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서른하나가 되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삼십대가 되면 대단한 무언갈 이뤄내고, 나름의 부를 축적하고
그 나이쯤 으레 겪는 것들에 대한 경험치가 꽤 높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사실, 누구나 그러하듯 그렇지 못하겠지만.
오늘 나는 남들은 겪었으나 나는 겪어 보지 못한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1. 학사모
나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군 생활을 마친 동기들과 졸업 학번이 같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살던 지역을 탈피하고 싶었고 (사실은 부모님의 곁에서 떨어져 지내고 싶었다.)
그 핑계로 서울살이를 택했다. 2년이나 말이다. 내가 휴학을 했던 시기는 남자 동기들이 군대에 갈 시기였고, 내가 복학을 했던 건 남자 동기들이 전역할 무렵이었다.
휴학기간을 포함해 대학교를 총 6년 다녔다. 그래서 더 조바심이 났다. 여자 동기들은 졸업을 했고 자리를 잡아가는데 난 휴학을 오래 한 터라 꽤 뒤처져있는 것 같았다.
복학 후 미친 듯이 공부를 했고, 여러 번의 장학금과 꽤 높은 학점, 그리고 빠른 취업계로 인턴쉽-취직까지 모두 재학기간에 이뤄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조바심이 이뤄낸 결과물들이다.)
정직 사원으로 일하던 첫 회사에서 참여한 프로젝트를 (밤새) 마치고, 멍하니 상사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오전 무렵이었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오고 있니? 오늘 졸업식이잖아'
아 맞다. 오늘은 졸업식이었다. 돈도 없고, 면접 보러 다니느라 바빠 학사모 쓴 졸업사진도 못 찍었는데.. 학사모야 졸업식에서 쓰면 되니까 그렇게 위로하고 졸업사진 촬영을 넘겼던 나였다.
'아.. 나 지금 씻지도 못하고, 회사야.. 밤샜어'
그렇게 내 인생에서 '학사모'를 써 볼 기회가 사라졌다.
분명 엄마 아빠도 큰 딸내미의 졸업을 축하하며, 학사모를 꼭 써보고 싶으셨을 텐데
몇 년 후, 동생의 졸업식에서 인생의 '첫' '학사모'를 써본 부모님은 그 모습이 너무 영광스러워
10만 원짜리 앨범을 맞추셨다나 뭐라나.
2. 결혼
사실 이건 겪은 사람보다 겪지 못한 사람의 비율이 더 크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겪어가고 있는 사람이 더 많으니 내가 아직 겪지 못한 리스트에 넣도록 하겠다.
사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 건 몇 순간 되지 않는다.
유년기 부모의 불화, 엄마와 할머니의 갈등, 가족이라서 슬펐던 순간들을 겪고 나니 굳이 내 인생에서 결혼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던 시절에 '난 독신주의야!'라고 외치며 다녔고, 난 그게 꽤 멋있어 보였다. (되게 탈한국적인 여성 같아 보였.. 요새는 비혼 주의라 하대)
그러다 결혼이 하고 싶었던 몇 남자들을 만났었으나, 그냥 그건 그 사람과 함께 지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빌려서 말이다.
그렇게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고 있다. '적당한' 때에 연애를 하고 '적당한' 때에 좋은 남자를 만나 '적당히'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좋겠지만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 모르겠다.
취직이 늦었을 때처럼, 나만 평범함에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결혼을 조금 더 미뤄본다.
3. 사표
이 일을 시작하며 세 개의 회사에 다녔다.
인턴쉽을 했던 회사와 나의 졸업을 망친 회사, 그리고 지금의 회사다.
인턴쉽을 했던 회사는 인턴기간이 만료되어 그만두게 되었고, 나의 졸업을 망친 두 번째 회사는 대형 프로젝트 수주 실패로 절반의 사람들을 날려버렸다. 타노스처럼
그리고 세 번째 회사에 몸 담은 지 5년째다. 이 바닥에서 한 회사를 5년씩이나 다니는 사람은 우리 회사 사람들 말곤 사실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이직이 잦고 쉬운 직종이다. (어떤 이는 이직을 해야 몸값이 뛴다고도 믿는다)
왜 그만두지 않느냐라고 묻는 사람이 거짓말 조금 보태어 한 트럭이다.
그때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대었다.
1. 지금 회사 다니기 편해
2. 사람들이 진짜 좋아!
3.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이 있어!
4. 야근은 많아도, 그만큼 피드백을 받아!
사실 개 같은 소리다. 그래도 회사는 회사일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맥주를 마시다 친구가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친구의 말인즉슨, 나는 내가 이뤄낸 이 안정감을 부술 용기가 부족한 거란다.
사실 겪고 보면 별거 아닐 텐데, 오랜 시간 불안감 속에 살아왔기에 어렵기 이뤄낸 이 평범함을 망치기가 두렵다는 거다.
맞는 말이었다. 뒤통수가 싸하다 못해 얼얼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그게 팩트였다.
갖은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 이 대가로 이 평범하고 평온한 날들을 얻어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고통 속에서 산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사실은 나였던 거다.
이 회사를 다니며 많은 것을 이뤄냈다.
몇 번의 승진, 넓은 평수로의 이사, 연체되지 않는 카드값과 핸드폰 요금, 살면서 겪어 보지 못한 평온함
(늘 '돈'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라왔던 사람이라 그런지 고정적으로 수입이 있다는 것이 꽤 큰 위안이 된다.)
아마 어렵게 쌓아놓은 이 모래성들을 발로 찰 용기는 조만간에도 생기지 않겠지.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사표를 내본 적이 없다.
아마 지금의 회사를 그만두게 될 때, 내 인생의 첫 사표를 던져보게 되지 않을까.
용기가 생긴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