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최근 일본의 엥겔지수(엥겔계수)가 4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일본 총무성의 가계조사(2인 이상 가구) 기준, 2025년 엥겔지수는 28.6%로 집계됐고, 교도통신이 이를 “1981년 이후 최고”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 음식을 더 많이 먹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엥겔지수는 ‘먹는 양’이 아니라 살림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선택적으로 늘린 소비가 아니라, 줄이기 어려운 지출이 전체를 밀어 올릴 때 이 숫자가 올라갑니다. 즉, 엥겔지수 상승은 ‘풍요’보다 ‘압박’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신호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물가·저성장 국면에서 가계가 어떤 방식으로 눌리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지표이기 때문에, 한국도 같은 렌즈로 읽어야 합니다.
엥겔지수(Engel’s Coefficient)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계산식은 단순합니다.
엥겔지수 = (식비 ÷ 전체 소비지출) × 100
이 지표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식비는 생존과 직결된 필수 지출이라 경기·심리 변화가 와도 마음처럼 줄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엥겔지수는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가계가 선택소비를 할 여지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엥겔지수가 오르면, 통계상 소비가 유지돼도 체감 경기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지출 증가라도, 증가분이 여행·문화·교육 같은 선택 소비가 아니라 식비·주거비 같은 필수재에 몰릴 때 삶의 여유는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28.6%는 “일본이 갑자기 가난해졌다”의 선언이 아닙니다. 더 정확한 해석은 소비가 ‘선택’에서 ‘필수’로 더 강하게 밀려났다는 것이죠.
보도에 따르면 2025년 엥겔지수 상승의 직접 배경으로 쌀값 등 식품 가격 상승이 언급됩니다. 즉, 일본 가계는 “더 좋은 것을 먹어서”가 아니라 “같은 생활을 유지하려고” 지출 구조가 바뀐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물가의 성격입니다. 식료품 물가는 체감이 빠르고 대체가 어렵습니다. 매일 사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실질소득(실질임금)이 물가를 못 따라가면, ‘지출 증가’가 ‘삶의 개선’이 아니라 ‘유지 비용 증가’가 됩니다. 결과적으로 선택 소비가 줄고, 필수 소비 비중이 남아 엥겔지수가 위로 눌어붙습니다.
한 마디로, 일본 엥겔지수는 “소비가 살아났다”가 아니라 ‘살림이 경직됐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한국도 엥겔지수 흐름에서 일본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국면에서 엥겔지수(혹은 식비 비중)가 높은 레벨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한국의 경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기반 보도에서 2024년 가구당 월평균 식품 소비지출이 85만 9,181원으로 전년 대비 4.4% 늘었고, 엥겔지수도 30%에 근접한 수준(기사 기준 29%대)으로 언급됩니다. 또한 정부 공개 자료(2024년 가계동향조사 연간 소비지출 동향)에서도 소비 목적별 비중 상위 항목에 식료품·비주류음료(14.3%), 음식·숙박(15.5%)이 크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한국의 특징은 ‘식비’가 단순히 식재료 값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외식·배달 비중이 커질수록, 식비에는 인건비·임대료·플랫폼 수수료·배달비 같은 서비스 비용이 함께 얹힙니다. 그래서 식료품 물가가 잠깐 진정되더라도 생활 속 식비 부담은 쉽게 내려오지 않습니다.
즉 한국은 “엥겔지수가 올랐다”보다, “높은 수준이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가 더 중요한 리스크입니다. 이게 ‘고착’의 의미입니다.
일본은 식품 가격 상승이 엥겔지수 악화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한국도 식비 지출이 전체 소비 증가율보다 빠르게 늘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결국 두 나라 모두 “가계가 마음대로 줄이기 어려운 항목”에서 압박이 커진 겁니다.
한국은 소비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온라인·배달·간편식 시장이 크며, 가구 형태 변화(1인 가구 등)가 빠릅니다. 이런 환경은 편의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식비의 서비스화를 가속해, 체감 부담을 더 고착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중요한 건 “소비가 늘었다/줄었다”가 아니라 이 질문입니다.
“무엇에 쓰였나? 선택 소비가 늘었나, 필수 지출이 늘었나?”
엥겔지수는 그 질문에 가장 직관적으로 답하는 ‘생활의 지표’입니다.
일본의 엥겔지수 28.6%는 단순한 해외 토픽이 아닙니다. 고물가·저성장 국면에서 가계가 어떤 방식으로 체력이 빠지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사례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 총액이 늘어도, 그 증가분이 식비·주거비 같은 필수재에 몰리면 생활은 좋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택 소비가 줄고, 경제의 체감 온도는 떨어집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뉴스에서 봐야 할 것은 성장률 한 줄이 아니라, 엥겔지수가 말하는 ‘살림의 방향’입니다.
경제가 유지되더라도, 생활의 여유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엥겔지수는 그 현실을 가장 짧은 숫자로 번역해 주는 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