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Hammering Man!

내 친구 망치인간

by 즉흥인간

안녕 해머링맨,



지난달 영화를 보러 광화문 씨네큐브를 갔다가 널 오랜만에 봤어. 더운 날에도 여전히 자리를 잘 지키며 일하고 있더라. 당연한 건가. 넌 나랑 다르게 성실하니까 말이야. 널 처음 본 후로 훌쩍 20년도 더 지나버렸어. 당시 청춘이었던 난 어느새 중년이 되어 버렸는데 넌 여전히 같은 모습이구나. 겉모습이야 어쨌건 널 비슷한 시기부터 일하기 시작한 동료같이 여기는 날 이해해 주라.


네가 그곳에 자리하고 몇 년 후, 난 첫 직장 생활을 네가 있던 근방에서 시작했어. 유독 네 근처를 지날 일이 많았던 거지 그때는. 그럼에도 우스운 건 어리바리한 난 널 첫눈에 알아채지 못했다는 거야. 어느 날 문득 널 알아차리고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짐작도 못할 거야. 강철로 높이 22m에 무게가 50톤이 나가는 거대한 너를 왜 몰라봤을까. 물론 그땐 네가 지금보다 건물 쪽에 5m 더 붙어있긴 했어. 그리고 너는 덩치는 있어도 똥배도 없이 얇은 편이잖아. 어떤 때는 그냥 빌딩의 거대한 그림자같이 인식되기도 했다니까.


KakaoTalk_20250917_152337309.jpg * 해머링맨(Hammering Man): 광화문 흥국생명 앞에 설치된 Jonathan Borofsky의 작품. 높이 약 22m, 무게 약 50톤. 주재료는 철과 알루미늄


아니 사실은 다 핑계야. 심지어 넌 빠르진 않지만 망치 든 손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냥 난 지금보다 주변에 관심도, 관심 둘 여유도 없었나 봐.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해서 주변 풍경이 눈에 도통 들어오지 않았거든. 그래도 너를 처음 인식한 날 마냥 신기했어. 넌 거대한 데다가 움직이기까지 했으니까. 내가 만난 최초의 로봇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아.


너는 첫째는 아니지만 형제들 중에서 제일 덩치가 크다지?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가 다른 형제들과 가끔 연락하니? 독일, 스위스,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11개 도시에서 다들 잘 있는지. 언젠가 그들 중 하나를 어느 도시에선가 본 거 같기도 해. 근데 멍청하게 난 너와 참 많이 닮았다 여기고 금방 지나쳤어. 너무했다. 그치?


이제 하루 10시간 동안 일한다며? 주말이랑 공휴일, 근로자의 날엔 쉬기도 하고. 처음엔 24시간 내내 일했다던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반면 망치는 35초에 한 번 내리쳐서 형제 중 네 손이 제일 빨리 움직인다더라. 처음엔 망치질을 1분에 1번 했다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땐 나도 네 망치질이 느리다고 생각했어. 미안. 그런데 그런 생각을 나만 한 게 아니라니 새삼 씁쓸하다.


널 만났던 해에 말이야. 어째서 내가 뽑혔는지 모를 자리에서 뭣도 모르면서 고군분투하느라 좀 힘들었어. 그런데 묵묵히 망치를 내리치며 그저 있을 뿐인 너를 보면 왠지 좀 위안이 됐어. 너처럼 그냥 계속하면 될까 싶었지. 그러면서도 매일매일 심장을 새에게 쪼여야만 하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너도 벌을 받아서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지 생각했어. 프로메테우스처럼 우리 인간을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내가 말했던가? 사무실에서 네가 있던 길을 지나 몇 번이나 뛰어야 했던 어느 여름날 오후, 바로 밑에서 까마득한 네 얼굴을 올려다보며 얼핏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 생각했던 그날, 혹시 네 망치가 내 머리 위로 내려쳐질까 무섬증이 들기도 했어. 일하느라 바쁘고 눈도 없는 네게 무수한 까만 점 중 하나일 내가 과연 보였을까.


나는 여전히 신문로 근처며 정동길이며를 좋아해. 상처받지 않고 그곳을 떠난 게 아니라곤 할 순 없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좋았던 기억만 남았더라. 당시의 시절인연들도. 잘 있겠지?

너에게 참 고마워. 천천히 망치를 휘두르던, 그냥 있던, 계속 있어줬으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너는 그곳에 있어줬으면 해. 한 가지 더 바란다면, 나를 살짝 힘들게 하는 지금의 일도 시간이 또 훌쩍 지나면, 너와 신문로와 정동처럼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다.


그럼 다시 보는 날까지 적게 일하고 건강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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