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을 위한 십계명
첫눈과 생일에 설레지 않으면 어른에 가까워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첫눈이 오면 5초 정도는 설레지만 이내 퇴근 걱정이 앞서고, 생일은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는 정도의 의미인 걸 보니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 그래도 1년에 한 번 있는 날이니 그냥 지나가기는 아쉬우니, 올해는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당부의 편지를 보내려 한다. 행복한 인생을 위한 십계명이라 해두자.
1. 내 편이 되자.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는 종종 나에게만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볼 때는 긍정적인 점이 먼저 보이고 칭찬에도 후한데, 그에 비해 스스로에게는 이상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거나 단점을 먼저 볼 때가 있다. 아니, 이 퍽퍽한 세상에 '부둥부둥'하며 살아가도 모자랄 것을 왜 그렇게 나 자신을 채찍질하지 못해 안달일까? 자신에게 늘 관대할 필요는 없지만, 쓸데없이 엄격할 필요도 없다. 가장 든든하고 강력한 내 편이 되자. 나의 성과를 평가절하하지 말자. 그리고 스스로를 충분히 칭찬하자. 잘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2. 완벽주의를 버리자.
이 내용은 2년 전 심리상담을 받으며 깨우친 것이다. 2년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고 조금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오랜 시간 동안 '중간만 가자'는 마음으로 별 욕심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그게 정말 '중간'이고, 욕심이 없는 걸까? 난 말로는 '중간만 가면 된다'고 말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수준 정도로만 잘하고 싶다'며 '그렇게 열심히 살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게 아니다.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하고 잘하는 것만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거다. 기대도 이상도 목표도 엄격하게 잡으니까 노력할 엄두도 안 나는 거지. 목표를 너무 높게만 잡으니 시작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고 쉽게 지치는 것이라고 한다. 나의 이상이 높다는 걸 인정하고, 한 번에 많은 걸 바라기보다는 조금씩 나아가자. 정말 1도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여...
3. 자신을 받아들이되, 조금은 나아지도록 노력하자.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누구나 고치기 힘든 단점이 있다. 혹은 단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을 수 있다. 부끄러워하고 숨기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그것까지도 전부 나라는 걸. 하지만 바꿀 수 없다고 포기하지는 말고,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몇 년 전 겨울,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인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놀러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낯을 가리면서도 사람 만나는 건 또 좋아하는 모순적인 인간이라서 주저 없이 수락했다. 아주 추웠던 주말 저녁, 약속 장소에 도착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가 막혀 20분 정도 늦을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있으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다. 조금만 걸어가면 미니스톱이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색하게 앉아있느니 차라리 편의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다잡고 자신에게 말했다. "ㅇㅇ(내 이름)아, 찐따같이 굴지 마." 사실 난 찐따가 맞다. 하지만 용기를 냈고, 안으로 들어가 난생 처음 보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를 기다렸다. 찐따력을 5점 정도 감점시킨 순간이었다. 나는 여전히 찐따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자랑스럽다.
4. 칭찬에 "아니다"라고 답하지 말자.
인생을 엄청나게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일상에서 이래저래 크고 작은 칭찬을 듣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우며 자라온 터라 칭찬을 들으면 거의 자동 반사 수준으로 "아니에요"라는 대답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대답은 칭찬을 해준 사람과 칭찬을 받은 나 자신을 모두 부정하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자신에게 '아니다 금지령'을 내렸다. 솔직히 지금도 칭찬을 들으면 '아니에요'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아직까지는 칭찬을 뻔뻔하게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아니다'라는 말만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래, 나 잘했다!) 아이고, 쑥스럽네요. (그래, 나 잘했다!)
5. 생각과 말을 일치시키자.
심리상담을 받으며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 생각과 말을 일치하지 않으면 그 괴리로 인해 인생이 피곤해진다. 거창해 보이지만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나 화 안 났어"라고 말하는 것, 사실은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이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까지 피곤하게 만드는 길이다. 모든 걸 곧이곧대로 다 말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생각하는 바와 정반대로 이야기하지는 말아야지.
6. 신중하되 가끔은 도전해보자.
원체 성향 자체가 안정적인 걸 선호해서 나름 신중한 편이다. 덕분에 큰 실패나 위험은 피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실패와 위험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더 두렵게 느끼는 것 같다. 실패하지 않는 대신에 크게 성공하기도 어렵고, 때로는 작은 실패에도 크게 좌절하고. 물론 신중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돌다리를 심하게 두드리면 건너기도 전에 돌다리가 부서질 수도 있으니까. 아주 조금씩이라도 가끔은 도전해보자. 수동적으로 이끌려서 도전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주체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7. 무리하지 말되 꾸준히 운동하자.
30대는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고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필라테스를 1년 6개월째, PT를 7개월째 하고 있다. 약골도 아니고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겁과 엄살이 동시에 많은 노답 개복치에다가 허리디스크 트라우마로 인해 운동 진도는 좀 더딘 편이다. 체력이 좋아지는 것도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몸뚱이가 개선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지금의 운동은 다이어트나 미용을 위한 것이 아니다. 건강하게 살고 건강하게 늙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과하게 운동하거나 자격 미달인 강사를 만나서 무리하는 건 절대 안 된다. 병원비가 더 나오는 수가 있다. 나에게 맞는 운동과 좋은 강사를 찾아서 꾸준히 운동하는 게 최고다. 나도 지금처럼만 해야지.
8. 건강검진 결과지의 지시를 따르자.
건강검진 결과에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게 물론 최고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하나둘씩 특이사항이 생겨날 것이다. 진료를 받으라고 하면 바로 받자. 추적검사를 받으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3개월마다, 6개월마다 받자. 조심하라고 하면 조심하자. 건강검진이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될 수 있다. 별거 아니라고 넘기지 말고, 귀찮아하지 말자. 진료에서, 추적검사에서 별것 없었다면 괜히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자.
9. 액상과당을 줄이자.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바로 액상과당이다. 차라리 커피를 좋아했다면 좀 나았을까. 나는 아메리카노를 싫어한다. 하지만 코카콜라, 사이다, 각종 주스와 에이드, 매실차, 휘핑크림이 올라간 프라푸치노, 딸기청이 잔뜩 들어간 딸기 라떼, 차이 티 라떼와 녹차 라떼, 진한 핫초코와 아이스 초코를 사랑한다. 칵테일도 모스코뮬, 진토닉, 피나콜라다처럼 달달한 것만 좋아한다.
액상과당이 특히 나 같은 체질에게는 쥐약인 걸 알기에 언제나 노력은 하고 있다. 이성이 작동할 때는 늘 홍차를 주문하기 때문에 페퍼민트와 카모마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프라푸치노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시키고,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땐 (정말 맛없지만) 제로 콜라를 마신다. 간신히 억누르고는 있지만 나의 본능은 365일 24시간 코카콜라와 오렌지주스와 핫초코를 외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의 남은 인생은 액상과당을 향한 본능과의 끝없는 싸움일 것이다. 어제는 승리했어도 오늘은 또 실패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전쟁이다. 유병장수의 지름길로 질주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자.
10.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핸드폰을 보지 말자.
당장 오늘 밤에도 또 실패할 것 같은 열 번째 십계명. 대부분의 현대인이 실패하고 있을 거라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불 꺼놓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좀 보지 말자. 알람 맞춘다는 핑계로, 날씨 확인한다는 핑계로 핸드폰 보다가 유튜브나 나무위키의 알고리즘으로 흘러가지 말자. 핸드폰은 내일 해도 된다. 다음 날 아침의 피로만 더해질 뿐이다. 이런 사소한 걸로 삶의 질을 떨어트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