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안에서, 여름으로 - 여름에게

다시 만나요

by 즉흥인간

정말 이별인가요?

더 이상 만날 수 없군요.

올해도 함께해 줘서 고마웠어요.


다른 사람들은 뭐래도 난 항상 당신이 좋았어요.

내 한 해는 당신이라는 계절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에요.

당신의 반짝임에 이끌려 나 아닌 듯 기운 내어 살다가 다가오는 다른 계절에는 움츠려 들곤 하네요.

그래서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 초조해져요.

지금은 서늘하고 문득 나는 쓸쓸해지고요.

그래도 그저 시간을 가만 보내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언제나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여름님, 나는 왜 당신이 좋을까요.

내게 흑백사진 같던 세상이 서서히 빛으로 물들어가다 당신을 만나 폭발하듯 선명해지는 느낌 때문일까요.


칙칙한 무채색의 두껍고 긴 대신 다양한 색상의 얇고 짧은 옷차림의 물결,

하루를 길게 비추는 태양빛,

생기롭고 밝아진 사람들의 표정.

간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쌀맛 젤라토,

우유에 얼음을 잔뜩 넣은 미숫가루,

서걱거리는 다디단 수박과 씁쓸한 맛이 매력인 자몽,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는 좋아하는 일,

동네 거리 가득한 여름꽃들과 풀들의 향기로운 냄새,

가끔 하늘과의 경계가 뭉특히 지워져 버린 바다,

유독 진하고 길어 보이는 살아있는 혹은 가만있는 모두의 그림자,

조잘거리며 뛰어노는 아이들, 특히 그들의 웃음소리,

바다이든 산이든 도시이든 함께이든 홀로이든 좋았던 여름날의 여행,

여름 해질 무렵의 명랑한 고요함 등

살아있다는 감각이 유독 생생해지는 순간들의 중첩이 내겐 여름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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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좋아하듯이, 할 수만 있다면 내 인생의 오랜 시간을 여름으로 살고 싶어요.

여름 안에서, 여름으로.

지금 내 인생에서 나는 여름일까요 다른 계절일까요.

인생이 끝난 후에야 알 수 있을까요.


다시 시작하는 날에는 움트일 것들을 준비하고

성실하게 당신을 살아내

살뜰히 그것들을 추수하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또 다른 움트일 것들을 준비하고

다시 당신을 만나면 더 좋겠죠.


인생에서 몇 번이고 다른 계절을 맞습니다.

인생에서 몇 번이나 계절이 바뀌어 갑니다.

매년 멈추지 않고 순서대로 와주는 계절들이 사실 고마워요.

덕분에 매년 다시 아이부터 끝까지 살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올 것을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내년에 또 만나요.

벌써 몇 번째의 여름이라도 "다시 만나 반가워요" 인사할게요.



2025년 10월

즉흥인간 올림


사진: UnsplashKumiko SHIMI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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