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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딴지 Aug 16. 2023

탈바꿈 교사의 낯선 한 학기

#7. 서울교사 강원교사 되기

난 30년간 익숙했던 서울 삶을 떠나 강원도로 터전을 옮겼다.

교사는 다른 직장보다 이러한 탈바꿈(?) 기회가 좀 쉬운 편이다. 그러나 교직조차도 정보 없이 무모한 선택을 할 경우 후회할 수 있음을 알았다.

새 삶의 짧은 경험과 주관적 시각이 혹여 모를 타시도 이전을 고려하는 교사들에게 참고해 볼 수 있는 자료이길 바라며 몇 글자 적어본다.


서울교사에서 강원교사로 탈바꿈 한지 다섯 달.

한 학기가 끝났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집, 학교, 아이들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어색함이 익숙함으로 자리 잡은 지금

내 삶은 세 가지 초점을 가진다.

집, 학생, 학교


치악산 중턱에 위치한 내 ''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원 OO도시에서 만난 수많은 '학생'들은 내가 수업에 게으르지 않도록 늘 눈빛을 마주쳐 주었다.

'학교'는 각 지역 도시의 독특한 교육 문화 특성이 존재하였고, 그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1. 내 '집'은 해발 350m

겨울은 길고, 여름은 시원하며, 골바람은 끊이지 않는다.

귀가 길 산딸기 밭, 내 손은 유혹을 참지 못한다.

냉장고에 쟁여놓은 딸기잼을 망각하고 오늘도 산딸기 밭 앞을 서성인다.


칡이 다른 식물을 덮어 버렸다.

가려진 식물들이 답답하다 아우성친다.

낫을 들고 달려간다. 나의 무차별 개입은 자연의 질서를 흐트러놓았다.


늦은 밤, 자전거 퇴근길에 마주친 새끼 고라니.

이 녀석이 어젯밤 내 밭의 아욱과 고춧잎을 먹어치운 그 녀석인가?!

네가 내 터전을 침범한 거냐? 아님 내가 네 터전을 침범한 거냐?


날씨가 습해 몸이 가려운 뱀은 대낮, 도로 위에서 똬리를 틀었다.

목숨 걸고 일광욕을 한다.

가는 차들이 녀석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쌈채소가 무섭다. 먹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르다.

먹지 못한 쌈 채소들은 결국 꽃을 피웠다.

어떤 꽃도 이쁘지 않은 꽃이 없다.


장대비가 그친 후 내 집은 구름 위에 올라앉았다.

저지대 도시는 모두 내 발 아래 꿇어앉았다.

높은 곳을 오르는 정복자의 욕망이다.


내 집은 해발 350m,

내리막 출근길,  봅슬레이다.

오르막 퇴근길, 터질 것 같은 혈관의 기운을 느낀다.

난 자전거족이다.


#2. 최고의 '학생'

강원도 OO도시에서 만난 중학생들.


한 반 인원이 서울보다 열 명이 더 많았다.

예상되는 수업 힘듦이 두려웠다.

그러나 힘들지 않았다.


교사가 베풀어야 할 친절을 아이들에게 받았다.

교사가 주어야 할 용기를 아이들이 주었다.

교사가 느껴야 할 자부감을 아이들이 선물했다.


교직을 마무리하는 늙은 교사에게 아이들은 과분했다.

아이들과 수업하는 매 시간이 행복했다.

교사가 힘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수업이다.


방과 후에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과 여백에서 놀고 있다.

갖가지 놀이가 등장한다.

아주 오래전 보았던 저 풍경이 왜 이리 정다울까


#3. 학교 : 텃새

십 수년 전,

병아리 두 마리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웠다.

녀석들이 몸집이 커지며 베란다가 지저분해졌고, 수놈은 시도 때도 없이 '꼬끼오'를 외쳤다.

녀석이 외칠 때마다 동네 눈치가 보였다.


난 어린아이들을 겨우 설득해 OO대공원 동물원에 갖다주자고 꼬셨다.

동물원에는 커다란 돔으로 꾸며진 조류 사육장이 있었고, 다양한 조류들이 있었다. 이런 곳이 새와 닭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사육사가 우리 닭들을 조류 돔 안에 넣어 주는데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다른 수많은 조류들이 우리 닭들에게 레이저 눈빛을 쏘고 있었다. 동물들조차도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후련함과 걱정이 교차하며 애물단지 닭들과 이별하고 아이들과 동물원을 나왔다.


일주일 뒤,

아이들과 동물원에 놓아준 우리 닭들을 보러 갔다. 잘 적응하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신났다.

그러나 조류 사육장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 닭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육사에게 이유를 묻자, 사육장 안 텃새들에게 시달려 죽었다고 했다.

가슴이 미어졌고, 후회가 밀려왔다.

말 못 하는 닭들이 느꼈을 고통이 죄책감과 함께 머리통을 후려쳤다.

난 그렇게 아이들을 두 번 울렸다.


텃새는 내 고장을 떠나지 않고 마을을 지키는 새다.

그러나 내 고장을 방문하는 다른 새를 반기지 않으며 내쫓고 어울리지 않는 역할에도 충실한다.

텃새는 긍정이며 부정이다.


텃새는 학교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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