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근성, 노력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
나는 좀처럼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성격이 아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마음인 건지 '부러워할 것 없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부럽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낼 때는 단지 상황이 부러울 때뿐이다. 같이 술 마시는데 친구는 내일 연차라 출근을 안 한다던지 하는 상황 말이다. (지금은 내가 백수라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늘 부러워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 길이 내 길이 맞는지를 고민해 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고민 끝에, 혹은 처음부터. 가고 싶은 길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 길로 정진하는 일만 남은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고 부럽다. 아직 갈길이 구만리일지라도, 내가 재능이 있고 애정이 있는 분야를 찾은 사람들은 이제 다른 길 한눈팔 필요가 없지 않은가. 물론 그 길을 찾았다고 할지라도 할 일이 태산이고 한계는 느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뭘 하면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나 싶다. 나는 내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늘 망설였고, 늘 의심했다. 이 길이 맞나. 그래서 어떤 것에 몰두해서 노력해야 할지가 미지수였다. 다른 친구들은 성을 만드려고 기둥을 쌓고, 마을을 꾸리려고 물을 퍼오는 동안, 모래사장에서 뭘 할지를 몰라서 냅다 흙만 파고 있는 것이다.
여행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모두 자기 직업을 말할 때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다. 타국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아예 회사를 꾸리고 있고, 누군가는 이제 시작이지만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탄탄히 쌓아가고 있다. 나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그 친구와 식사를 하면서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그 분야를 이만큼 진지하게 하게 될 수 있던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그를 찾는 클라이언트들도 있고, 자신의 커리어를 잘 쌓아나가고 있었다. 그가 원래부터 그 분야에 재능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의 작품은 좋아 보였으니까. 그런데 그의 입에서 의외의 답변이 나왔다.
"내가 이 일을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나는 악바리야. 내 재능은 그거야."
원래부터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고 잘난 체할 수도 있는데, 자기는 노력파라고 말하는 점, (나도 모르게 노력파보다 천재파 유형이 더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악바리 재능이 있는 점. 두 가지 모두가 대단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바가 있으면 독하게 노력해서 해내는 편이라고 했다. 그게 본인이 가장 잘하는 거라고. 아, 나는 그 친구가 또 부러워졌다.
나는 악바리 분야, 그러니까 근성 있고 끈기 있고 독하게 노력하는 면에서는 재능이 전혀 없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독하게 노력해 본 적이 없다. 물론, 뭔가에 빠지면 몰두해서 하는 편이지만 노력해서 얻어낸다는 느낌과는 달랐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공부를 늘 하기는 하는데 성적이 어중간했다. 하루는 그것에 대해 불평을 했더니, "네가 80만큼 노력하니까 80점을 받는 거야. 네가 100점을 받고 싶으면 100만큼 노력해야지. 100점이 맞고 싶은 것 맞아?"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단지 우리 딸 고생했어, 좀만 더 노력해 보자, 라거나 아니면 그 정도도 충분히 노력했어,라고 했으면 나는 내가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내 상황을 짚어준 덕에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나는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바란 적도 없고 그래서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적당한 노력에 적당한 운 덕에 대체로 평탄하게 살아왔다. 아니면 내가 재능 있는 것만 해서 적은 노력으로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노력이라는 것을 대단하게 숭고한 것으로 생각해서 내가 하는 건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 내게, 노력이 재능이라는 그 친구의 말은 정말 충격이었다. 노력도 재능이다. 노력도 재능이다..
이번에 새로운 진로를 찾으면 정말 노력을 다해보고 싶다. 악바리 근성으로 임해보고 싶다. 그런 다음 내가 노력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2024년 5월 초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