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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단속과 숨겨진 메시지

이설아빠의 Global Business Story

by 이설아빠

2025년 9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현지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군용 차량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대규모 단속을 벌였고,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포함해 총 475명이 체포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ESTA(전자여행허가제)나 B-1(단기 비즈니스) 비자로 입국한 상태에서 공장 건설과 장비 설치에 투입되어 있었다. 미국 법률상 불법 근로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불법 고용 단속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복합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단순히 “체류 신분 위반”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 글로벌 공급망 안정, 그리고 한·미 경제 협력의 신뢰가 시험대에 오른 사건이었다. 나아가 미국 정부와 지역 사회가 내세우는 ‘일자리 확보’ 요구는 사실상 외국 기업의 기술을 현지화하려는 전략적 압박과 맞닿아 있다.


세 가지 갈등의 축

1. 보조금과 일자리: 지역사회의 정치적 명분

현대차·LG 배터리 공장은 76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함께 주정부 인센티브 및 연방 보조금을 받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당연히 지역 주민과 노동조합은 “세금으로 유치한 공장에서 왜 외국인이 일하느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ICE 단속은 이런 지역 여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다. 보조금을 매개로 한 현지 고용 확대 압박은 곧 정치적 명분으로 자리 잡으며, 외국 기업에 대한 지속적 압박 도구로 기능한다.


2. 기업의 현실: 숙련 인력과 기술 보안의 역설

배터리 공장은 초기 장비 설치, 시운전, 품질 검증 단계에서 고숙련 엔지니어 투입이 필수적이다. 한국 기업은 속도와 보안을 위해 자국 기술자를 파견했지만, 이는 현지 사회의 눈에는 “일자리 탈취”로 비쳤다. 더 큰 문제는 기술 보안과 현지 고용 요구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기업은 핵심 노하우를 보호하기 위하여 본사 인력을 투입하지만, 지역 사회와 노조는 이를 오히려 “기술 이전을 정당화할 근거”로 활용한다. 기술을 보호하려는 노력 자체가 현지에서는 “우리의 몫을 빼앗는 행위”로 뒤집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3. 미국의 전략: 고용 요구를 통한 기술 내재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체계는 단순히 공장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더 중요한 목적은 생산 노하우와 기술 역량을 현지에 고착화하는 것이다. “외국인 대신 현지 노동자를 투입하라”는 요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설비 운영, 유지보수, 생산관리까지 현지 인력에 의해 수행되도록 만든다. 이는 자연스럽게 외국 기업의 기술이 흡수되는 경로이며, 장기적으로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단속 사건은 이 전략이 표면화된 계기였다.


대응 전략: 한국 기업이 준비해야 할 생존 해법

1. 비자 제도의 현실적 활용과 개선 요구

미국에는 합법적인 취업비자 제도가 존재한다. H-1B(전문직), L-1(주재원), E-2(투자자 비자)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쿼터 경쟁, 긴 발급 기간,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단기간 인력 투입이 어렵다. 한국 기업들은 절차적 비효율성을 이유로 편법을 택했지만, 이는 글로벌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향후에는 한·미 정부 간 협상을 통하여 한국 기업 전용 특별 비자 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최소한 비자 심사 간소화를 요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기술 보안과 현지 고용의 균형 설계

기업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 핵심’과 ‘일상 운영 기술’을 분리하는 것이다. 배터리 제조의 레시피, 알고리즘, 공정 최적화 데이터 등은 본국에 두고, 현지에서는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만 이전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지역 사회와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커뮤니티 칼리지, 직업 학교와 연계한 현지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는 미국 정치권과 노조의 비판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기여할 것이다.


3. 글로벌 투자와 신뢰 관리

이번 사건의 파급력은 현대차·LG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전자, SK온, 한화솔루션 등 다른 한국 기업들도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만약 “한국 기업은 불법 고용을 한다”는 낙인이 찍히면, 앞으로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가 흔들릴 수 있다. 따라서, 기업 내부적으로도 비자 관리 전담 조직을 두고, 현지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


공장만 짓고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

조지아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사건은 단순한 불법 고용 단속이 아니라, 미국이 고용 압박을 통해 외국 기업의 기술을 흡수하려는 구조적 전략을 드러낸 사례다. 이제 글로벌 기업의 해외 투자는 단순히 공장을 세우는 문제를 넘어섰다. 기술 보안 장치와 현지 고용 로드맵을 동시에 설계하지 않으면, 막대한 투자도 도리어 자산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냥 관세 내고 수출하면 되지 않느냐”는 단순한 해법은 현실적이지 않다. 미국은 언제든 대체 공급망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장기적으론 현지 투자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분명하다. 핵심 기술은 보호하면서도, 지역 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고용·교육 효과를 병행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한·미 경제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생존하려면, 이제 ‘공장 건설자’가 아니라 ‘현지 사회와 공존하는 파트너’로 변모해야 한다. 기술 주권을 지키면서도 협력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앞으로 한국 기업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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