가 참 많이 애썼구나 싶다. 누구는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혹은 어쩌면 내 생각과 달리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당연하게 주어지는, 존재 자체의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사실 인생에서 큰 고비를 만날 때마다 나를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동아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칭찬과 인정’만이 진짜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칭찬과 인정‘이 없어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내 부모가 말한 것 같은 ‘못돼먹고 몰상식하고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그 어떠한 ‘지적’도 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고, 내 존재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없다.
설령 내 부모라고 하더라도, 나의 존재와 그 정당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어렵게 정말 어렵게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