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감 줍는 사람들

오늘도 영감을 수확하러 거리로 나선다.

by 젊은 느티나무

내 손을 거쳤던 많은 선택의 순간들. 내가 결정했던 모든 것들. 새로운 시도들. 그동안을 돌이켜본다.


항상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았다. 뿌연 안개가 낀 드넓은 곳을, 한 발 내딛고 그 앞에 한 발 내딛고. 그 끝에는 뭐가 있을지는 모른 채, 그렇지만 어렴풋이 잘가고 있다는 마음을 지닌 채. 내가 원하는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하면 그쪽으로 그렇게, 한 발씩 내디뎠다. 이번엔 이쪽으로 가볼까, 이번엔 여기를 내디뎌볼까, 하면서. 그러다 기차를 타서, 레일 위를 운전하려니 특별히 내가 선택할 순간이 많지 않았다. 두 갈래길 정도는 있었지만. 나는 곧잘 운전해 나아갔다. 그렇게 익숙해질 때쯤, 나 지금 근데 어딜 가는 거지. 이 길 내가 선택한 길 맞아?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너무 멀리 왔잖아, 라는 마음에 기차에서 내렸다. 너무 오랫동안 기차를 탔더니 걸어서 앞으로 내디뎌 나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지나온 길도 다시 살펴본다. 그래, 내가 이만큼이나 왔구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다른 사람들은 저기로 가있는구나. 이번에는 어디로 갈지, 얼마나 갈지 조금은 정해두고 기차를 타려고 한다. 조금만 쉬었다 가려고 한다. 쉬면서 길을 좀 찾아보려고 한다. 지난날 나는 어떻게 길을 찾았나 떠올려본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을 '인플루언서(influencer)'라고 한다면, 주로 다른 사람에게서 영향이나 영감을 받아서 내 것을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뭐라고 할까. '인스파이리(Inspiree)'라고 부르면 될까.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전시가 될 수도 있고, 영화, 책, 아니면 누군가의 일상,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 날씨, 이 모든 것들이 내게는 영감의 원천이고 그 속에서 나는 항상 아이디어를 얻어 무언가를 만들거나 내 길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 내겐 양질의 콘텐츠를 마주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들은 내게 자양분이 된다.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내겐 '일'이다. 꼭 필요한.


한 달간 여행을 간다. 그 '일'을 하러.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새로운 영감을 한가득 주워온다. 원랜 2주 정도를 계획했었다. 주변에 이직하는 사람이 유독 많았는데, 다들 바로 이직했거나 잠시 쉬었다 바로 취직한 사람이 많아서, 여행을 길게 못 간 게 아쉬웠다고 했다. 긴 여행이 끝나면 남은 돈은 거의 남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길게 여행을 갈 수 있을 날이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여행을 다녀오면 퇴사 후 5개월 차에 접어든다. 그래도 괜찮다. 먼 훗날 돌아봤을 때, 내가 잠시 쉬어있던 1년이 아쉬울까? 후회될까? 아 그때 1년 쉬지 말고 바로 이직할걸 싶을까? 전혀. 차라리 아, 그때 조급해하지 말고 편히 쉬었어도 됐는데, 라고 생각할 거다. 늘 그래왔으니까. 물론 나도 나태함을 제일 무서워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돌아오면 마음이 지금보다는 더 조급해질 것이다. 그래도 간다. 그래야 한 발이라도 내딛을 수 있으니까.


2024년 3월의 기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