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2016년 초만 해도 한국과 중국 사이에 흐르던 공기는 뜨거웠다. 중국 OTT 상위권을 장식한 K-드라마, 중국 팬덤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휩쓸던 K-POP, 중국 관광객(유커)로 붐비던 명동·제주도까지. 그야말로 “한류 전성기”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공기가 식기 시작합니다. 드라마 편성이 슬그머니 빠지고, 한류 스타 광고가 조용히 내려가고, 중국에서 이미 제작하던 리메이크 드라마의 한국 배우가 교체되었다. 사라지라는 공식 문서도, 금지라는 발표도 없었다. 그런데 시장은 먼저 알아챘다.
“한국은 막혔다.”
이 보이지 않는 벽의 이름이 바로 한한령(限韓令, Korean Ban)이다.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공식 표어 없이 실행한 비공식·전방위 경제·문화 보복이었다.
그리고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이 한한령은 한중 관계의 냉·온 전환점이자, 한국 기업에게는 ‘중국 리스크 교과서’가 되었다.
2016년 1월,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 논의하면서 중국의 분위기가 급변하였다. 7월 사드 배치 결정이 내려지자, 중국은 “한한령”이라는 이름 없는 제재를 단계적으로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타깃은 세 가지였습니다.
유통·대형기업: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는 세무·소방·위생·안전 점검이 동시에 쏟아지는 전방위 압박을 받았고, 다수 롯데마트 점포가 영업정지에 들어갔다.
관광·서비스: 중국 단체관광(유커) 송출이 사실상 중단되며 방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90% 가까이 급감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명동·제주 면세점, 항공·면세·화장품 업계 실적이 동시에 흔들렸다.
문화·게임·광고: 한국 드라마·예능 방영이 멈추고, 이미 찍어둔 광고가 모자이크 처리되는 사례까지 등장하였다. 게임 판호(중국 내 서비스 허가) 발급이 2017년 3월 이후 사실상 중단되며, 2014 ~ 2016년 3년간 48개 한국 게임이 수출되던 시장이 ‘제로’에 가까운 상태로 떨어졌다.
한국개발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는 2017년 한 해 한한령으로 인한 국내 관련 산업 피해를 연간 최대 22조 원으로 추산하였다. 관광·유통·콘텐츠·화장품이 동시에 타격을 입은 결과였다. 이 시기 한한령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지정학적 선택은, 곧 시장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이 가장 큰 고객이자, 가장 큰 리스크라는 사실을 통계와 손익계산서로 깨닫게 된 시기였다.
2017년 말, 양국은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의미는 ‘전면 해제’가 아닌 ‘부분 완화’에 가까웠다. 롯데는 일부 사업을 정리하면서도 2019년 이후 점진적으로 영업을 재개했지만, 한국 드라마와 예능은 여전히 주요 방송·OTT에서 보기 어려웠다. 게임 판호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열렸다.
그러나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싼커(散客, 개별 관광객)는 패키지 규제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늘어났고, 해외 역직구를 통하여 K-뷰티 제품이 중국 소비자에게 우회적으로 판매되었다. 즉, 정책은 막았지만, 소비자는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그 사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한중 간 물리적 교류는 사실상 ‘정지’ 상태로 들어간다. 이 기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양국 모두에게 “관계를 한 번 리셋하고 다시 짤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2021년 11월, 한국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양제츠 정치국 위원이 회담에서 한한령 완화를 공식 의제로 올리며 “관계 복원”을 예고하였다. 외교·안보 의제가 다시 테이블에 올라오면서, 문화·경제 협력의 재가동 준비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2022년은 상징적인 해였다. 한중 수교 30주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그리고 “문화교류의 해”라는 타이틀까지 겹쳤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중국 OTT에서 K-드라마 방영이 재개됐다는 점이다.
중국판 유튜브로 불리는 비리비리(Bilibili)에서 〈인현왕후의 남자〉, 〈또 오해영〉, 〈슬기로운 감빵생활〉 세 편의 한국 드라마가 3월 초 잇달아 공개되며, 한한령 이후 첫 ‘정식 방영’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공개 직후 비리비리 드라마 인기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수요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보여주었다. 한한령의 벽은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았지만, 콘텐츠부터 서서히 균열이 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관광·인적교류 측면에서도 변화는 분명하였다. 2024년 11월, 중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9개국 국민에 대해 한시적 비자 면제(30일 체류) 조치를 발표하였고, 2025년에는 한국 정부가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한 한시적 무사증(무비자) 입국 제도를 시행하였다. 즉, 양국 간 관광·소비 회복을 위한 정책적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외교 무대에서도 시그널은 분명하다. 2025년 10 ~ 11월, 한국에서 열린 APEC 2025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국빈 방문하고, 이재명 대통령과 첫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는 공급망·안보 이슈와 함께 문화·관광·인적교류 확대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고, 중국 내에서도 “사실상 한한령 해제” 기대를 다룬 보도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현재(2025년 11월) 기준으로 보면, K-드라마와 예능은 일부 OTT·채널을 통해 다시 보급되고, 중국인 방한 관광은 단체 무비자 제도 등을 통해 팬데믹 이전 수준을 향해 복귀 중이다. 그리고 K-뷰티와 소비재 수출도 완만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게임 판호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규제가 언제든 다시 조일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공존한다. 즉, 제도상 ‘완전한 해제’가 아니라, 정치 상황에 따라 온도가 달라지는 ‘관리된 해빙’ 단계라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한류와 한국 기업이 배운 것: ‘중국 의존’에서 ‘글로벌 분산’으로
이 10년의 중요한 포인트는, 단지 한한령이 발동 → 완화 → 해제 직전으로 흘렀다는 타임라인이 아니다. 그 사이 한국의 비즈니스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류의 시장 구조 변화
과거: “중국에서 뜨고, 나머지 지역으로 확산”되는 구조
현재: 미국·유럽·동남아·중동 플랫폼이 동시에 중요해진 멀티 허브 구조
리스크 관리의 관점 전환
매출의 절대 규모보다 “한 국가 의존도”, “정책 리스크”를 더 민감하게 관리하는 문화 확산
엔터·게임뿐 아니라, 화장품·패션·관광·교육 서비스 기업들도 시장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
콘텐츠 수익 모델의 다변화
중국 판권 비중이 줄어들면서, 글로벌 OTT 동시 방영, 팬덤 기반 MD·굿즈·투어·콘서트, IP 확장(리메이크·게임·웹툰·소설) 등 여러 수익 파이프라인을 깔아야만 살아남는 구조로 변화
결국 한한령은 한국 기업들에게 이렇게 말한 셈이다. “지정학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의 변수다.”
그렇다면, 한한령은 끝났을까? 중국 정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한령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공식 폐지 선언도 없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2016 ~ 2017년, 사드 갈등과 전면 봉쇄
2018 ~ 2021년, 부분 완화와 팬데믹의 정체기
2022년 이후, OTT·관광·정상외교를 통한 단계적 해빙
2024 ~ 2025년, 무비자·단체관광·APEC 정상회담을 통한 사실상 해제 국면
10년을 길게 보면, 한한령은 “보복의 이름”에서 “자립의 계기”로 의미가 변하고 있다. 한국은 이 과정을 거치며 “중국에 치우친 한류”에서 “글로벌로 분산된 한류”로 체질을 바꾸었고, 기업들은 시장 다변화·정책 리스크 관리·공급망 분산이라는 키워드를 실제 전략에 반영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한한령은 한국 경제와 K-콘텐츠에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한령은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중국 의존에서 글로벌 분산으로 넘어간 전환점의 이름”이다.
APEC 2025 이후, 한중 관계는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질문은 “한한령이 다시 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또 다른 한한령이 와도 버틸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구조를 바꿨는가?”라는 쪽에 더 가깝다.
이 질문에 얼마나 진지하게 답하느냐가, 다음 10년 한국 기업과 한류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다.
※ 이설아빠의 글로벌 비즈니스 스토리 블로그에 방문하시면 더 유익한 정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