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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15. 2024

순댓국을 좋아하는 남자

같이 먹자


지난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쌀국수가 먹고 싶다고 해서 쌀국수 집으로 향하던 길에 일요일 휴무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다면 평소 잘 가던 분식집에 가서 우동을 먹자! 하고는 아이를 살살 달래 분식집 앞으로 갔는데 왜인지 임시 휴업이란다. 이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순 없기에(밥 하기 싫어!!!) 집 주변 음식점이 무엇이 있었는지 머리를 굴리다 보니 순댓국집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순대 먹으러 가자고 또 살살 달래서 순댓국집으로 갔다. 다행히 연중무휴였다! 야호!

순댓국이라는 말에 남편의 눈이 반짝한다. 남편은 순댓국을 참 좋아했다. 데이트할 때 순댓국 먹을래?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나에게 순대는 떡볶이랑 같이 먹는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순댓국이란 물에 빠진 고기를 안 먹는 남자(=아버지)와 평생 살며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친구들과 처음 먹어봤다. 물에 빠진 고기를 안 먹는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던 엄마의 손을 잡고 동네 순댓국집에 가봤다. 엄마도 몇십 년 만에 먹어봤다고 했다. 이렇게 그를 만나기 전까지 순댓국은 아주 가끔씩, 못 먹지는 않지만 굳이 찾지 않는 딱 그 정도의 음식이었다. 그와 연애하는 2년 동안 평생 먹을 순댓국을 다 먹은 것 같다. 우리는 데이트를 할 때 순댓국을 자주 먹었다. 참 많이도 먹었다. 파스타 피자 스테이크 이런 음식보다 순댓국을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뷰가 좋은 카페에 브런치 먹으러 가본 적은 없었지만 해장하러 온 아저씨로 가득한 오전 시간의 허름한 순댓국집에는 자주 드나들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연애를 시작했던 그의 친구가 만나서 한다는 말이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주로 파스타를 먹어서 속이 느끼해서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는 어떻냐고 묻길래 생각해 보니 우린 주로 순댓국을 먹은 기억만 있었다는 것. ㅋㅋㅋㅋ

브런치는 한 번도 못 먹어보고 순댓국만 먹었다며 볼멘소리를 했더니 언젠가부터 순댓국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안 했다. 그렇게 언젠가부터 순댓국을 안 먹다가 오랜만에 뚝배기 그릇을 받아 든 것이다.






아이들은 찰순대 한 접시와 공깃밥을, 우리는 순댓국 하나씩을 먹었다. 아빠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아들은 "아빠 그게 그렇게 맛있어?"라고 말한다.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네가 순대 먹고 싶다고 매번 데이트할 때 순대만 먹으러 가면 안 돼. 여자친구한테 꼭 물어봐, 알았지?"

뜬금없는 말에 아이가 갸우뚱한다.
"근데 그게 무슨 말이야?

코 박고 순댓국을 먹던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말했다.
"근데 00아, 여자친구는 널 참 좋아할 테니까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어줄 거야~"


비가 온다.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순댓국을 먹으러 왔다. 한 때 지겹도록 먹었지만 또 먹고 또 먹은 건 맞은편에서 코 박고 먹고 있는 당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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