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대신 제리에게

음흉한 톰과 영악한 제리

by 즉흥인간

안녕 제리야,


지금쯤 우아하고 행복한 할아버지 생쥐로 살고 있니?

톰이랑 가까이 살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숨 걸고 쫓아오는 멍청한 톰을 여전히 잘 골려 먹으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해.


미안한 말이지만 난 <톰과 제리>를 볼 때마다, 오늘만은 제발 톰이 널 이겼으면 하고 바랐어. 톰이 널 쫓다가 여기저기 맞고, 찧는 건 예사이고, 몸이 썰리고, 잘리고. 그러고는 다음 에피소드에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 다시 너를 쫓고 맞고 썰리고의 반복이었잖아. 어린 내겐 톰이 다치거나 죽는 모습이 충격적이었어. 이런 폭력적인 내용이 당시 애니메이션으로 어린이들에게 쉽게 노출되었다는 점이 신기해. 이런 점만 제외하면 너희 이야기를 재미있게 봤어.


Tom-And-Jerry-PNG-Download-Image.png 그림: 톰과 제리(Tom and Jerry)


나는 이상하게 톰같은 캐릭터에 계속 마음이 갔어. 스머프 마을의 가가멜이라던가 아기공룡 둘리의 길동이 아저씨라던가 말이야. 머리는 없어도 끈기는 있는 그 음흉한 모습에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 그리고 그들 앞에는 귀엽고 깜찍한 데다 영리한 너 같은 캐릭터가 있었어. 너 같은 존재가 나 같은 사람에겐 톰을 보이게 하나 봐.


너희 만화는 무엇을 알리고 싶었을까? 착한 생쥐 혹은 정의는 승리한다? 받은 것은 배로 돌려준다? 나는 볼수록 그냥 톰이 불쌍했어. 알아. 톰이 너 잡아먹으려고 쫓아다니고 귀찮게 한 것. 그리고 톰이 한 번이라도 이기면, 너는 세상과 끝일 수 있으니, 너도 살려고 톰을 그리 험하게 대했겠지.


그런데 넌 톰이 너를 쫓는 순간을 즐기는 것 같더라. 맞니?

그 애 머리 위에서 항상 놀고 있었잖아. 톰이 무슨 행동을 할지 다 알았지.

내가 어이없는 건 톰도 그런 것 같았어. 너와의 시간을 즐긴다는 의미가 너와는 달라 보였지만 말이야.

무슨 소리냐고? 너희, 특히 저 눈빛을 봐봐. 가려지지도 않는 몽둥이를 숨기며 이겼다며 음흉한 눈빛을 보내는 멍충한 톰과 모든 것을 예상하고 폭탄을 준비해 놓곤 여유만만하게 윙크하고 있는 영악한 너! 저 그림이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있다고.


그러다 어느 날 티격태격하던 너희가 공동의 적 앞에서 서로 돕는 모습을 봤을 때, 마음이 이상하게 간질간질했어. 톰과 제리는 톰이랑 제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묘하게 감격스럽기까지 했어. 함께한 세월 동안 쌓아온 나름의 우정이 그제야 보였어. 물론 이후에도 너희 둘은 쫓고 쫓기를 반복하며 매운맛 우정을 즐겼지.


세상에서 제일 영특한 생쥐 제리야,

너희는 이제 physically 죽고 못 사는 사이가 mentally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을 테지? 이제 나이도 있으니까 똑똑한 네가 톰이랑 좀 살살 놀아주라. 아니, 이미 신사같이 티격태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톰에게 내 안부 전해주고. 둘 다 건강히 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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