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달러는 세계의 중심에 있다. 글로벌 교역, 투자, 원자재 결제, 외환보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은 달러라는 통화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위상을 반영하듯, 미국은 흔히 ‘기축통화국(基軸通貨國)’으로 불린다.
기축통화란 말 그대로 '축이 되는 통화'다. 기축통화국 미국은 자국 통화인 달러로 수입하고, 달러로 수출하며, 자국 통화로 부채를 발행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미국은 환율에 상관없지 않나? 어차피 달러로만 거래하니까.” 사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미국은 분명 환율 리스크(FX Risk)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 덕에 무역 거래 중 환차손 발생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이 미국 경제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현실을 놓친 단순화에 가깝다.
왜냐하면 달러의 가치, 즉 강달러냐 약달러냐에 따라 미국의 수출·내수·기업 실적·자본 유입까지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이 ‘약달러’를 원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미국의 수출은 대부분 달러로 가격이 책정된다. 하지만 구매자, 즉 해외 바이어의 입장에서 달러의 환율은 여전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100달러짜리 미국 제품을 유럽에서 구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1달러가 1유로일 때는 100유로에 살 수 있다. 하지만 달러 강세로 1달러가 1.2유로가 되면, 같은 제품이 120유로가 된다. 달러로는 같은 금액이라도, 체감 가격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식의 환율 효과는 실제로 수출량과 연결된다. 미국 제품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수출이 줄고, 싸지면 수출이 늘어난다. 따라서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하거나 제조업 중심의 수출 확대를 원할 경우, 달러 약세는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가격 인하’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당시 공개적으로 강달러를 비판하고 약달러를 지지했다. “중국과 유럽이 통화를 조작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미국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졌다. 이는 미국도 필요할 경우 약달러를 전략적으로 ‘원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대부분 해외에 법인을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같은 기업들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문제는 이들 수익이 유로, 위안, 엔, 파운드 등으로 벌어졌다는 점이다. 결산 시점에 이 모든 수익은 달러로 환산되어야 하며, 그 순간 환율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달러가 강세일 경우, 같은 외화 수익이라도 달러로 환산하면 수익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반면, 달러가 약세일 경우, 환산 수익이 증가해 실적이 더 좋아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숫자 차이를 넘어 주가와 시장 반응, 투자자의 기대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많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실적 발표 시 ‘환율 효과’를 별도로 계산해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달러 약세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있어 회계상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마법 같은 무기이기도 하다.
약달러는 수출기업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대표적인 예가 관광과 부동산 시장이다.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 외국인의 입장에서 미국 여행 비용은 싸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방문하게 되고, 항공·호텔·쇼핑·외식 등 다양한 산업이 활력을 얻게 된다. 실제로 미국 내 관광지와 고급 아울렛 매장은 달러 약세기에 외국인 관광객 수 증가를 체감한다고 말한다.
한편, 미국 정부의 부채 문제도 약달러와 맞닿아 있다. 미국은 현재 35조 달러를 초과하는 막대한 연방정부 부채를 안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목 금액이 아니라 ‘실질 상환 부담’이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부채의 실질 가치는 떨어진다. 즉, 같은 1조 달러라도 달러가치가 10% 하락하면 실질적으로 갚아야 하는 ‘부담감’이 줄어드는 셈이다.
화폐 가치 하락을 통한 부채 압축(debt deflation) 효과는 특히 고금리·고물가 시기에 미국이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적 해법’이다.
강달러는 전 세계 자본을 미국으로 끌어들인다. 더 높은 수익률을 노리는 외국 자금이 달러 자산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미국 채권시장이나 주식시장에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생긴다.
신흥국 자금 유출
글로벌 경기 둔화
미국 제품의 수출 둔화
물가 불안정
결국, 미국 연준(Fed) 입장에서도 강달러는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금리 인상 국면에서는 자본 흐름과 물가, 실물경기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 약달러는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한 ‘완충 장치’가 될 수 있다. 수출 확대와 물가 안정, 자본 이동의 속도 조절을 가능하게 하며, 통화정책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모든 이유를 종합하면, 미국이 환율에 전혀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기축통화국 미국도 강달러와 약달러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한다. 그리고 필요할 땐 약달러라는 도구를 통해 수출, 기업 실적, 내수, 부채, 통화정책 전반을 조율한다.
달러는 강한 통화지만, 그 가치가 항상 강해야만 미국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힘은 언제나 균형에서 나온다. 미국은 이 원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