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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피알, 화장품을 넘어 ‘노화 극복 솔루션’으로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5,000만 원에서 시가총액 10조 원까지


2025년 11월, 한국 증시에 작은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화장품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에이피알(APR)의 시가총액이 10조 원을 넘어서며,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을 제치고 K-뷰티 대장주 자리에 오른 것이다. 전일 종가 기준 약 10.2조 원, 주가 27만 원대라는 숫자는 더 이상 이 회사를 “잘 나가는 인디 뷰티 브랜드” 정도로 볼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더 흥미로운 건 상장 속도다. 2014년, 20대 창업자가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세운 화장품 회사가 10여 년 만에 매출 7,000억 원대, 영업이익 1,200억 원대, 시가총액 10조 원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또 하나 잘 나가는 화장품 회사가 나왔다”가 아니다. D2C(Direct to Consumer), 더마 코스메틱, 홈뷰티 디바이스, 그리고 바이오·의료기기로 이어지는 ‘뷰티테크 풀스택’ 전략이 하나의 서사로 엮인 결과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에이피알이 어떤 회사인지, 숫자로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그리고 어떤 5단계 성장 스토리를 밟아 지금 자리에 왔는지 압축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에이피알(APR)은 어떤 회사인가?


에이피알의 출발점은 매우 단순했다. 2014년, 20대 창업자가 온라인에서 통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보겠다며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 첫 브랜드는 색조·베이스 위주의 에이프릴스킨(Aprilskin), 그다음이 피부 고민 해결형 더마 코스메틱 메디큐브(Medicube), 이후 집에서 사용하는 홈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메디큐브 AGE-R(에이지알)이 뒤를 이었다. 지금의 에이피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화장품 + 디바이스 + D2C 커머스가 결합된 뷰티테크 그룹”


에이프릴스킨·메디큐브 같은 기능성·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AGE-R의 더마 EMS 샷·부스터 프로·ATS 에어샷 같은 디바이스, 그리고 자사몰·SNS를 기반으로 한 D2C와 아마존·글로벌 이커머스, 팝업스토어·오프라인 유통까지. 제품(화장품·디바이스)과 채널(D2C·글로벌 이커머스)을 동시에 쥔, “뷰티 + 테크 + 커머스”를 함께 하는 회사라는 점이 전통적인 K-뷰티 기업과의 결정적 차이인 것이다.


숫자로 보는 성장: ‘국내 기업이지만 해외 중심’


에이피알의 성장 속도는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해진다.

11년 연속 매출 성장

2024년 매출 7,228억 원, 영업이익 1,227억 원

2025년 상반기 매출 5,938억 원, 영업이익 1,391억 원으로 이미 전년 연간 영업이익을 돌파


분기 기준으로 보면 2025년 1분기와 2분기, 그리고 3분기 잠정 실적까지 매출·이익이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성장 곡선이 더 가팔라지는 구간에 들어가 있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해외 중심 구조”라는 것이다. 2024년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은 약 55%, 2025년에는 분기별로 70% 안팎까지 올라가며 사실상 “국내에서 시작했지만 해외에서 돈을 버는 회사”에 가까운 구조가 되었다.


지역별로 보면, 미국에서는 홈뷰티 디바이스와 더마 코스메틱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고, 일본·홍콩에서는 팝업스토어와 오프라인 매장 입점이 브랜드 체험을 뒷받침한다. 유럽·동유럽·중동에서는 현지 유통사·총판과 함께 “화장품 + 디바이스” 패키지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숫자와 매출 구조만 놓고 보면, 에이피알은 이미 “국내에서 태어난 글로벌 뷰티테크 회사”에 가깝다.


5단계 성장 스토리로 본 에이피알


1. D2C 기반 에이프릴스킨: 유통을 거꾸로 탄 선택

창업자는 백화점·H&B 스토어가 아니라 자사몰과 SNS를 중심으로 한 D2C 모델을 선택하였다. ‘매직 스노우 쿠션’ 같은 히트 제품을 온라인에서 먼저 터뜨리고, 그 성과를 오프라인과 후속 브랜드로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이때 쌓인 자본과 데이터, 고객 풀이 이후 확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2. 더마 코스메틱 메디큐브: 문제 해결형 브랜드로의 전환

2016년 이후 회사의 무게중심은 “예쁜 화장품”에서 “피부 고민 해결형 더마 코스메틱”으로 옮겨갔다. 여드름·모공·탄력·기미 같은 구체적인 피부 고민별 라인업, ‘제로 모공 패드’ 같은 기능성 제품, 임상·성분·효과 데이터를 강조한 마케팅을 통해 에이피알은 “패키지 예쁜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문제 해결형 더마 브랜드”로 포지셔닝을 재정의하였다.


3. AGE-R: 홈뷰티 디바이스로 뷰티테크 진입

2021년, 메디큐브 산하 디바이스 브랜드 AGE-R가 출범하면서 집에서 사용하는 고주파·EMS·LED 기기가 본격적으로 라인업에 들어온다. 메디큐브 화장품 위에 디바이스를 얹어, 고객이 토너 패드·앰플을 사는 수준이 아니라 “집에서 하는 작은 시술 세트”를 구매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단계에서 객단가와 재구매, 충성도가 동시에 폭발하였다. 디바이스 누적 판매량이 수백만 대를 넘어서면서, 이 사업이 에이피알의 수익성과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는 레버리지 역할을 하게 된다.


4. 2024년 코스피 상장: 성장 자본 확보

설립 10년이 채 되지 않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에이피알은, 확보한 자본을 평택 ‘에이피알 팩토리’, 디바이스 R&D 센터, 미국·유럽 법인과 글로벌 마케팅에 투입하였다. 매출은 커지면서도 매출 대비 마케팅비 비중은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구간에 진입한 시점이 바로 이때이다.


5. 바이오·의료기기: “인류 노화 극복”이라는 비전 선언

2025년, 김병훈 대표는 “메디큐브의 최종 목표는 인류의 노화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현재 평택 제3캠퍼스를 중심으로 조직재생 물질(PDRN·PN 등) 원료 생산, 관련 의료기기 인허가, 전문가용 의료기기 개발을 준비 중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회사가 스스로를 “뷰티테크 기업”에서 한 단계 올려 “안티에이징 솔루션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글로벌에서 통하는 설계와 인사이트


에이피알이 해외에서 통하는 이유는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임상·인증·데이터 중심의 신뢰 설계다. 제품 효과를 수치로 보여주고, 각국 인증과 규제를 선제적으로 맞추면서 “감성”이 아니라 “근거와 안전성”을 중시하는 미국·유럽 소비자에게 설득력을 확보하였다.


둘째, 화장품 + 디바이스 콤보 구조이다. 기능성 화장품 위에 디바이스를 얹어 고객에게 “제품 몇 개”가 아니라 “집에서 쓰는 작은 시술 세트”를 판매하는 구조를 만든 덕분에 객단가와 재구매율, 그리고 충성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셋째, 프리미엄이지만 도달 가능한 가격대를 형성하였다. 병원·전문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의 디바이스를 제시하면서, “비싸지만 손이 닿는 프리미엄”이라는 포지셔닝을 확보하였다.


넷째, 에이피알은 처음부터 D2C·글로벌 이커머스 DNA를 장착하였다. 국내에서 자사몰·SNS를 파고든 경험이 아마존·현지 이커머스·인플루언서 마케팅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었고, 단순 수출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으로 국가별 광고·콘텐츠·상품 구성을 최적화하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뷰티 회사”에서 “노화 극복 솔루션 회사”로


지금 에이피알의 숫자는 화려하다. 2024년 매출 7,228억 원, 영업이익 1,227억 원, 2025년 상반기 이미 전년 영업이익을 넘어선 실적, 시가총액 10조 원 돌파와 K-뷰티 대장주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이 회사를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숫자 그 자체보다 “자기 정의를 바꾸는 과정”에 있다. 5,000만 원짜리 화장품 스타트업에서 D2C 기반 온라인 브랜드, 더마 코스메틱 전문 브랜드, 홈뷰티 디바이스 중심 뷰티테크 기업을 거쳐, 지금은 바이오·의료기기를 향한 “노화 극복 솔루션 플랫폼”을 이야기하는 회사가 된 것이다.


이 흐름은 곧, K-뷰티가 K-헬스·K-바이오로 확장 가능한지 시험할 수 있는 하나의 무대이기도 하다. 미국 오프라인과 유럽 시장에서 얼마나 견고한 브랜드로 자리 잡을지, 디바이스 편중 구조를 바이오·헬스케어가 실제로 보완할 수 있을지, 규제와 경쟁이 심해지는 환경에서 지금의 성장성이 얼마나 지속될지 등 풀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이미 확인되었다. 에이피알은 스스로를 “화장품 회사”가 아니라 “인류 노화 극복을 목표로 하는 안티에이징 솔루션 회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시장은 그 스토리에 10조 원이라는 가격표로 응답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 실험이 K-뷰티를 넘어 K-헬스, K-바이오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세 번째 성장 곡선으로 완성될지 지켜보는 과정이 될 것이다. 결과와 별개로, 에이피알은 이미 한국 스타트업·소비재·테크 기업 모두에게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 스터디를 제공하는 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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