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장애인 연애', '장애인 결혼'과 같은 키워드로 사람들이 내 글을 찾는다. 내 글을 검색한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분명 장애인 당사자이던가, 장애인과의 만남을 고민했던 사람이었을 텐데. 만남을 시작했을까? 아니면 돌아섰을까.
무엇이든 정답은 없다만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장애 때문에 고민하다 헤어졌다면, 그러길 잘했다 싶었을 것이다. 매 순간 그것 때문에 힘들진 않지만, 그것 때문에 힘든 순간은 어떤 장면에서든 생긴다. 지금의 나도 분명 그것을 고민하고 다른 이의 기록을 찾고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나 이 사람을 만나도 될까?' 하고 주변의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환영과 축복보다는 우려와 걱정이 앞섰던 만남. 그때는 어려서 잘 몰라서, 괜찮다 생각해서, 별문제 없다 생각하니, 남들이 말하는 그런 우려와 걱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남 일 같아서 그래서 나는 나대로의 결정을 내렸다. 그때 나의 결정을 후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2017년 10월이라 하면, 첫째 임신 직전이다. 사랑이 아주 충만했던 신혼 때. 둘만 있을 땐 어려운 점이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없이 둘만 살았다면 난 계속 심청이처럼 남편과 함께 했을까? 아이를 낳고 나니 예전처럼 남편만을 바라보며 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남편을 논외로 둘 수도 없다.
과연, 뺑덕이 된 지금도 저런 결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분명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a.k.a. 뺑덕)는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 글을 읽으면서 같은 주제로 다시 글을 써보고 싶었다. 어느 순간 내가 남편에 대해 쓰는 글의 결이 변해갔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뺑덕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조금 늦게 깨달았을 뿐. 머리가 꽃밭이었던 어떤 날을 지나 가시밭길, 진흙탕길, 날파리가 많은 길을 지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함께 가고 있다. 다시 함께 꽃길을 걸을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함께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