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동안 10kg 가까이 빠졌다.
마침내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빠져나간 살들은 어디로 간 걸까.
나도 모르는 곳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까.
아니면 역시 내가 모르는 곳으로 훨훨 날아갔을까.
몸무게가 빠지자 몸무게에 대해 제일 많이 생각하게 되는 건 역시 웃긴 일이 아닐까.
앞으로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숫자를 체중계에서 보게 될까.
그러면 내 삶은 정말 달라질까.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밝히자면 100kg 정도였다고 간소하게 말할 수 있다. 6년 전 일이다.
그냥 그렇게 쪘다. 별로 힘들지 않은 일이었다. 그냥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니 무럭무럭 몸이 자랐다.
얼굴이 변했고 몸이 변했고... 몸에 관한 정말 많은 조언과 충고를 빙자한 비난을 쉴새없이 받았다.
밤에 누워 이불속에서 정말 많이 했던 상상은
여기서 10kg이 빠지면 난 정말 행복해질텐테. 20kg이 빠지면 더 행복해질 텐데. 램프의 지니가 있다면, 딱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나는 내 몸무게가 **kg이 되게 해달라고 빌 텐데.
이런 맥락이었던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일이 생겼고(극기훈련에 가까웠던 신생아 육아 같은) 몸무게는 차츰 하향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요즘 같은 시간은 없었던 듯하다.
지금까지 다이어트를 하면 반드시 한약이나 양약의 도움을 받았고 강남의 유명한 다이어트 센터에 몇 백만 원의 돈을 내고 '관리'를 받으면서 했다. 혼자 체중감량을 하거나 음식을 조절하거나 할 줄 아예 몰랐다.
하지만 석달 전,
글 쓴다고 도서관에 처박혀 있느라 도시락 싸 다닌 것을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났다(그렇다. 난 집에만 안 있으면 군것질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집에 있으면 계속 먹을 걸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
도시락 싸기 귀찮으니 양상추 소분해 둔 걸 대량 쟁여뒀다가 대충 한 팩씩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맵고 짜고 단 걸 안 먹으니 초반에 살이 확 빠졌다. 하루 만에도 체중계 숫자가 휙휙 바뀌니 재미가 붙어 본격적으로 식단 조절(그래봤자 양상추에 닭가슴살이나 병아리콩을 추가하는 수준-나는 요리를 지독히 싫어한다)을 시작했다. 단순당, 정제곡물을 끊고 16-8 간헐적 단식을 시작했다. 콩이나 야채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부분, 나도 몰랐던 나의 그런 부분에 덕을 많이 입었다.
석 달만에 몸이 달라졌다.
배고파서 절절매던, 허기에 질질 끌려다니던 몸이 달라졌다.
달릴 수 있게 됐다.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래 걸으면 허리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는데.
강변을 따라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 되었다.
요가에서 안 되던 동작이 되기 시작하고 유연해졌다. 힘도 좋아졌다.
운동을 좋아한다고, 더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건 확실히 달라졌다.
하지만
살이 빠져서- 내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그냥 나다.
여전히 입던 옷을 입고 매일 하던 일을 한다(헐렁해서 자꾸 허리춤을 추키게 되긴 하지만).
다만 먹는 일의 멍에를 조금쯤 벗은 것 같기도 하다.
식욕에 고삐 채인 것처럼 정신줄 놓고 먹고 후회하고 폭식하고 자책하고 울고 불었던 일들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듯하다.
듯하다.... 확신은 없지만.
오프라 윈프리가 말했던가.
먹는 일은 평생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나는 이제야 그 일을 시작하게 된 모양이다.
그래도 오늘은 사랑하는 벗의 생일.
기쁘게 먹고,
또 기꺼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한다.
변동성과 항상성 사이의 어떤 지점,
그것을 생각한다.