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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페 디엠 리그전

by 뚱딴지

'까르페 디엠'

3학년 모 반에 걸려있는 급훈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키딩 선생님이 준 감동은 전 세계 수많은 교실에 영향을 미쳤다.

미래에 보장되지도 않는 달콤한 마시멜로 때문에 아이들 현재 삶을 억누르는 강요는 안된다는 의견에 난 전적으로 동의한다.


"좋아하는 수업은?"

열에 아홉은 체육활동이다.

아이들은 체육시간을 '자유로운 시간', 혹은 '공부하지 않는 시간'이라고도 말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아이들의 주관적 느낌이 담긴 말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까르페 디엠을 실현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십 수년 전부터 난 점심 먹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스포츠리그전을 시작했다.

리그전 때문에 아이들은 긴장한다.

점심밥을 마셔버리는 남학생, 밥맛을 잃어버린 여학생 등...

이는 까르페디엠의 한 증상이다.


30분 남짓 짧은 시간. 겨우 세 칸짜리 관람석은 미어터진다.

본인들의 경기를 나름 국가대표 대항전쯤으로 여긴다. 따라서 다수 아이들은 심각하다.

경기 종료 호각 소리와 함께

어떤 아이들은 웃고, 어떤 아이들은 울며, 어떤 아이들은 행복해하고, 어떤 아이는 화가 나 있다.

모든 정서 상황은 이 순간 다 폭발한다.

이것 또한 까르페디엠의 한 증상이다.


까르페디엠의 증상은 이것뿐이 아니다.


'경쟁'이 긍정일 때

리그전이 진행되는 동안 수업은 진화한다.

활기차고 학습은 능동적이 된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질문이 잦아졌다. 또한 친구들끼리 서로 가르쳐주는 모습도 출현한다.

'질문할 때 가장 큰 배움이 일어난다'


삶과 학습이 서로 뒤엉킨다.

아이들은 가장 중요한 관계의 학습을 리그전을 통해 배운다.

배운 것이 삶에서 나타나고, 삶 속에서 배움을 얻는다.


리그전에서 아이들은 힘껏 소리 지르고, 슬픔도 화도 표현하며 행복과 기쁨도 나눈다.

경기에 졌을 때 흘렸던 닭 똥 같은 눈물은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상대팀 발에 걸려 넘어진 선수 아이는 감정을 조절하며 친구가 내민 손을 잡을 줄 아는 스포츠맨십을 배운다.


십수 년 동안 리그전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의 까르페 디엠을 느낀다.

다수의 선생님도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이 너무 좋아요",

"점심시간 복도에서 헤매는 아이들이 없어요"

"리그전 동안 학생 사안이 없어요".

어떤 이는 "고맙다"란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그와 같은 이야기를 이번 리그전에서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궁금하다.

여러 날이 지난 후,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오가는 아이들 수다 속에서 그 원인을 파악했다.


"리그전 때문에 학교가 산만하대"

"리그전 때문에 애들이 공부를 안해서.."

"리그전 떄문에 학교가 시끄럽고 들썩들썩 하대"


뭇 선생님들이 한 말이 아이들 수다를 통해 들려왔다.


아이들 까르페디엠이 중요한 척 말하고, 또 교실 급훈에 내걸면서 지금 당장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왜 불편해할까?

아마도... 둘 중 하나?

내가 느끼는 거와 다르거나 아니면 내가 싫거나...


옳은 교사되기보다 좋은 교사되기가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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