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최근 ESG, 탄소중립, RE100 같은 용어들이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를 선언한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은 이제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의 ‘윤리적 자격증(?)’이자 공급망·투자·브랜드 가치에 직결된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참여하면서 RE100은 무시할 수 없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고상한 명분 뒤에, 개발도상국에게는 또 다른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는 현실적 우려도 존재한다.
게다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중심에는 유럽연합(EU)이 있다. CBAM, CSDDD 등 연이은 규범을 통하여 탄소중립을 강력히 밀어붙이는 EU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 흐름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등)로 전환하겠다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과 CDP가 공동으로 주도하며, 애플, 구글, 이케아 등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참여 중이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참여 조건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범이 진정한 ‘보편적 약속’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RE100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AI 서버, 전기차 생산라인, 데이터 센터, 반도체 공장 등 고전력 산업이 확대되면서 전력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이 존재하며, 야간이나 무풍 시 발전이 불가능하다. 이를 보완하는 ESS(에너지저장장치) 기술도 아직 고비용·저효율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이런 상황에서 ‘100% 재생에너지’는 이상에 가깝다.
더구나 유럽처럼 풍력 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달리, 한국이나 동남아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지역은 인프라 구축 자체가 어렵고,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하버드대 장하준 교수는 이를 “사다리 걷어차기(Ladder Kicking)”라 표현하였다. 과거 탄소를 펑펑 써가며 산업화를 완성한 선진국들이, 이제 와서 개도국에게 “재생에너지만 써라”고 강요한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는 EU의 탄소중립 정책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이는 철강, 시멘트, 비료 등 탄소집약산업의 수입품에 대해 ‘EU 내부의 탄소가격’을 적용하는 제도로, 사실상 탄소세 기반의 무역장벽이다. 여기에 2024년 통과된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글로벌 공급망에 ESG 기준을 법적으로 강제함으로써 또 하나의 진입장벽을 세운 셈이다.
EU가 이렇게까지 강경한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네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① 환경과 기후 위기 대응 EU는 극심한 폭염, 산불,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의 피해를 이미 현실로 경험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포함한 ‘유럽 그린딜’을 추진 중이며, 이는 ‘환경 보존’과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전략이다.
② 기업의 책임성과 투명성 강화 EU는 자국 기업은 물론, 역내 진입하는 외국 기업에도 환경·인권 기준을 적용하여 ESG 경영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려 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위한 질서 재편으로, 특히 대기업의 공급망까지 규율하는 ‘룰 메이커’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③ 신시장 선점과 기술 리더십 확보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 수소, 탄소포집은 모두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EU는 이 분야의 기술 및 시장을 선점하여 글로벌 경제의 ‘주도권’을 회복하려 한다.
④ 신흥국 견제와 무역 재편 CBAM과 CSDDD는 사실상 중국, 인도, 동남아 등의 탄소집약적 산업 구조를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값싼 에너지를 기반으로 성장 중인 신흥국 기업들이 EU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RE100은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는 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선진국의 기준’으로만 작동한다면, 이는 또 하나의 불공정한 질서일 뿐이다. 탄소중립이 진정으로 글로벌 연대라면, 모두가 함께 걸을 수 있는 공정한 출발선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개발도상국에게 ‘RE100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수출 자격을 판단하기보다는, RE20 → RE40 → RE70처럼 점진적 이행 구조를 설계하고, 선진국은 기술·자본 이전을 통하여 개도국의 전환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만 기후위기에 맞선 진짜 ‘연대’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모두가 함께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 경쟁’이 아니라, ‘함께 출발할 수 있는 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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