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처음 베트남 호치민 도심에 섰을 때, 한동안 횡단보도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다섯 줄, 여섯 줄로 몰려나오는 오토바이 물결 때문이었다.
헬멧을 쓴 직장인, 아이를 뒤에 태운 부모, 장바구니를 가득 싣고 나온 상인까지, 한 번에 보면 혼돈 그 자체인데, 이상하게도 충돌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비슷한 장면은 태국 방콕의 골목,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대로에서도 반복된다. 잠깐 넋을 놓고 바라보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까지 많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답은 훨씬 복잡해진다. 임금 수준, 자동차 가격, 도로 구조, 기후, 정부 정책, 디지털 플랫폼, 금융까지 수많은 요소가 얽히면서 하나의 거대한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이 구조를 '오토바이 경제'라고 부르면서, 3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동남아에는 왜 오토바이가 많을까?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이 어떻게 서로 다른 “오토바이 경제”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이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은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바로 돈, 즉 소득과 가격의 문제이다.
베트남의 평균 월급은 대략 400~500달러 수준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관세·세금·등록비까지 합치면 한국보다 오히려 비싼 경우도 적지 않다. 평균 임금을 생각하면, 자동차는 여전히 ‘특별한 사람들의 물건’에 가깝다.
반면 오토바이는 1,000~2,000달러 선이면 구매할 수 있다. 청년, 신혼부부, 자영업자도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는” 가격대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식이 갈린다.
자동차: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사는, 약간은 사치품
오토바이: 출근하고, 장보고, 아이 데려다주고, 장사하러 나가는 생활필수품
여기에 도로 구조가 더해진다. 동남아 도시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좁은 골목, 작은 시장, 저층 건물로 얽혀 있다. 지하철은 일부 대도시에만 있고, 버스만으로는 일상 이동을 다 감당하기 어렵다.
이런 도시에서 자동차는 금방 막힌다. 사소한 접촉사고 하나만 나도 도로 전체가 멈춰버린다. 반대로 오토바이는 골목과 골목을 잇는 ‘틈새 도로’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겨울이 없는 기후”가 결정타를 날린다. 눈이 쌓이는 계절도,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없다. 비가 와도 우비 하나면 끝이다. 난방·눈길·도로결빙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오토바이는 365일 운행 가능한 발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인프라다. 이미 도시가 빽빽하게 지어진 뒤 경제가 성장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이제 와서 도로를 넓히고 주차장을 대규모로 확보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책도 “자동차를 무제한 늘리겠다”보다는 “현실적으로 오토바이 중심 교통체계를 관리하겠다” 쪽으로 흘러간 것이다.
가끔은 대기오염과 교통체증 때문에 오토바이 규제 이야기가 나오지만, 실제로 강하게 제한하려 들면 시민 반발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오토바이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일, 공부, 장사, 돌봄 전체를 움직이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제·인프라·기후·정책이 한 덩어리로 엮이면서 동남아 도시는 “자동차가 기본값”이 아닌, “오토바이가 기본값인 사회”로 굳어지게 되었다.
“동남아=오토바이 많은 지역”이라고 묶어 부르기 쉽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구조는 나라별로 큰 차이가 난다.
베트남 등록 오토바이는 약 7,000만 대 수준으로, 인구 1억 명 나라에서 사실상 ‘1인 1오토바이’에 가까운 숫자다. 출퇴근 시간 하노이·호치민 도심에 서 있으면, 도로 전체가 오토바이 파도처럼 움직이는 장관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오토바이는 이동수단을 넘어 “생계 수단”이다. 노점상과 자영업자는 오토바이를 이동식 가게로 쓰고, 커피, 샌드위치, 국수, 과일까지 뒤에 싣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판매한다.
골목 구조, 상점 배치, 생활 패턴이 모두 오토바이에 맞춰져 있다 보니 “오토바이 없이는 생활이 안 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즉, 베트남의 오토바이는 '이동 + 장사 + 물류 +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플랫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약 2.8억 명, 오토바이 1억 대가 넘는 거대한 시장이다. 여기서 베트남과 차이를 만드는 건 디지털 플랫폼이다. 고젝(Gojek), 그랩(Grab) 같은 슈퍼앱이 오토바이를 배달, 택시, 장보기, 택배, 심부름, 디지털 결제까지 연결해 준다.
이때 오토바이는 더 이상 “개인이 가진 이동수단”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묶는 “서비스 인프라”로 바뀐다. 앱 화면에서 호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어딘가의 라이더가 오토바이 키를 돌리고 출발하는 구조, 여기서 생성되는 것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데이터다.
누가 얼마나 일하는지
어느 시간대에 어떤 지역이 가장 붐비는지
라이더의 수입 패턴이 어떤지
이 모든 정보가 플랫폼에 쌓인다. 그리고 오토바이는 데이터·결제·금융·광고가 엮인 디지털 경제의 말단 노드가 되는 것이다.
베트남이 ‘생활형 오토바이 왕국’이라면, 인도네시아는 ‘플랫폼형 오토바이 경제’에 가깝다.
태국은 자동차 보급도 상당히 높은 나라다. 방콕의 고속도로, 대형 쇼핑몰 주변, 외곽 도로를 보면 자동차가 도로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골목 안으로 한 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시장, 주거지역, 관광지 주변에는 여전히 오토바이가 빼곡하다.
태국에서 오토바이는 4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관광객의 짧은 이동 수단
교통체증을 뚫고 가는 출퇴근·택시 수단
지방 도시와 농촌의 가정용 필수 발
음식 배달·퀵서비스의 주력 장비
따라서 태국은 “차와 오토바이가 경쟁하는 시장”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공간과 기능을 맡아 공존하는 시장”에 가깝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자.
“그렇다면 이 도로 위 풍경 속에서, 실제 돈은 벌리는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돈은 ‘처음 한 대를 파는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반복되는 유지·관리·금융에서 더 많이 생긴다.
동남아 주요 5개국(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의 인구는 약 6억 명이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오토바이를 주요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다.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2륜차 생활권 중 하나다.
여기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시장은 완성차 판매가 아니라 그 뒤에 따라붙는 영역이다.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체인, 스프로킷
엔진오일, 배터리, 각종 전장 부품
헬멧, 보험, 간단한 금융상품
이 모든 것은 주기적으로, 반복적으로 수요가 발생한다.
그래서 동남아의 오토바이 경제는 본질적으로 ‘애프터마켓(after-market)’ 게임에 가깝다. 처음 한 대를 팔아도, 이후 5년, 10년 동안 교체·정비·보험에서 계속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화는 전기 오토바이다. 동남아에서 전기차(EV)보다 먼저 성장할 시장은 전기 스쿠터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동 거리가 짧고, 도시·근교 위주
배터리가 작아 충전·교체가 빠름
내연기관 대비 연료비 절감 효과가 바로 체감됨
배달 라이더 입장에서 기름값은 곧 “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비용”이기 때문에 전기 오토바이로 바꾸면 연료비를 줄일 수 있다. 따라서 플랫폼·정부·라이더 모두 전환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배터리 스왑 스테이션, 전기 오토바이 리스·구독 모델, 라이더 데이터 기반 모빌리티 금융·보험 상품이 결합하면서 오토바이는 이동수단을 넘어 금융상품으로 변신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내연기관 오토바이 1라운드는 이미 끝난 게임이다.
일본: “고장 잘 안 나는 오토바이”라는 브랜드 신뢰
중국: 저가 공세 + 전기 오토바이·배터리 물량
이 판에서 완성차로 정면 승부를 보는 건 한국 입장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맞춤형 전략은 무엇일까?
제품 포지션: “중저가 + 신뢰성” → 중국보다는 비싸도, 일본보다는 부담 없는 가격. 그러면서도 안전·내구성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부품·전장·배터리·BMS 영역이 현실적인 승부처
비즈니스 모델: 조용하지만 오래가는 B2B → 현지 정비 체인, 부품 유통상, 플랫폼과의 파트너십을 통하여 “꾸준히 납품하는 조용한 강자”가 되는 전략
전기·플랫폼·금융이 만나는 ‘새로운 전쟁터’에 집중 → 이미 판이 끝난 내연기관 완성차 시장이 아니라, 전기 오토바이, 배터리 팩·스왑 인프라, 그리고 모빌리티 금융·데이터 서비스 같은 막 열리는 시장에 집중
요약하면, 한국의 위치는 “중국보다 신뢰성 높고, 일본보다 접근성 좋은 제3의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 배터리·전장·소프트웨어·데이터를 묶어 오토바이 경제를 굴리는 ‘운영 시스템’을 제공하는 플레이어가 된다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충분히 존재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보통 미래 모빌리티를 이야기할 때 자율주행 자동차, 전기차, 로봇택시를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바뀌는 시장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동남아의 오토바이 시장이 딱 그렇다. 자동차보다 훨씬 싸고, 도시 구조·기후·정책과 강하게 맞물려 있고, 이미 생활과 생계의 기본값이 되어 있으며, 전기화·디지털화·금융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중이다.
그래서 저는 동남아의 오토바이 시장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자동차보다 먼저 바뀌는 모빌리티 시장이자, 제조·플랫폼·금융이 한 번에 만나는 실험장”
한국 기업에게 이 시장은 2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완성차만 보지 말고 시스템을 봐야 한다. 부품·배터리·스왑 인프라·플랫폼·보험·핀테크까지, 오토바이 한 대가 움직일 때 돈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통째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둘째, ‘이미 끝난 전쟁’이 아니라, ‘막 시작된 전쟁터’를 찾아야 한다. 내연기관 시장의 점유율 싸움이 아니라, 전기 오토바이와 모빌리티 금융이라는 새로운 파도 위에서 표준과 신뢰를 만들어가는 쪽에 기회가 있다.
다음에 동남아 여행을 가실 일이 있다면 한 번쯤 도로 위 오토바이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셔도 좋을 것 같다.
그냥 위험해 보이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수억 명의 삶과 일,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비즈니스 지형이 그 위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더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