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교사들을 갈라놓는 그 한 통의 문자
성과급 평가 결과가 담긴 쪽지가 던져진 후, 부서의 동료 교사들은 자물쇠로 채운 듯 입을 닫았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덜렁 문자 하나가 날아든다. "당신의 업무 성과는 O등급입니다!" 무너지는 수치심과 내려앉는 자존감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20년째 이어진 이 제도는 대다수 교사들이 반대함에도 여전히 강제되고 있다. 억지 평가기준을 만들고 점수로 환산해 3단계 등급을 매기고 50~100만 원 정도 차이나는 돈을 차등 지급한다. 20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 투쟁의 힘은 약해지고 권력 앞에 무릎 꿇은 교직사회는 돈 몇 푼으로 갈라지고 비교육적 문화가 자리잡았다.
"당신의 업무 성과는 B등급입니다." 돈보다 더 자존심이 짓밟히는 건 바로 이 '등급'이다. 비능력자로 등급 매겨진 기분은 교사로서의 자부감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공정치 못한 기준이 나를 비능력자로 낙인찍었다는 생각에 주눅이 들고, 다른 교사를 질시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제부터는 교재연구보다 업무만 신경 써야지"라는 교육 포기성 '업무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제 현장 교사들은 '수업 잘하는' 교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아이들 마음을 잘 헤아리는 교사보다 엑셀 함수를 더 활용하거나 빠른 클릭으로 업무 처리하는 교사를 능력자로 인정한다.
교사들은 서로 다른 교과, 다른 업무, 다른 교육 가치를 추구하는데도 비교질당하고 줄 세워지고 있다. 더욱이 이 성과급 제도는 교육 목표 달성에 관심이 없다. '수업시수', '부장 여부', '담임 여부', '연수시간'이 평가기준의 전부다. '역할을 얼마나 잘했는가', '연수 내용이 교육에 도움이 됐는가'는 묻지 않는다.
매년 교사들이 개선을 요구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교사 분열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오래전 교사들은 과중한 수업과 보충수업, 담임 업무에 밤늦도록 아이들과 함께했다. 그들이 어떤 대가를 바랐던가? 젊음의 열정을 교육에 바치고, 그 보상은 따뜻한 마음 하나였다.
지금은 다르다. 나이 든 경력 교사들은 컴퓨터를 못한다거나 업무가 적어 보인다는 이유로 눈총받는다. 경력교사의 교육관과 노하우는 버려진 분필 쪼가리가 되었고, 그 자리를 경쟁적 등급과 수치가 차지했다.
구겨진 자존심을 누르고 조용히 있다가 떠난다. 선배교사의 노하우나 교육철학은 현장에서 관심 밖이다. 교사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해졌다.
20년간 각 정부는 '창의융합인재', '미래 교육', '핵심 역량' 등 거창한 교육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학생들이 창의적이고 협력하며 따뜻한 심성을 가진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 아니었나?
'성과급'으로 교사를 옥죄는 제도가 이런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가? '수업시수', '업무', '연수시간'이라는 평가 요소는 교육 목표와 거의 무관하다. 어떤 업무는 S등급, 어떤 업무는 B등급이 정해져 있다면 평가의 '신뢰성'도 없다.
이 땅의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는 '경쟁' 가치가 이제 교사들을 '반목과 질시'의 블랙홀로 밀어넣고 있다. 교사들이 경쟁하며 살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경쟁'일 수밖에 없다.
협력은 훌륭한 단어일 뿐 어떻게 협력하는지 가르치지 못한다. 교사는 학생 감시자이자 경쟁의 심판자로 전락했다.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 들은 가장 황당한 말은 "고3은 체육대회 안 한다"였다. 단 하루의 즐거운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 학생들은 보장되지 않는 내일의 행복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억압당하고 있다.
성과급 제도 이전 교무실에서 교사들은 학생들 교육 이야기로 웃고 울었다. 교무실은 풍물시장처럼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조용한 연구실이기도 했다. 교사들은 눈을 마주치며 아이들 교육에 대해 토론했다. 그때는 존경받는 교사가 있었고, 교육은 경쟁하듯 하지 않았다.
지금 교무실은 파티션에 가려져 옆 교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교사들은 옆 동료에게 묻지 않는다. 동료와 마주하는 시간보다 컴퓨터를 마주하는 시간이 더 길다.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풍경은 사라졌다.
성과급 제도는 교사들을 경쟁하도록 부추겼고, 대화 없이 기계적 업무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는 매년 성과급 평가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동료교사들 때문이다. 그들은 다수가 거부하는 억지 기준표를 만들어야 했고 관리자를 대신해 등급을 매기느라 애를 먹었다.
담임이나 부장은 연수 사이트에서 클릭 몇 번만 더 하면 백만 원 이상 더 받는다. 하지만 절대 성과급을 잘 받을 수 없는 교사들이 있다. 부장이나 담임이 아닌 교사는 아무리 힘든 업무를 해도 죽어라 연수를 받아도 무조건 B등급이다.
이런 위치의 교사들에게는 일 열심히 안 하기를 권한다. "세상이 공정할 거야"라는 헛된 기대는 접어야 한다. B등급을 벗어나는 기적은 절대 없다.
고3 담임을 맡은 해는 무척 바쁘고 힘들었다. 업무에 지쳐 수업에 지장을 초래할 때가 많았다. 일부 교사들은 방학에도 사명감과 경제적 보탬을 위해 방과후 수업에 참여한다.
하지만 나는 방학 때 쉬지 않으면 다음 학기 수업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쉼'과 '여가'의 틈이 생길수록 수업의 질이 높아졌다. 방학 때는 다양한 활동과 여행을 하며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플레이'의 저자 스튜어트 브라운이 말했듯이 '놀이는 창의력'이다. 교사도 학생도 여가가 필요하다.
시키는 대로 '가만있으라'는 말에 꼼짝하지 않았던 300명의 아이들은 물에 수장당했다. 그 아픔이 아직도 온 국민의 가슴에 생채기로 남아있다. 오랜 세월,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는 교사들 또한 더 깊은 곳으로 수장당하고 있다.
도대체 수장당한 그 마음은 겸손인가, 비겁인가?
체육을 가르치는 나는 수학이나 영어 교사와 비교 평가받고 싶지 않다. 같은 교과 교사들과 협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나는 성과급 제도가 폐지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않음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는 작금의 교사들 또한 더 깊은 곳으로 수장당하고 있다.
도대체 수장당한 그 마음은 겸손인가? 비겁인가?
체육 교과목을 가르치는 나는 다른 수학 교사, 영어 교사 등 다른 교사들과 비교질 당하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 나는 같은 교과 교사들과 협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나는 성과급 제도가 폐지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